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 성명/논평
밀양 유한숙 어르신 죽음에 대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의 입장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3-12-09 11:59:07  |   icon 조회: 8080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으로 인한 유한숙 어르신의 죽음과 공사 강행에 대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입장

우리는 생명을 선택해야 합니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밀양 송전탑 공사를 즉각 중단하고
국민의 소리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합니다


1. 유한숙 어르신의 평안한 안식을 기도합니다.

2. 결코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민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송전선로 공사가 이미 한 분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지 채 이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2012년 1월)으로 오랜 시간 고군분투하던 밀양주민들의 처지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죽음은 없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지금까지 참으로 많은 이들이 밀양 주민들과 함께해왔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죽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국책사업이라는 명분 아래 벌어졌던 국가적 폭력은 작은 양돈 농장을 경영하며 농촌의 여느 부모처럼 자녀들을 키우고 소박한 삶을 이어가던 평범하고 성실한 노년의 삶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일이었습니다. 애틋하게 가꾸던 삶의 터전에서 송전탑이 불과 30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소식은 삶을 이어갈 의지마저 빼앗아 갔던 것입니다. 참담한 일입니다.

3. 이 모든 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이미 여러 차례 물리적 충돌과 불상사가 예상되는 공사 강행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평화롭고 정의로운 대안을 마련하도록 정부에 호소해왔습니다(2013년 5월 24일, 2013년 7월 15일, 2013년 9월 30일 입장문). 그러나 한전과 정부는 본위원회는 물론 사회 각계의 무수한 호소를 뒤로한 채 지난 10월 전격적으로 공사를 재개하였습니다. 정부는 공사 재개를 위해 3,000여명의 과도한 경찰력을 투입하였고 불법적 연행과 채증 등의 일상적 인권침해뿐만 아니라, 실신과 골절, 뇌출혈 등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로 일어난 마을주민들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해왔습니다. 이미 공사 속개의 외연적 명분이었던 신고리 3. 4호기의 치명적 결함으로 공사 강행의 이유가 상실되었음에도 국책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연로한 어르신들을 상대로 지속적이고 일상적으로 벌이고 있는 이와 같은 폭력은 이미 공사가 그 자체로 부당함을 방증합니다.

4. 정부와 사업자인 한국전력은 지금 당장 공사를 중단해야 합니다. 유한숙 어르신의 죽음을 비롯한 현재 밀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지역민의 희생을 전제로 한 일방적 국책사업 강행이 그 자체로 엄청난 폭력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통해 “공권력의 중대한 임무는 국민들의 권리와 의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보호하고, 증진하는 일”(지상의 평화 77항)임을 진심으로 통감해야 합니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즉각 공사를 중단하고 지금이라도 사회적 공론을 위해 국민의 의견을 경청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의 공사 강행은 더 큰 불상사를 불러올 뿐입니다. 공사 지연으로 발생할 시간과 경비의 손실은 다시 상쇄할 수 있지만 인간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선택해야 합니다.

5. 밀양 송전탑 사태는 지역민의 동의와 사회적 공론이 배제된 국책사업이 그 자체로 엄청난 폭력이며, 대도시민의 에너지 소비를 위해 소수의 힘없는 지역민들의 희생이 불가피한 현재의 에너지 공급정책의 전면적 재검토가 반드시 필요함을 깨닫게 합니다. 지금과 같은 정책의 지속은 결국 유한숙 어르신처럼 힘없는 사람들이 삶을 스스로 포기하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불행한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한국전력은 생산 지역과 소비 지역 사이의 차별과 불의를 확대하는 핵발전을 기반으로 한 오늘의 에너지 정책을 총체적으로 재고해야 함은 물론, 국가 정책의 실행에 있어서 먼저 국민의 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일 줄 아는 겸손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6. 다시 한 번 유한숙 어르신의 영원한 안식을 빌며, 유족들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전합니다. 부디 하느님의 평화가 하루빨리 밀양 땅에 깃들기를 염원합니다.


2013년 12월 8일
대림 제2주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
2013-12-09 11:59:07
222.111.21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