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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생명평화대행진 승선거부 사건 피해자들, 국가 상대 소송 제기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3-01-23 11:29:27  |   icon 조회: 8410
[보도자료]
생명평화대행진 승선거부 사건 피해자들, 국가 상대 소송 제기
코팅된 명단 매표소에서 발견…승선권 발권 전 개인정보 전달돼
“해운회사 압도하는 공안기구 개입 의심”


1.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 지난해 제주에서 서울까지 진행된 ‘2012 생명평화대행진’ 일정 중 여객선 승선을 한때 거부당했던 피해자들이 23일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 원고는 당시 승선을 거부당했던 5명 중 △김덕진(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이태호(참여연대 사무처장) △강동균(강정마을회장) △홍기룡(제주 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등 4명입니다. 원고들은 각 200만원씩 모두 800만원을 국가에 청구했습니다.

3. 지난해 10월 5일 원고들은 대행진 참가자들과 함께 제주발 목포행 선박을 타기 위해 제주여객선터미널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3시 30분경 김덕진 사무국장이 참가자 47명을 대신하여 승선권을 구입하기 위해 탑승 예정자들의 성명과 생년월일을 적은 명단을 매표소에 제출하려는 직전, 매표소 창구 직원이 선임으로 보이는 다른 직원에게 “아까 5명 명단 온 것은 어떡해요?”라고 물었고, 두 직원이 무엇인가 상의를 하더니 김 사무국장에게 “5명은 표를 끊어주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김 사무국장이 “5명이 누구냐”고 묻자 직원은 명함보다 작은 메모지를 보여주었는데, 메모지에는 5명의 성명과 생년월일이 적혀 있었고 투명 비닐로 코팅이 된 상태였습니다.

4. 이에 참가자들이 항의하자 매표소 직원은 “해경에서 연락이 올 것이다. 해경이 승선할 수 없는 사람의 명단을 주고 갔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해경은 오지 않았고, 해운회사 측은 오후 4시경 “해경에서 내려온 지시가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고, 회사의 본부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와서는 5명의 성명과 생년월일이 적힌 메모지를 힘으로 빼앗아 가려고 하는 등 원고들 및 참가자들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결국 출항 직전인 오후 5시경에 배를 탈 수 있었습니다.

5.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의 목적 외 수집, 오용·남용 및 무분별한 감시·추적 등에 따른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개인정보의 수집, 이용과 제3자 제공 등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같은법 제39조 제1항은 “정보주체는 개인정보처리자가 이 법을 위반한 행위로 손해를 입으면 개인정보처리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그 개인정보처리자는 고의 또는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지 아니하면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원고들은 소장을 통해 국가 소속 공무원인 누군가가 자신들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하여 제3자인 해운회사에 전달하여 원고들의 승선을 거부하도록 함으로써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6. 우리 위원회는 이번 소송을 통해 원고들의 개인정보가 포함된 승선거부 명단이 승선권을 발권하기도 전에 민간회사에 전달된 경위가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당시 <제주의 소리> 보도에 따르면 해운회사 측에서 “양복을 입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승선거부 명단을 주고 갔다”고 뒤늦게 밝히기도 했다고 합니다. 특히 명단에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해운회사가 원고들의 발권을 한때 거부했던 것을 보면, 명단 제공 과정에 경찰, 해경, 국가정보원 등 해운회사를 압도하는 공안기구가 개입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이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이하 ‘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우리 위원회는 유족의 뜻을 받아 2009년 5월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소속 변호사들로 하여금 수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별첨 :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8. 많은 관심과 보도 부탁드립니다. (끝)

※별첨 :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하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셨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우신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셨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서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되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2004년 5월 25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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