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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성동구치소 강제 항문검사 헌법소원 제기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4-06-17 10:53:57  |   icon 조회: 6542
[보도자료] 성동구치소 강제 항문검사 헌법소원 제기


1. 구치소 입소 과정에서 강제로 항문검사를 당한 수용자가 지난 13일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2. 현재 모든 교정시설에서 실시하고 있는 항문검사는, 수용자가 속옷을 벗고 맨발로 전자영상 검사기에 올라가 다리를 벌리고 용변을 보는 자세로 쪼그려 앉아 검사기에 장착된 카메라에 항문 부위를 보이게 하면, 교도관은 검사기에 연결된 모니터에 출력된 항문 부위의 영상을 육안으로 관찰하는 방법으로 실시되고 있습니다.

3. 지난 1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은 조아무개씨(현재 서울구치소 수용중)는 항소를 취하하고 지난 3월 17일 서울북부지검에 자진 출두하여 같은 날 성동구치소에 수용되었습니다. 조씨는 입소 과정에서 수치심을 이유로 항문검사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담당 계장의 지시로 기동순찰팀 2명과 일반 교도관 1명이 조씨의 팔을 등 뒤로 꺾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조씨가 몸을 비틀어 발바닥이 검사기의 발바닥 표시 부분에서 떨어져 검사기가 작동하지 않자, 교도관들은 양 발의 발등을 밟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항문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조씨의 상반신은 러닝 차림이었고 하반신은 팬티가 무릎에 걸쳐진 상태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치욕적인 상황이었습니다.

4. 교도관들은 이러한 강제 항문검사로 어떤 위험물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조씨가 항문검사를 거부하면서 소장 면담을 요구하자 담당 계장은 “야간에는 내가 소장이다”라고 말했고, 조씨가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하겠다고 하자 기동순찰팀원은 “꼭 진정해라. 그게 내가 바라는 바니까”라면서 비아냥거렸다고 합니다.

5. 교정시설의 안전과 질서유지를 위해 금지물품이나 위험물의 반입을 막으려면 신체검사는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수용자의 연령, 범행 내용, 범행 횟수, 사고 유발 위험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교정시설에 수용되는 모든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극도의 수치심을 유발하는 항문검사를 일괄적으로 하는 것은 수용자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입니다. 현행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아래 형집행법) 제93조 제2항은 “수용자의 신체를 검사하는 경우에는 불필요한 고통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아니하도록 유의하여야 하며, 특히 신체를 면밀하게 검사할 필요가 있으면 다른 수용자가 볼 수 없는 차단된 장소에서 하여야 한다”(제2항)고 규정함으로써 일괄적·획일적인 신체검사가 아니라 수용자를 고려한 개별적·선별적인 신체검사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항문검사는 수용자가 신체의 은밀한 부위에 총기나 마약 등 반입이나 소지가 금지된 물품을 은닉하고 있어서 다른 방법(외부로부터의 관찰, 촉진에 의한 검사, 겉옷을 벗고 가운 등을 걸치게 한 상태에서 속옷을 벗어서 제출하게 하는 등)으로는 은닉한 물품을 찾아내기 어렵다고 볼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실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6. 모든 수용자를 상대로 항문검사를 실시하는 것은 지극히 구시대적인 행정편의적 발상입니다. 수용자는 범행사실, 범행전력 등이 제각각인데 이들 모두에게 동일한 방법으로 항문검사를 실시하는 것은 그로부터 얻어지는 공익이 그로 인하여 침해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보다 크다고 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성동구치소 측은 항문검사를 하기 위해 강제력까지 행사했습니다.

7. 한편,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교정시설 수용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조씨의 경우 항문 부위에 금지물품을 은닉하는 방법으로 반입할 만한 위험 요소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항문검사를 요구하고 물리력을 동원하여 강제로 항문검사를 진행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신체의 자유를 필요최소한도로 침해해야 한다는 형집행법의 입법목적을 달성하는데 적절한 수단과 방법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한편, 항문검사를 대신하여 엑스레이 검사 등 다른 방법으로 검사를 하는 것이 조씨의 수치심 유발을 줄이고 인격권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항문검사만을 강요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에도 반하는 것입니다.

8. 경찰서 유치장에서 행해진 정밀신체검사에 대해 2002년 헌법재판소는 “수용자가 신체의 은밀한 부위에 흉기 등 위험물 및 반입금지물품을 소지·은닉한 채 입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며, 다른 방법 예컨대 외부로부터의 관찰 또는 촉진에 의한 검사 등으로는 위 물품을 도저히 찾아내기 어렵다고 볼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고, 수용자에 대한 기본권 침해의 여지를 최소화하는 수단과 방법으로 실시되는 경우에 한하여만 허용된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헌법재판소 2002. 7. 18. 선고 2000헌마327 결정). 당시 사건은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위반의 현행범으로 체포된 여성 유치인들이 여성 경찰관에게 등을 보인 채 뒤로 돌아서서 스스로 브래지어를 포함한 상의를 겨드랑이까지 올리고 팬티를 포함한 하의를 무릎까지 내린 상태에서 앉았다 일어서기를 3회 실시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9. 대법원도 같은 사건의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신체검사는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은 목적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 또한 수용자의 명예나 수치심을 포함한 기본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충분히 배려한 상당한 방법으로 행하여져야만 할 것이고, 특히 수용자의 옷을 전부 벗긴 상태에서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게 하는 것과 같은 방법의 신체검사는 수용자의 명예나 수치심을 심하게 손상하므로 수용자가 신체의 은밀한 부위에 흉기 등 반입이나 소지가 금지된 물품을 은닉하고 있어서 다른 방법(외부로부터의 관찰, 촉진에 의한 검사, 겉옷을 벗고 가운 등을 걸치게 한 상태에서 속옷을 벗어서 제출하게 하는 등)으로는 은닉한 물품을 찾아내기 어렵다고 볼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된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01. 10. 26. 선고 2001다51466 판결).

10. 이후 경찰청은 2003년 1월 ‘피의자 유치 및 호송 규칙’을 개정하여 신체검사 방법에 ‘외표검사’(겉옷을 입은 채로 육안과 촉수만으로 간단히 위험물소지여부를 확인하는 방법)를 신설했습니다. 경찰청은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유치인에 대한 신체검사는 그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며 “특히 집회시위사범으로 체포된 여성피의자 등의 경우 자해우려나 흉기소지 등의 염려가 없음에도 일부 일선근무자들이 유치장사고방지 등을 위해 신체검사의 합목적성에서 벗어나 브래지어를 벗기는 등 여성에게 수치심을 줄 우려가 있는 사례가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밝혔습니다.

11. 현재 경찰서 유치장 신체검사는 △외표검사(죄질이 경미하고 동작과 언행에 특이사항이 없으며 위험물 등을 은닉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되는 유치인에 대하여는 신체 등의 외부를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가볍게 두드려 만져 검사) △간이검사(일반적으로 유치인에 대하여는 탈의막 안에서 속옷은 벗지 않고 신체검사의를 착용(유치인의 의사에 따른다)하도록 한 상태에서 위험물 등의 은닉여부를 검사) △정밀검사(살인, 강도, 절도, 강간, 방화, 마약류, 조직폭력 등 죄질이 중하거나 근무자 및 다른 유치인에 대한 위해 또는 자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유치인에 대하여는 탈의막 안에서 속옷을 벗고 신체검사의로 갈아입도록 한 후 정밀하게 위험물 등의 은닉여부를 검사)로 유치인의 죄질 등을 고려하여 개별적·선별적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교정시설의 경우 항문검사가 모든 수용자에게 일괄적으로, 그리고 한 가지 방법으로만 획일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12. 2011년 헌법재판소는 항문검사에 대해 “수용자가 느끼는 모욕감이나 수치심이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지만, 흉기 기타 위험물이나 금지물품을 교정시설 내로 반입하는 것을 차단함으로써 수용자 및 교정시설 종사자들의 생명·신체의 안전과 교정시설 내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공적인 이익이 훨씬 크다”며 합헌 결정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헌법재판소 2011. 5. 26. 선고 2010헌마775 결정). 그러나 지난 합헌 결정 이후 3년이 지났고 재판관도 대부분 교체되었습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기본적 품위를 유지할 수 없도록 하는 항문검사에 대해 헌재가 위헌 결정을 할 것을 기대합니다.

13. 이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아래 ‘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됩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천주교인권위는 유족의 뜻을 받아 2009년 5월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소속 변호사들로 하여금 수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별첨.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14. 많은 취재와 보도를 부탁드립니다. (끝)

※별첨.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별첨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하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셨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우신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셨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서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되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2004년 5월 25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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