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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보호감호 합헌 결정에 대한 논평 - 이중처벌 정당화 한 헌법재판소를 규탄한다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5-10-06 10:48:21  |   icon 조회: 3151
[보도자료]
보호감호 합헌 결정에 대한 논평


1.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 지난달 24일 헌법재판소는 전두환 군사반란 정권이 만든 보호감호제를 유지시키고 있는 사회보호법 폐지 법률 부칙 제2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놨습니다. 6일 우리 위원회는 이번 결정에 대한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별첨1. 논평)

3. 이번 헌법소원의 청구인 이아무개씨는 2003년 광주지방법원에서 강도상해죄 등으로 징역 10년과 보호감호를 선고 받았습니다. 2005년 사회보호법이 폐지되었지만 이씨는 2013년 4월까지 만기 복역한 후 경북북부제3교도소에 수용되어 현재 보호감호 집행을 받고 있습니다. 비록 이씨가 행한 범행이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에 대한 형벌은 마친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씨는 길게는 7년을 교도소에서 보낼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이씨는 지난해 4월 광주지법에 ‘재판의 집행에 관한 이의신청’을 제기했고 사건 계류 중 사회보호법 폐지 법률 부칙 제2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으나 같은해 5월 1일 광주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마옥현)는 이의신청과 위헌신청을 모두 기각했습니다. 이에 이씨는 이번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4. 이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아래 ‘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우리 위원회는 유족의 뜻을 받아 2009년 5월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별첨2.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5. 많은 관심과 보도 부탁드립니다. (끝)

※별첨 1. 논평
2.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별첨1 논평


이중처벌 정당화 한 헌법재판소를 규탄한다
보호감호 합헌 결정에 대한 논평

지난달 24일 헌법재판소는 전두환 군사반란 정권이 만든 보호감호제를 유지시키고 있는 사회보호법 폐지 법률 부칙 제2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놨다. 우리는 기본권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스스로 저버린 헌법재판소를 규탄한다.

1980년 제정된 사회보호법은 헌법이 금지하는 거듭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아오다가 25년만인 지난 2005년 여야 합의로 폐지되었다. 당시 국회는 보호감호제가 “피감호자의 입장에서는 이중처벌적인 기능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집행실태도 구금위주의 형벌과 다름없이 시행되고 있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지난 권위주의시대에 사회방위라는 목적으로 제정한 것으로 위험한 전과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을 위주로 하는 보안처분에 치중하고 있어 위헌적인 소지가 있”다며 사회보호법 폐지 법률을 의결했다. 그러나 폐지 법률은 부칙 제2조에 “이 법 시행 전에 이미 확정된 보호감호 판결의 효력은 유지되고, 그 확정판결에 따른 보호감호 집행에 관하여는 종전의 「사회보호법」에 따른다”고 규정하여, 법 폐지 이전에 보호감호 판결이 확정된 사람에게는 보호감호제가 유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보호법 폐지 이전에 판결이 확정된 사람은 본형 집행 이후 보호감호 집행을 받게 된다. 또한 보호감호 중 가출소했다가 새로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가출소 취소 결정을 받을 수 있어 본형 이외에 남은 기간의 보호감호 집행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사건 결정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보호감호 집행을 받고 있는 사람은 103명, 징역형 집행 종료 후 보호감호 집행이 예정된 사람은 75명으로, 모두 178명이 이번 결정의 대상이 된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에서 “보호감호는 형벌과는 목적과 기능을 달리하는 사회보호적 처분이고 그 집행상의 문제점은 집행의 개선에 의하여 해소될 수 있다”며 이중처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2009년 합헌 결정(2007헌바50)을 재확인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2009년 판단을 변경할 만한 사정변경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현행 보호감호 제도의 집행 실태를 살펴봤다면서 피보호감호자들이 일반 수형자와는 다른 수용동 건물에서 따로 생활한다는 점, 작업이 의무인 수형자와는 달리 신청한 자에 한하여 작업을 실시한다는 점 등을 들어 보호감호의 집행이 자유형의 집행과는 다르게 이뤄지고 있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보호감호제는 사회복귀 촉진이라는 취지와 달리 징역형의 연장에 불과하다. 감호소에는 교육이나 개선, 치료 프로그램이 전무하고 피감호자가 징역형 수형자들과 함께 공장생활을 하는 등 뚜렷한 경계가 없다. 또한 감호소의 시설 및 환경이 매우 낙후되어 있고 3평 남짓한 방에서 3명의 피감호자가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방안에 반사경이 설치되어 일반적인 감시를 당하는 등 일반 징역형 교도소 보다 열악한 처우를 받고 있다. 피감호자는 본형과 보호감호를 합쳐 최하 7∼8년의 장기 수용 생활을 하는데, 경북 청송군 진보면의 3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중에 위치한 감호소에 수감되면서 가족 및 지인과의 접촉이 어렵다. ‘청송 출신’에 대한 심한 편견으로 인해 재범의 유혹 없이 사회에 잘 적응하며 살 것을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호감호제는 사회복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직업훈련, 교육 프로그램, 가족만남의 날 행사 등 사회적 처우는 피보호감호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수형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징역형의 연장에 불과한 보호감호제는 자유형의 집행과 다를 바 없으므로 헌법이 금지하는 거듭처벌 금지 원칙에 위반된다. 2011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당사자를 일반공중의 이익을 위해서 특별희생자로 만들기 때문에 보호감호에 내재하는 자유권의 침해는 명백히 중대하고, 따라서 보호감호집행은 보호감호 수용자뿐만 아니라 일반공중에 대해서도 형벌집행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명백히 인식시켜야 하고 그렇지 않은 이상 위헌”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보호감호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보호수용제’를 추진하여 국회에 법안까지 제출한 상황이다.

보호감호제는 그 집행 기간을 법관이 아니라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원회가 결정하므로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함으로써 적법절차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것이 입법재량의 범위 내에 있고, 위원회 결정에 불복하면 행정소송 등 사범심사의 길이 열려 있어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법무부 소속 위원회는 삼권분립의 요청에 따라 행정부와 독립된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위치와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가출소 여부와 관련되는 ‘재범의 위험성 판단’이 전적으로 행정부의 관할 하에 이루지는 셈이어서 법원의 관여가 배제되므로 오남용의 위험이 매우 현저하다. 피보호감호자가 확정 판결까지 수년이 걸리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하여 보호감호제의 위헌성이 치유될 수는 없다.

한편 사회보호법 폐지 법률 부칙은 사회보호법 폐지 시점을 기준으로 보호감호 처분을 받지 않는 판결 미확정자에 비해 판결 확정자를 불합리하게 차별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보호감호 대상자가 일시에 석방될 경우 초래될 사회적 혼란의 방지, 법원의 양형실무 및 확정판결에 대한 존중 등을 고려하여 신체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보호감호제의 위헌성이 문제되어 폐지된 마당에 단지 형이 확정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둔 것은 입법자의 재량 범위를 넘어서 기본권을 중대하고 과도하게 침해한 것이다.

사회보호법은 1980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이 급조한 헌법파괴기구인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만들어졌다. 사회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일부 시민들을 사회로부터 추방시키기 위해 만든 보호감호제는 헌법과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이미 10년 전에 국회에서 보호감호의 이중처벌성과 인권침해를 인정하여 사회보호법을 폐지했는데도 일부에게 보호감호를 계속 집행하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위원회는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에도 불구하고 보호감호제를 끝내 폐지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2015년 10월 6일

사단법인 천주교인권위원회


별첨2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하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셨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우신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셨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서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되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2004년 5월 25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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