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 성명/논평
[보도자료] 보호감호제 헌법소원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4-05-21 15:42:16  |   icon 조회: 6344
[보도자료]
보호감호제 헌법소원


1.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 지난 20일 전두환 군사반란 정권이 만든 보호감호제를 유지시키고 있는 사회보호법 폐지 법률 부칙 제2조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었습니다.

3. 1981년 제정된 사회보호법은 헌법이 금지하는 거듭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아오다가 25년만인 지난 2005년 여야 합의로 폐지되었습니다. 당시 국회는 보호감호제가 “피감호자의 입장에서는 이중처벌적인 기능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집행실태도 구금위주의 형벌과 다름없이 시행되고 있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지난 권위주의시대에 사회방위라는 목적으로 제정한 것으로 위험한 전과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을 위주로 하는 보안처분에 치중하고 있어 위헌적인 소지가 있”다며 사회보호법 폐지 법률을 의결했습니다. 그러나 폐지 법률은 부칙 제2조에 “이 법 시행 전에 이미 확정된 보호감호 판결의 효력은 유지되고, 그 확정판결에 따른 보호감호 집행에 관하여는 종전의 「사회보호법」에 따른다”고 규정하여, 법 폐지 이전에 보호감호 판결이 확정된 사람에게는 보호감호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4. 이에 따라 사회보호법 폐지 이전에 판결이 확정된 사람은 본형 집행 이후 보호감호 집행을 받게 됩니다. 또한 보호감호 중 가출소했다가 새로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가출소 취소 결정을 받을 수 있어 본형 이외에 남은 기간의 보호감호 집행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해 4월 법무부 정보공개자료에 따르면, 사회보호법 폐지 이전에 확정판결을 받아 폐지 이후에도 보호감호 집행을 받은 사람은 677명에 이릅니다. 현재 보호감호 집행을 받고 있는 사람은 134명으로 최장 2020년까지 집행을 받을 예정입니다. 또한 현재 징역형 집행을 받고 있는 수용자 중 보호감호 집행이 예정된 사람은 102명입니다. (별첨1. 법무부 정보공개자료)

5. 보호감호제는 사회복귀 촉진이라는 취지와 달리 징역형의 연장에 불과합니다. 감호소에는 교육이나 개선, 치료 프로그램이 전무하고 피감호자가 징역형 수형자들과 함께 공장생활을 하는 등 뚜렷한 경계가 없습니다. 또한 감호소의 시설 및 환경이 매우 낙후되어 있고 3평 남짓한 방에서 3명의 피감호자가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방안에 반사경이 설치되어 일반적인 감시를 당하는 등 일반 징역형 교도소 보다 열악한 처우를 받고 있습니다. 피감호자는 본형과 보호감호를 합쳐 최하 7∼8년의 장기 수용 생활을 하는데, 경북 청송군 진보면의 3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중에 위치한 감호소에 수감되면서 가족 및 지인과의 접촉이 어렵습니다. ‘청송 출신’에 대한 심한 편견으로 인해 재범의 유혹 없이 사회에 잘 적응하며 살 것을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호감호제는 사회복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징역형의 연장에 불과한 보호감호제는 자유형의 집행과 다를 바 없으므로 헌법이 금지하는 거듭처벌 금지 원칙에 위반됩니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보호감호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보호수용제’를 추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6. 또한 보호감호제는 그 집행 기간을 법관이 아니라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원회가 결정하므로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함으로써 적법절차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보호법 폐지 법률 부칙은 사회보호법 폐지 시점을 기준으로 보호감호 처분을 받지 않는 판결 미확정자에 비해 판결 확정자를 불합리하게 차별하고 있습니다. 보호감호제의 위헌성이 문제되어 폐지하는 마당에 단지 형이 확정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둔 것은 입법자의 재량 범위를 넘어서 기본권을 중대하고 과도하게 침해한 것입니다.

7. 2009년 헌법재판소는 이번 사건과 같은 쟁점을 다툰 사건에서 합헌 결정(2007헌바50)을 한 바 있습니다. 헌재는 “사회보호법을 폐지하면서 적지 않은 수의 보호감호 대상자를 일시에 석방할 경우 초래될 사회적 혼란의 방지, 법원의 양형 실무 및 확정판결에 대한 존중 등을 고려”한 것이라며 “이중처벌에 해당하거나 비례원칙에 위반하여 신체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합헌 결정 이후 5년이 지났고 재판관도 모두 교체되었습니다. 특히 2011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당사자를 일반공중의 이익을 위해서 특별희생자로 만들기 때문에 보호감호에 내재하는 자유권의 침해는 명백히 중대하고, 따라서 보호감호집행은 보호감호 수용자뿐만 아니라 일반공중에 대해서도 형벌집행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명백히 인식시켜야 하고 그렇지 않은 이상 위헌”이라고 판시했습니다. 우리 위원회는 군사반란 정권이 사회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일부 시민들을 사회로부터 추방시키기 위해 만든 보호감호제는 헌법과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헌재의 전향적인 결정을 기대합니다.

8. 이번 헌법소원의 청구인 이아무개씨는 2003년 광주지방법원에서 강도상해죄 등으로 징역 10년과 보호감호를 선고 받았습니다. 2005년 사회보호법이 폐지되었지만 이씨는 2013년 4월까지 만기 복역한 후 경북북부제3교도소에 수용되어 현재 보호감호 집행을 받고 있습니다. 비록 이씨가 행한 범행이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에 대한 형벌은 마친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씨는 길게는 7년을 교도소에서 보낼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이씨는 지난 4월 광주지법에 ‘재판의 집행에 관한 이의신청’을 제기했고 사건 계류 중 사회보호법 폐지 법률 부칙 제2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으나 5월 1일 광주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마옥현)는 이의신청과 위헌신청을 모두 기각했습니다. 이에 이씨는 이번 헌법소원을 제기하게 된 것입니다.

9. 이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이하 ‘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우리 위원회는 유족의 뜻을 받아 2009년 5월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소속 변호사들로 하여금 수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별첨2.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10. 많은 관심과 보도 부탁드립니다. (끝)


※별첨 1. 법무부 정보공개자료 (별도파일)
2.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별첨2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하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셨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우신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셨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서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되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2004년 5월 25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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