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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보안관찰법 헌법소원 선고에 대한 논평 - 헌재가 받게 될 조롱과 경멸을 예감한다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4-06-02 14:16:55  |   icon 조회: 6381
[보도자료]
보안관찰법 헌법소원 선고에 대한 논평


1.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과 함께 대표적인 반인권 악법으로 지목받고 있는 보안관찰법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놨습니다. 이에 우리 위원회는 2일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별첨1. 논평)

3. 이 사건의 청구인 김경환씨는 지난 2000년 이른바 ‘민혁당 사건’으로 징역 4년 6월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가 2003년 특별사면으로 출소했습니다. 2007년 법무부 보안관찰심의위원회는 김씨에 대한 보안관찰처분을 의결했고 이후 2009년과 2011년, 2013년 7월 거듭 기간갱신을 결정했습니다. 김씨는 지난해 8월 보안관찰처분 기간갱신결정 취소 청구 소송을 서울고등법원에 제기했습니다.

4. 소송 중 법무부는 김씨가 보안관찰법상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보안관찰법을 부정하고 있어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고의영 판사)는 김씨가 출소 이후 보안관찰 해당범죄와 관련되는 구체적인 활동을 하였음을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비교적 안정된 사회생활을 해오고 있는 등 보안관찰 해당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설령 김씨가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한 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적인 정치적 표현의 자유 또는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4월 30일 대법원 제1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법무부장관의 상고를 기각(심리불속행)하고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5. 한편, 김씨는 서울고등법원 소송 계류 중 보안관찰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가 기각되자 지난 1월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이번 헌재 결정은 이 사건에 대한 선고입니다.

6. 이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이하 ‘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우리 위원회는 유족의 뜻을 받아 2009년 5월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소속 변호사들로 하여금 수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별첨2.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7. 특히 유 변호사님은 생전에 보안관찰법의 문제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2001년 보안관찰처분대상자에게 출소 후 7일 이내에 거주예정지 관할경찰서장에 대하여 출소사실을 신고하여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하고 위반시 처벌하도록 규정한 보안관찰법 조문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헌재가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등의 이유로 합헌 결정을 내린 사건(헌법재판소 2001. 7. 19. 선고 2000헌바22 결정)이 유 변호사님이 수임한 사건이었습니다.

8. 많은 취재와 보도를 부탁드립니다. (끝)


※별첨 1. 논평
2.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별첨1
논평



헌재가 받게 될 조롱과 경멸을 예감한다
보안관찰법 헌법소원 선고에 대한 논평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과 함께 대표적인 반인권 악법으로 지목받고 있는 보안관찰법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놨다. 우리는 기본권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스스로 저버린 헌재를 규탄한다.

보안관찰법은 일제의 사상범보호관찰법의 취지와 형식을 계승한 법으로 국가보안법 등 이른바 ‘친북적’ 또는 ‘용공적’ 사상과 관련된 정치 범죄를 특별히 단죄하고 사상 전향을 강요하고 있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 법무부차관이 위원장인 보안관찰처분심의위원회와 법무부장관이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하기만 하면 법원의 판결이 없어도 보안관찰처분을 부과할 수 있어 적법절차의 원칙에 위배되고 법관에 의한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

게다가 피보안관찰자는 3개월마다 주요 활동 사항, 연락하거나 만난 보안관찰처분대상자의 인적사항과 일시·장소·내용을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이사를 할 때는 그 이유를 신고해야 하며 국외여행이나 10일 이상 국내여행을 할 때도 여행 목적과 기간, 동행자 등을 미리 신고해야 한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검찰과 경찰은 재범방지라는 명분으로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나 연락을 금지할 수 있고 집회·시위 장소 출입을 금지할 수 있다. 이를 어기면 처벌을 하는 것이 보안관찰법이다.

이처럼 보안관찰법은 사생활 전반에 관여함으로써 사상과 양심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법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철창만 없을 뿐이지 오히려 자발적인 복종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보안관찰법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철창이자 엄청난 감시권력이다.

그럼에도 보안관찰법은 보안관찰처분의 기간을 갱신할 수 있다고만 규정할 뿐 갱신 기간의 횟수나 최대한을 정하고 있지 않아 절대적 부정기 보안처분을 허용하고 있다. 2년마다 갱신되기만 하면 대상자는 사망할 때까지 보안관찰처분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형사제재 기간의 한정을 요구하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보안관찰제도는 이미 처벌받은 사람에게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추측하여 불이익을 가하다는 점에서 헌법이 금지하는 거듭처벌에 해당한다. 이런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도 두 차례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을 통해 정부에 보안관찰법의 폐지 또는 단계적 완화 계획 수립을 권고했다. 지금도 2000여명의 보안관찰처분대상자와 40여명의 피보안관찰자가 공안기구의 감시를 받으며 고통 받고 있다.

헌재는 청구인이 대법원에서 보안관찰처분 기간갱신결정의 취소를 명하는 승소 판결을 받아 재판의 전제성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놨다. 그러나 헌재 스스로도 “기본권의 침해가 반복될 위험성이 있는데도 좀처럼 그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심판의 기회를 갖기 어려운 경우에는 위헌제청 당시 재판의 전제성이 인정되는 한 당해소송이 종료되었더라도 예외적으로 객관적인 헌법질서의 수호·유지를 위하여 심판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적극적으로 그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존재이유에도 부합하고 그 임무를 다하는 것”(헌법재판소 1993. 12. 23. 선고 93헌가2 결정 등)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또한 헌재는 보안관찰법 사건에서도 “이 결정시에는 2년의 처분기간이 만료되었을 것이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이 인용된다 하더라도 당해 가처분신청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이어서 재판의 전제성이 없다”면서도 “헌법소원제도는 개인의 주관적 권리구제에만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객관적인 헌법질서의 유지․수호에도 있다 할 것인바,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한 기본권침해 문제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에 관하여, 그리고 여러 차례 일어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어서 그 헌법적 해명이 긴요한 사안이라 할 것이므로, 이에 대하여 위헌여부의 본안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헌법재판소 2001. 4. 26. 선고 98헌바79․86, 99헌바36(병합) 결정)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럼에도 헌재는 지난 4월 30일 대법원의 당해 사건 선고 이후 첫 정기 선고일에 기다렸다는 듯이 각하 결정을 한 것이다.

보안관찰법 관련 행정소송은 서울고등법원에 제기해야 하므로 일반적인 3심제가 아닌 2심제로 운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처럼 소송 중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 후 기각되어 헌법소원을 하더라도 헌재 결정 이전에 대법원 판결이 나와 재판의 전제성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할 수밖에 없다. 또한 청구인은 대법원 판결로 피보안관찰자 지위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뿐 여전히 보안관찰대상자이므로 추후 법무부장관에 의해 다시 보안관찰처분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을 헌재가 각하 결정을 내놓은 것은 앞으로도 보안관찰법에 대한 위헌 심사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헌재가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사상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보안관찰법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과 양립할 수 없다. 우리는 보안관찰법이 끝내 사라지는 그날, 헌재의 이번 결정이 받게 될 조롱과 경멸을 예감한다.

2014년 6월 2일
천주교인권위원회


별첨2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하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셨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우신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셨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서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되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2004년 5월 25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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