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 성명/논평
[보도자료] 전주교도소 양심수 정치학자 이병진 <작은책> 원고 발송 불허 및 서신 검열 사건 국가배상청구 기자회견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4-05-12 13:55:49  |   icon 조회: 6975
보/도/자/료

전주교도소 양심수 정치학자 이병진
<작은책> 원고 발송 불허 및 서신 검열 사건
국가배상청구 기자회견

○ 일시 : 2014년 5월 12일(월), 오전 11시
○ 장소 : 서울(서초동 법원삼거리) / 전주(전주교도소 앞)

○ 서울 기자회견 순서
- 사회 최상철 (양심수 정치학자 이병진의 석방 추진 모임 간사)
- 소송 취지 소개 송상교 (담당 변호사, 법무법인 덕수)
- 규탄 발언 안건모 (월간 <작은책> 대표)
- 규탄 발언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 기자회견문 낭독

○ 전주 기자회견 순서
- 사회 채민 (전북평화와인권연대)
- 규탄 발언 이석영 교수 (전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 기자회견문 낭독
※ 기자회견 직후 참가자들이 당사자와 접견

○ 주최 : 구속노동자후원회,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양심수 정치학자 이병진의 석방 추진 모임, 전국노동자정치협회, 전북인권교육센터,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군산/김제/익산/전주), 평화와 통일을 열어가는 오산 노동자문화센터
○ 후원 :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
1. 월간지 연재 원고의 발송을 불허 당하고 서신을 검열 당한 양심수가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2일 국가보안법 위반(간첩등) 사건으로 8년형을 선고 받고 전주교도소에 수용되어 있는 양심수 정치학자 이병진씨는 국가를 상대로 25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냈습니다. 우리 단체들은 같은 날 서울 서초동 법원삼거리와 전주교도소 앞에서 동시에 기자회견을 열고 이씨에 대한 서신 검열을 당장 중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별첨1. 기자회견문)

○ 위헌 결정에도 발송 서신 개봉 제출 요구

2. 형이 확정되어 2010년 8월 전주교도소로 이감된 이씨는 2011년 9월 ‘가족만남의 날’ 행사에 참여한 후 차단시설이 없는 곳에서 강제로 알몸검신을 당했고 이로 인해 커다란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모든 발송 서신을 개봉하여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못했습니다. 2012년 2월 헌법재판소는 수용자의 발송 서신을 봉함하지 않은 상태로 교정시설에 제출하도록 규정한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아래 형집행법) 시행령 제65조 제1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2009헌마333). 이에 따라 발송 서신을 봉함하여 제출할 수 있게 되자, 3월 이씨는 금속노조 김아무개씨에게 편지를 보내 알몸 검신 사실을 알렸고, 이는 4월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소측은 이를 문제 삼으면서 발송 서신을 개봉하여 제출할 것을 요구했고 이씨가 이를 거부하자 ‘공안수들은 서신을 검열해야 하므로 무조건 서신을 개봉하여 제출하라’고 강요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이씨는 소측과의 긴장 관계 속에서 매우 불안하게 지내야 했습니다.

3. 한편 2012년 10월경 소측이 자살방지 명목으로 수형자 거실의 30cm 높이의 종이 책상을 15cm로 잘랐습니다. 책상이 너무 낮아 허리가 너무 아팠고 독서 및 집필이 어려웠던 이씨가 이를 외부에 알리는 서신을 보내려하자, 소측은 발송 서신을 검열한 후 발송을 불허하겠다고 하면서 스스로 포기할 것을 강요했고, 결국 서신을 발송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씨의 주장입니다. 위 헌재의 위헌 결정 이후 형집행법 시행령의 해당 조항은 즉시 효력을 잃었고, 2013년 2월 형집행법 시행령이 개정되어 원칙적으로 모든 서신을 봉함하여 제출하고 예외적으로 마약류·조직폭력사범 등 금지물품의 확인을 위해 필요한 경우 소장이 개봉 제출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위헌 결정 이후 시행령 개정 때까지는 이씨에게 서신을 개봉하여 제출하도록 강제할 아무런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소측은 개봉 제출을 강요한 것입니다. 이는 이씨가 이른바 ‘공안사범’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측이 헌재의 위헌 결정마저 무시한 것입니다. 또한 시행령 개정 이후에도 이씨가 위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소측은 서신의 개봉 제출을 요구했습니다.

○ 월간 <작은책> 원고 검열 및 발송 불허

4. 이씨는 2012년 6월경부터 월간 <작은책>에 수필 형식으로 북한을 방문한 에세이를 연재했습니다. 이씨는 편지 봉투에 출판사에 보내는 원고라는 취지를 기재하여 발송했고 이는 <작은책> 2012년 6월호부터 10월호까지 다섯 차례 연재되었습니다. 이씨는 2012년 10월과 11월 ‘평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연재글 6회분과 ‘평양개구리, 똑같습니다’라는 제목의 연재글 7회분을 소측에 발송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소측은 연재글을 검열하고 형집행법 제43조 제5항의 ‘형사 법령에 저촉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때’(제3호)와 ‘수형자의 교화 또는 건전한 사회복귀를 해칠 우려가 있는 때’(제6호)에 해당한다며 발송을 불허하고 서신을 교도소에 영치했습니다. 이후 이씨가 발송 신청한 연재글 8회분부터 15회분까지는 발송이 허가되어 <작은책> 2013년 7월호까지 연재되었습니다.

5. 이에 이씨는 2013년 1월 연재글 6회분에 대한 소측의 서신 검열, 발송 불허 및 교정시설 영치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냈고, 같은 해 10월 전주지법 제2행정부(재판장 김현석)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놨습니다. 재판부는 해당 집필문이 이씨가 약 20년 전 인도에서 북경을 경유하여 평양을 방문하였을 당시 느꼈던 개인적인 감상을 수필형식으로 기재한 것으로,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체제나 통치자, 주체사상, 반미주의 등 북한이 내세우는 핵심 사상을 직접적·무조건적으로 찬양·고무하거나 선전·선동하는 내용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전주교도소장이 항소했으나 지난 1월 광주고등법원 전주제1행정부(재판장 이창형)는 같은 이유로 항소를 기각했고, 해당 사건은 피고의 상고로 대법원에 계류되어 있습니다.

○ ‘서신검열 대상자’ 지정 및 지금도 계속되는 발송 서신 검열

6. 지난해 11월 6일 이씨는 위 행정소송의 담당 변호사와 지인 3명에게 각 1통의 등기우편을 발송했는데, 서신담당 직원은 편지가 검열된 사실을 이씨에게 구두로 통보했습니다. 직원은 어떤 서신이 어떤 법적 근거에 의해 검열되었는지 특정하여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이씨는 소측에 서신 검열 절차 등에 관한 자료 및 그해 1월부터 11월까지 서신 검열 정보처리 기록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했으나 “공안(관련)사범 관련 수용관리 및 처우에 관한 비공개 정보”라는 비공개 결정을 받았습니다. (별첨2. 정보비공개 결정 통지) 이에 이씨가 이의신청을 하자 소측은 이를 기각하면서 “총 115건 서신 검열한 후 검열 사실을 지체 없이 청구인에게 직접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별첨3. 정보공개청구 이의신청에 대한 결정 통지) 그러나 서신 검열 사실을 구두로 통보 받은 것은 지난해 11월 6일이 처음이라는 것이 이씨의 주장입니다.

7. 이씨는 지속적으로 서신 검열을 받아 왔다는 사실을 알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고, 천주교인권위원회에 서신 검열의 부당성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물론 이 서신도 검열 당했습니다. 이씨는 자신이 ‘서신검열 대상자’로 지정되어 있어 서신을 개봉해서 제출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일일이 열어서 볼 것이라고 담당 직원이 수차례 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천주교인권위가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지난해 11월 전주교도소장에게 질의서를 보내자 소측은 답변서를 통해 “(서신검열 대상자 지정은) 교정행정 내부의 공개하기 적절하지 않은 행정정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진정인은 국가보안법위반 공안사범으로서 수용관리 및 교화에 있어 일반수용자보다 더욱 세심한 관심과 지도가 필요한 자”라며 11월 6일자 발신등기서신 중 2통을 검열했다고 밝혔습니다. (별첨4. 민원회신)

8. 구 행형법은 원칙적으로 서신 검열을 허용했고 집필에 대한 사전허가제를 규정했으나 2007년 형집행법으로 전면 개정되면서 “수용자가 주고받는 서신의 내용은 검열받지 아니한다”(제43조 제4항)고 규정하여 무검열 원칙을 선언했습니다. 다만, 그 예외로 개별 서신이 ‘시설의 안전 또는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출 때에만 검열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개별 수용자를 ‘서신검열 대상자’로 지정하여 지정 이후 해당 수용자가 주고받는 모든 서신을 검열하는 것은 법적 근거도 없이 기본권을 제한하는 위법한 처분입니다. 관련 법령을 모두 살펴보아도 ‘서신검열 대상자’라는 용어조차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9. 지난 2월 소측은 이씨의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결정에서 “현재 서신검열과 관련하여 서신검열 대상자 지정은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별첨5.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결정 통지) 같은 달 이씨는 담당 직원과의 상담 과정에서 2014년부터 법무부 교정본부 내부 지침이 바뀌어서 종전의 ‘서신검열 대상자’ 지정은 하지 않고 있고 개별 서신 하나하나에 대하여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서신 검열 담당자가 검열을 하고 그 사실을 구두로 알려준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담당 직원은 “개인 앞으로 보내는 서신은 검열하지 않지만 사회단체나 기관에 보내는 것은 검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 이씨의 주장입니다.

10. 이처럼 ‘서신검열 대상자’ 지정 관행은 사라진 것으로 보이지만, 이씨에 대한 서신 검열은 올해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씨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3월초까지 △구속노동자후원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전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천주교인권위 등 인권사회단체에 보낸 편지, 월간 <작은책> 등 언론사에 보낸 편지까지 최소 30통의 서신을 검열했다고 담당 직원이 구두로 통보했다고 합니다. 이는 서신 검열의 목적이 형집행법이 정한 교화 또는 사회복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씨가 알몸검신 등을 외부에 알린 이후 △행정소송 △외부 기고 △추가적인 문제제기 등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씨는 구두 통보를 받을 때마다 등기우편 영수증에 표시를 하여 이번 소송의 증거자료로 제출했습니다.

11. 이씨에 대한 서신 검열은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양심수를 차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공안사범’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편지에 형집행법의 서신 검열 요건인 ‘수형자의 교화 또는 건전한 사회복귀를 해칠 우려가 있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형집행법의 서신 무검열 원칙을 포기하고 무제한적인 검열을 허용하게 됩니다. 또한 “수용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정치적 의견…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한다”는 형집행법 제5조를 위반한 것입니다. 소측은 이씨에 대한 서신 검열을 유지하고 있는 사유를 밝혀야 할 것입니다.

○ 서신 검열 미통보 및 구두 통보

12. 이씨는 서신업무 담당자가 바뀐 후인 지난해 11월 6일 처음으로 서신 검열 사실을 구두로 통보받았다고 합니다. 소측이 그때까지 서신 검열 사실을 통보하지 않은 것은 “소장은 서신의 내용을 검열하였을 때에는 그 사실을 해당 수용자에게 지체 없이 알려주어야 한다”는 형집행법 제66조 제5항을 위반한 것입니다. 한편, 이후 소측은 계속 구두로만 통보했으며 이씨의 문서 통보 요구에도 담당자는 교정본부 지침이라고 하면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형집행법 시행령은 통지의 구체적인 방법은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행정절차법 제24조는 “행정청이 처분을 할 때에는 다른 법령등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서로 하여야 하며, 전자문서로 하는 경우에는 당사자등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다만, 신속히 처리할 필요가 있거나 사안이 경미한 경우에는 말 또는 그 밖의 방법으로 할 수 있다. 이 경우 당사자가 요청하면 지체 없이 처분에 관한 문서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수용자가 서신 검열의 부당성을 법적으로 다투기 위해서는 언제 어떤 서신이 어떤 근거로 검열되었는지 등 그 내역이 특정되어야 하고, 이것이 문서를 통하여 기록으로 남아서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교도관이 수용자를 대면하여 구두 통보하는 것은 그 자체로 수용자에게 서신 발송에 대한 ‘위축효과’를 주어 수용자가 서신 작성 자체를 못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신 검열 통지는 대상자가 이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지체 없이 문서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이씨가 지난해 11월 이후 지속적으로 문서 통지를 요청했음에도 소측은 올해 들어서도 구두 통지만 하여 서신 검열에 관해 법적으로 다툴 이씨의 권리를 침해했습니다.

○ 담당 변호사와 오가는 서신도 검열 우려

13. 이씨가 보낸 서신뿐만 아니라 받는 서신에 대한 검열 우려도 있습니다. 이씨에 따르면, 받는 서신도 모두 봉투가 개봉된 상태로 전달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 소송의 담당 변호사인 송상교 변호사(법무법인 덕수)와 오가는 서신도 검열되고 있습니다. 송변호사는 지난 2월 이씨와 접견을 하고 소송위임장을 작성했습니다. 이후 송변호사는 전주교도소장에게 서신을 보내 “소송대리인으로서 위임받은 소송의 준비 및 진행을 위하여 이병진 씨와 서신을 주고받을 예정”이라며 “본 발신인과 이병진 씨 사이에 향후 주고받는 서신은 수용자인 이병진 씨의 재판청구권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소송 진행을 위하여 그 비밀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향후 발신인과 이병진 씨 사이에 오가는 어떠한 서신에 대하여도 서신을 개봉하여 서신검열을 하지 않을 것을 요청드리며 이를 확인하여 주실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소측은 “관련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시행할 수밖에 없”다고 회신했습니다. (별첨6. 민원서신에 대한 회신) 소측은 “재판청구권이나 소송 진행을 방해 한다거나 관련정보를 유출하는 경우는 일체 없”다고 밝혔지만, 이씨와 담당 변호사가 논의하는 소송 전략을 소송 상대방인 전주교도소가 미리 알 수 있는 상황입니다.

14. 이씨는 수용 기간 내내 소측이 자신의 모든 서신 내용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위축되고 자기 검열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려고 해도 소측의 전적인 통제를 받는 상황에서 오히려 더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씨의 생각입니다. 이씨에 대한 서신 검열은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자유와 통신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입니다.

15. 이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아래 ‘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됩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천주교인권위는 유족의 뜻을 받아 2009년 5월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소속 변호사들로 하여금 수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별첨7.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많은 취재와 보도를 부탁드립니다. (끝)

※별첨 1. 기자회견문
2. 정보비공개 결정 통지 (별도 파일)
3. 정보공개청구 이의신청에 대한 결정 통지 (별도 파일)
4. 민원회신 (별도 파일)
5.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결정 통지 (별도 파일)
6. 민원서신에 대한 회신 (별도 파일)
7.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별첨1. 기자회견문


양심수 정치학자 이병진씨에 대한 서신 검열 규탄한다!
전주교도소는 불법적인 서신 검열을 당장 중단하라!


오늘 국가보안법으로 전주교도소에 갇혀 있는 양심수 정치학자 이병진씨가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전주교도소는 이씨가 월간 <작은책>에 연재하기 위해 보낸 원고의 발송을 일부 불허했고 지난해만해도 115건의 서신을 검열했다. 올해 들어서도 인권사회단체와 언론사 등에 보낸 편지까지 최소 30통의 서신을 검열했다.

감옥 수용자가 글을 쓸 때는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모든 서신은 원칙적으로 검열 당했다. 그러나 이미 자유를 박탈당한 수용자로부터 편지를 쓸 자유마저 박탈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드디어 2007년 전면개정된 형집행법은 서신 무검열 원칙을 선언했다. 시설의 안전과 질서 유지를 위해 서신 검열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이는 개별 서신에 대해 극히 예외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그 정당성에 대한 입증 책임도 소측이 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른바 ‘공안사범’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보내고 받는 모든 편지를 무제한 검열하는 것은 현행법도 허용하지 않는다.

전주교도소는 개인 앞으로 보내는 서신은 검열하지 않지만 사회단체나 기관에 보내는 것은 검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다. 결국 서신 검열의 목적이 교화나 사회복귀가 아니라 이씨에 대한 동향 파악임을 스스로 밝힌 셈이다. 그 존재 자체가 반인권적인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양심수를 차별하는 것이다.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하는 차별을 금지하는 형집행법을 위반한 것이다. 그럼에도 소측은 이른바 ‘공안사범’에 대한 서신 검열 규정마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미 2012년 헌법재판소는 수용자의 발송 서신을 봉함하지 않은 상태로 교정시설에 제출하도록 한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놨다. 그럼에도 소측은 공안수들은 서신을 검열해야 한다면서 무조건 서신을 개봉하여 제출하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위헌 결정 이후 이씨에게 서신을 개봉하여 제출하도록 강제할 아무런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도 이를 강요한 것은 헌재의 위헌 결정마저 무시한 것이다. <작은책> 연재 원고의 경우 이미 1심과 2심 재판부가 이적표현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데도 소측은 대법원에 상고하여 시간만 끌고 있다.

이씨는 수용 기간 내내 서신 검열을 당했지만 그 사실을 처음으로 통보받은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고 한다. 소측은 검열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다. 통보 방식도 문서 통보가 아니라 구두 통보였다. 수용자가 서신 검열의 부당성을 법적으로 다투기 위해서는 언제 어떤 서신이 무슨 이유로 검열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이씨가 이후 지속적으로 문서 통지를 요청했는데도 소측은 올해 들어서도 구두 통지만 하여 서신 검열에 관해 법적으로 다툴 이씨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교도관이 수용자를 대면하여 구두 통보하는 것은 그 자체로 수용자에게 위축효과를 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씨와 이번 소송의 담당 변호사 사이에 오가는 서신마저 검열되고 있다. 담당 변호사가 소측에 따로 서신을 보내 서신 개봉과 검열의 금지를 요청했는데도 소측은 검열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소송 전략을 소송 상대방이 알 수 있는 상황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자유, 통신의 자유에 감옥 수용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양심수 정치학자 이병진씨가 석방되는 그날까지 함께할 것이다.

양심수에 대한 불법적인 서신 검열을 당장 중단하라!
공안사범 서신 검열 규정을 공개하라!
반인권 악법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


2014년 5월 12일

구속노동자후원회,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양심수 정치학자 이병진의 석방 추진 모임, 전국노동자정치협회, 전북인권교육센터,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군산/김제/익산/전주),
평화와 통일을 열어가는 오산 노동자문화센터


※별첨7.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하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셨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우신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셨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서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되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2004년 5월 25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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