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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거짓’ 판단 서신 발송 불허 사건 국가배상 판결에 대한 논평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4-12-18 18:19:20  |   icon 조회: 6235
[보도자료]

‘거짓’ 판단 서신 발송 불허 사건
국가배상 판결에 대한 논평

해남교도소, KBS·MBC 제보 서신 ‘명백한 거짓사실’이라며 발송 금지
법원, “일부 내용은 거짓” 원고 패소 판결…위헌제청 신청도 기각


1.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 교도소 수용자가 언론사로 발송하려는 서신 내용이 거짓이라는 이유로 발송을 불허한 교도소의 조치가 일부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1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7단독 우광택 판사는 해남교도소 수용자 김아무개씨가 제기한 국가배상청구 소송 1심에서 국가가 김씨에게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패소 판결을 내놨습니다. 이에 우리 위원회는 같은날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별첨1. 논평)

3. 김씨는 지난해 9월 12일 각각 목포 KBS 보도국장과 광주 MBC 보도국장에게 보내기 위해 밀봉한 서신 2통을 해남교도소 교도관에게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담당 교도관은 교도소 관리와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어서 발송을 불허한다고 구두 통보하고 김씨에게 개봉된 상태의 서신을 돌려주었습니다. 지난해 12월 6일 해남교도소는 사건 경위를 묻는 우리 위원회의 질의서에 대한 답변서를 통해 김씨의 편지가 형집행법 제43조 제5항 제4호 ‘수용자의 처우 또는 교정시설의 운영에 관하여 명백한 거짓사실을 포함하고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발송을 불허했다고 밝혔습니다. (별첨2. 해남교도소 답변서) 이에 김씨는 지난 4월 16일 국가를 상대로 2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낸 바 있습니다. 또한 김씨는 1심 소송 중 형집행법 제43조 제5항 제4호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4. 이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이하 ‘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됩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우리 위원회는 유족의 뜻을 받아 2009년 5월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소속 변호사들로 하여금 수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별첨3.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5. 많은 관심과 보도 부탁드립니다. (끝)


※별첨 1. 논평
2. 해남교도소 답변서 (별도 파일)
3.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별첨1
논평



자의적인 서신 발송 금지에 면죄부를 준 법원 판결을 규탄한다
‘거짓’ 판단 서신 발송 불허 사건 국가배상 판결에 대한 논평


교도소 수용자가 언론사로 발송하려는 서신 내용이 거짓이라는 이유로 발송을 불허한 교도소의 조치가 일부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7단독 우광택 판사는 해남교도소 수용자 김아무개씨가 제기한 국가배상청구 1심 소송에서 국가가 김씨에게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패소 판결을 내놨다.

김씨는 지난해 9월 12일 각각 목포 KBS 보도국장과 광주 MBC 보도국장에게 보내기 위해 밀봉한 서신 2통을 해남교도소 교도관에게 제출했으나, 소측은 김씨의 편지가 형집행법 제43조 제5항 제4호 ‘수용자의 처우 또는 교정시설의 운영에 관하여 명백한 거짓사실을 포함하고 있는 때’에 해당한다며 발송을 불허했다.

김씨가 목포 KBS 보도국장에게 보내려 한 편지는 △수용자가 국가인권위 진정과 법무부장관 청원 등을 해도 증거를 확보할 수 없어 유야무야로 넘어가기가 다반사이고 △다른 교도소로 이송된 수용자가 자신으로부터 티셔츠를 갈취 당했다고 무고하였고 △이에 따른 보복성 검방 때문에 독방에 조사수용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김씨에 따르면, 문제가 된 티셔츠는 이송되면서 선물로 주고 간 것이었고 이후 검사가 해당 수용자를 무고죄로 약식기소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법원은 “피고는 통상적인 절차 진행으로 원고를 처우제한이 없는 조사 수용을 하였을 뿐인데 원고가 위 편지에 마치 교도소측에서 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처럼 기재한 것이 명백한 거짓 사실이라고 주장하지만 피고의 위 주장 자체에 의하더라도 이를 명백한 거짓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원고로서는 자신에 대한 조사수용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므로 교도소측에서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법원은 김씨가 광주 MBC 보도국장에게 보내려 한 편지에 대해서는 “원고는 교도소 안에서 마약이 유통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기재하였으나 이 부분은 명백한 거짓 사실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고 피고가 이를 이유로 위 편지의 발송을 불허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김씨의 편지는 마약사범이 일반사범과 접촉할 수 없도록 차단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실제로 당시 언론은 마약사범이 일반 수용자를 이용하여 필로폰을 반입한 사건, 정신과 의사가 수감 중인 마약사범에게 향정신성 의약품을 제공한 사례, 마약사범이 형사재판을 받으면서 공범과 수학 문제 형식의 암호문을 주고받은 사례를 보도하기도 했다. 김씨의 편지는 이런 기사를 바탕으로 수감 생활에서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하여 마약사범과 일반사범을 분리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이 발송되어 언론에 보도된다 하더라도 수형자의 교화 또는 건전한 사회복귀를 해칠 우려나 시설의 안전 또는 질서를 해칠 우려와는 무관하므로 해남교도소가 김씨의 서신 발송을 금지한 조치는 위법하다. 설사 김씨의 서신에 다소 부정확하거나 감정적 또는 과장된 표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김씨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여 보도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는 해당 언론사다. 또한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이 발생하더라도 이는 해당 언론사와 당사자인 김씨가 지는 것이지 해남교도소가 지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해남교도소가 김씨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미리 단정하여 서신 발송 자체를 가로막은 것은 수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통신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소측이 서신 검열 권한을 남용하는 관행에 손을 들어준 것이자 교정시설에 만연한 서신 발송 금지 조치에 면죄부를 부여한 것이다.

한편 우리는 이번 소송 중 제기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에 대한 법원의 기각 결정에 대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발송 금지 조치의 법적 근거인 형집행법 제43조 제5항 제4호의 ‘거짓’이라는 문구는 누가 판단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다. 어떤 표현에서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객관적인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 역시 어렵다. 지금은 거짓으로 인식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그 판단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결국 위 규정은 서신 내용에 ‘수용자의 처우 또는 교정시설의 운영’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외부로 알리고 싶지 않거나 불편한 내용이 있을 때는 ‘명백한 거짓사실’이라는 자의적인 판단을 하여 발송을 불허할 수 있는 부적절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수용자들은 처우 또는 교정시설의 운영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통신이 불허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기검열을 하여 아예 언급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심화되면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교정시설 내에서 심각한 기본권 침해 상태가 방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2010년 헌법재판소는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를 처벌하는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에 대한 위헌소원(이른바 ‘미네르바 사건’)에서 위헌 결정을 한 바 있다. 당시 헌재는 ‘공익을 해할 목적’ 부분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지만, 재판관 5인은 ‘허위의 통신’ 부분도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이들은 “어떤 표현이나 정보의 가치 유무, 해악성 유무가 국가에 의하여 1차적으로 재단되어서는 아니되며, 이는 시민사회의 자기교정기능과 사상과 의견의 경쟁메커니즘에 맡겨져야 한다. 세계적인 입법례를 살펴보아도 허위사실의 유포를 그 자체만으로 처벌하는 민주국가의 사례는 현재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2010. 12. 28. 선고 2008헌바157, 2009헌바88(병합) 결정).

우리는 이번 판결에 수긍할 수 없으며 당사자와 협의하여 항소 여부를 검토할 것이다. 또한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수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통신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는 형집행법 제43조 제5항 제4호가 위헌임을 끝내 확인할 것이다.


2014년 12월 18일

천주교인권위원회



별첨3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하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셨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우신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셨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서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되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2004년 5월 25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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