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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산재 사망 사건 승소에 대한 논평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5-08-19 12:14:50  |   icon 조회: 4160
보/도/자/료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산재 사망 사건
승소에 대한 논평

1.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의 죽음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았습니다. 12일 서울행정법원 제1부(재판장 이승택)는 현대중공업의 사내하청 업체에서 페인트 및 시너를 수거, 폐기하는 작업을 하다가 2011년 10월 다발성 골수종으로 사망한 김아무개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19일 우리 단체들은 이번 판결에 대한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별첨1. 논평)

3. 페인트 및 시너에 함유된 벤젠의 인체 유해성은 산업의학적으로 이미 밝혀져 있고, 현행 법령도 업무상 질병과 벤젠의 연관 관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국제암연구소는 벤젠을 1등급 발암인자로 분류하고 있고, 미국산업안전보건청은 공기 중 벤젠 허용농도를 1ppm으로 삼고 있는데, 미국 전문가단체인 산업위생사협의회는 1990년 벤젠의 공기 중 허용농도를 0.1ppm으로 낮출 것으로 권장한 바 있습니다. 한국은 벤젠 노출 기준을 10ppm 이하로 규제하다가 2003년경부터 1ppm 이하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산재법 시행령은 ①벤젠 1ppm 이상의 농도에 10년 이상 노출되었거나 ②10년 미만이더라도 누적 노출량이 10ppm 이상이거나 과거에 노출되었던 기록이 불분명하여 현재의 노출농도를 기준으로 10년 이상 누적 노출량이 1ppm 이상인 경우 다발성 골수종이 발병하면 업무상 질병으로 보고 있습니다.

4. 대법원은 이러한 기준이 “예시적으로 규정한 것…그 기준에서 정한 것 외에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질병을 모두 업무상 질병에서 배제하는 규정으로 볼 수는 없다”, “벤젠으로 인하여…질환이 발생하였거나 적어도 발생을 촉진한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고 추단할 수 있으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4. 6. 12. 선고 2012두24214 판결).

5. 이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아래 ‘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천주교인권위는 유족의 뜻을 받아 2009년 5월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별첨2.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6. 많은 취재와 보도를 부탁드립니다. (끝)



※별첨 1. 논평
2.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별첨1
논평



위험의 외주화, ‘진짜 사장’이 책임져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산재 사망 사건 승소에 대한 논평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의 죽음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12일 서울행정법원 제1부(재판장 이승택)는 현대중공업의 사내하청 업체에서 페인트 및 시너를 수거, 폐기하는 작업을 하다가 2011년 10월 다발성 골수종으로 사망한 김아무개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우리는 이번 판결이 고인의 업무와 발병 및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 책임을 유족에게 과도하게 지웠던 다른 선례와 달리, 열악한 작업 환경과 한국의 유해물질 관리 수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김씨는 1992년부터 현대중공업의 여러 사내하청 업체에서 선박 도장작업에 사용되는 벤젠 성분이 함유된 페인트, 시너 등을 폐기물 수집소로 운반하여 잔류 페인트 등을 폐기용 드럼통에 부어 모으는 작업을 해왔다. 김씨는 잔류 페인트에서 나오는 가스가 터지지 않게 하기 위해 페인트 등의 통 윗면을 절개하고 잔류물이 남지 않도록 맨손으로 페인트 등을 만지기도 했다. 폐기물 수집소는 반(半) 개방된 장소여서 가스가 있을 수밖에 없었으나 전문적 보호 장구나 환기 시설은 갖추어지지 않았다. 이런 폐기 작업을 하루 3~4시간씩 하며 하루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던 김씨는 2002년 10월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이후에도 같은 작업 환경에서 근무하다가 2011년 5월 다발성 골수종으로 인한 신장 손상으로 인하여 말기 신장병 진단을 받았고 같은 해 10월 만성 신부전에 따른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김씨의 유족은 김씨가 업무상 장기간 노출된 유해물질로 발병한 다발성 골수종이 악화되어 사망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김씨의 최초 진단 시점이 입사 후 1년 6개월 정도였고, 실제 작업장 측정 결과 발암물질 노출 정도가 미미했다며 이를 거부했다. 이에 유족은 2013년 8월 공단을 상대로 이번 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 공단은 2010년 하반기와 2011년 상반기에 사내하청 업체 5개를 대상으로 한 작업환경측정 결과를 제시하면서 김씨의 공정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2002년 발병 이후에 측정된 자료는 관련성이 적다고 일축하면서 “1990년대에 페인트 및 시너에서 벤젠 함유량이 상당 부분 검출되었고, 특히 우리나라는 2003년도까지는 산업현장에서 벤젠 농도의 규제를 10ppm 이하로 매우 느슨하게 규제하였으므로 망인이 당시 근무했던 사업장에서도 현재의 기준치인 1ppm을 상회하는 수준의 벤젠 농도가 유지되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또한 재판부는 “망인은 직접 도장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특별한 보호구도 지급되지 않은 채 벤젠 성분이 함유된 페인트 및 시너를 직접 손으로 만지기도 하였다”, “폐기 작업을 수행하는 동안에도 페인트 및 시너 통의 윗면을 모두 열어놓아 잔류 페인트 및 시너에서 나오는 유독 가스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공단은 또한 김씨의 최초 진단 시점이 입사 후 1년 6개월 정도라는 이유로 업무와 발병 사이의 인과 관계를 부인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사망할 당시의 사업장에서 수행한 업무뿐만 아니라 사망 전에 근무하였던 사업장에서 수행한 업무도 모두 포함시켜 판단의 자료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1992년부터 현대중공업의 여러 사내하청 업체에 소속되어 일했지만, 회사의 이름은 달라도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현대중공업의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재판부가 “망인이 1992년부터 페인트 및 시너 운반 및 폐기 업무를 약 7년 정도 수행하면서 상당한 양의 벤젠에 노출되었을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게다가 다발성 골수종 환자의 연령대가 △60대 32.1% △70대 27.7% △50대 20.4%로 비교적 높은 연령대에서 많이 발생되는데, 40대 미만의 환자는 전체의 2% 미만에 불과하다. 재판부는 “망인은 38살의 나이에 다발성 골수종이 발병하였고, 망인이 벤젠에 상당 기간 동안 노출되었다는 점 외에는…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만한 사정이 보이지도 않는다”며 “1992년경부터 벤젠에 노출됨에 따라 다발성 골수종이 걸렸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우리는 이번 판결이 조선업계, 그 중에서도 현대중공업에 만연한 사내하청 노동자의 죽음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해양플랜트협회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3년 현대중공업 조선 부문의 기능직 25,063명 중 사내하청은 17,157명으로 68.4%에 달했다. 이들은 형식적으로는 원청인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도급받은 하청회사에 소속되어 있지만, 원청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와 유사한 업무를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4월 기업인권네트워크 등이 만든 ‘현대중공업 산재발생에 관한 의견서’에 따르면 조사를 시작한 2000년 이래 가장 많은 수인 13명이 2014년에 사망했는데, 사망자 모두가 사내하청 노동자였다고 한다(울산 산업재해추방운동연합 집계).

하청업체는 보다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더 적은 노동력으로 짧은 시간에 작업량을 달성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현장은 원청의 사업장이므로 영세한 하청업체에서 작업 환경을 개선할 여지도 의지도 적을 수밖에 없다. 사내하청 노동자는 구조적으로 사망 사고 가능성이 높은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은수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공개한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산재 사고가 줄었다는 이유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1000억 원 가까운 산재보험료를 할인받았다. 원청이 산재 발생 가능성이 높은 작업 부문을 의도적으로 하청업체로 이전함으로써 자신의 산재 발생률은 줄이는 ‘위험의 외주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진짜 사장’이 책임져야 한다. 산재 예방과 사고 후 책임의 법적 문제를 하청업체에 전가하는 사내하청 제도와 노동자의 건강권은 양립할 수 없다. 현대중공업은 사내하청 노동자의 산재를 포함하여 자신의 사업장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재해에 책임을 지고 사고 예방과 피해자 구제 대책을 세워야 한다.

2015년 8월 19일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천주교인권위원회


별첨2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하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셨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우신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셨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서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되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2004년 5월 25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2015-08-19 12: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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