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 성명/논평
[보도자료] 법원, 경찰의 무분별한 마포대교 행진 금지 처분에 제동
icon 천주교인권위
icon 2016-03-25 14:55:47  |   icon 조회: 2861
보/도/자/료

법원, 경찰의 무분별한 마포대교 행진 금지 처분에 제동

1.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 경찰의 무분별한 집회 금지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걸었습니다. 3월 24일 서울행정법원 제1부(재판장 김용철 판사)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장연)가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옥외집회 금지통고 처분의 효력정지 신청을 인용했습니다. 재판부는 “소명자료에 의하면 위 처분의 집행으로 신청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고, 집행정지로 인하여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자료가 부족하다”며 서장연의 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결정을 집회·시위를 자의적으로 금지함으로써 헌법이 금지하는 허가제를 운영하고 있는 경찰에 대한 사법부의 엄중한 경고로 평가하며 환영합니다.

3.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3월 25일 오후 4시~6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더불어민주당사→마포대교→국민의당사→마포대교→새누리당사를 1개 차로로 순회하는 행진을 하기 위해 3월 11일 서울청에 집회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12일 서울청은 마포대교와 국민의당사 사이 구간이 △집시법 시행령상 주요 도로에 해당하며 △1일 교통량이 상당하여 평상시에도 교통 체증이 심한 곳으로 △1개 차로로 행진할 경우 주변 도로의 교통 소통에 장애를 발생시켜 퇴근 시간대 극심한 교통 불편 초래가 예상된다는 이유로 금지통고했습니다(집시법 제12조). 이에 서장연은 15일 서울행정법원에 집회 금지통고 처분의 취소 소송을 제기하면서 집행정지를 신청한 바 있습니다.

4. 22일 열린 집행정지신청 심문기일에서 경찰은 서울시의 ‘2014년 서울 정기 교통량조사’를 인용하여 마포대교로 연결되는 경인로의 1일 교통량이 8만여대에 달하는 등 평소에도 교통 체증이 심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자료를 보더라도 1개 차로 평균 교통량은 도심(9,459대)이나 간선도로(11,812대), 시 경계(11,856대)에 비해 한강 교량(6,851대)은 훨씬 적습니다. 같은 자료는 도로의 실제 혼잡도 파악을 위해서는 도로의 밀도를 분석해야 한다며 “타 지점군에서 보다 한강교량 상에서 밀도가 낮아 차량간격을 넓게 운행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서울의 경우 집회가 없는 때에도 교통 체증이 심하므로 만약 교통 소통만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집회는 금지될 것입니다. 집회는 개념 필연적으로 일정한 공간을 점유한 채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필연적으로 교통 소통에 어느 정도 장애를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헌법은 이런 전제 하에서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5. 한편 경찰은 과거 전력으로 볼 때 차로 개수와 관계없이 장기간 차로를 점거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경찰은 서장연이 10여년 전인 2005년 4월 20일 마포대교를 4시간 동안 점거했다고 주장했지만, 서장연은 2005년 9월 28일 설립된 단체입니다. 또한 과거 전력을 근거로 장래의 집회를 금지한다면 이는 헌법이 금지하는 허가제가 되어 경찰의 자의적인 집회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도 “단순히 대규모 인원이 참석하고 교통 혼잡이 유발되며 소음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거나, 참가자가 개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위 조항에 의해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를 금지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헌법재판소 2010. 4. 29. 선고 2008헌바118 결정).

6. 이번 결정을 계기로 우리는 집시법상 금지통고 제도 자체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2016년 1월 한국을 방문한 마이나 키아이(Maina Kiai)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1월 29일 기자회견에서 “사전 통보(신고)제도는 아주 제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시위를 사전에 차단할 목적으로 이용되어서도 안 된다. 사전 통보(신고)를 하였더니 당국에서 교통방해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불허하거나 특정 장소나 시간에는 시위를 전면 금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이러한 이유는 국제인권법상 정당한 시위 불허 사유로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서울의 경우 경찰이 집회를 금지할 수 있는 ‘주요 도로’로 16개가 지정되어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넓은 도로가 ‘주요 도로’로 규정되어 있어 경찰에게 자의적으로 행진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빼든 ‘집시법 12조’…서울 웬만한 도로 모두 집회 불가, <한겨레> 2015. 12. 2.)

7. 이처럼 경찰이 집회가 열리기도 전에 ‘주요 도로’임을 이유로 자의적으로 금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금지통고 제도는 헌법이 금지하는 허가제에 해당하므로 폐지되어야 마땅합니다. 집시법이 개정되기 전이더라도 정부는 집시법 시행령에 규정된 ‘주요 도로’를 대폭 축소해야 할 것입니다. 현행법도 ‘주요 도로’라고 해서 무조건 집회를 금지하도록 규정한 것이 아니라 경찰에게 금지 여부에 관한 재량을 부여하고 있으므로, 경찰은 집회를 자의적으로 금지하는 관행을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8. 아직도 장애인의 선거권은 충분히 보장되지 않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없이 2층에 설치된 투표소는 휠체어로 접근이 불가능하고 선거공보물은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없습니다. 수화방송 없는 선거방송 토론회는 청각장애인을 배제하고 있고, 투표안내문은 발달장애인이 손쉽게 이해할 수 없도록 구성되어 있는 등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선거 과정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경찰은 장애인이 직접 거리에 나서서 정당을 상대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인 집회·시위마저 금지했던 것입니다.

9.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3월 25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20대 총선 장애인 생존권 쟁취 전국집중결의대회’를 엽니다. 오후 4시부터는 이번 법원 결정으로 허용된 주요 정당 순회 행진을 진행합니다. 이어 저녁 8시에는 새누리당사 앞에서 ‘최옥란 열사 14주기 및 14회 장애해방열사 합동추모제’를 열 예정입니다. 3월 26일에는 오전 11시 서울 보신각 앞에서 ‘12회 전국장애인대회’를 열고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까지 이어지는 420투쟁의 시작을 알릴 계획입니다. 같은 날 오후 1시에는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총선지역투쟁선포 기자회견’이 열립니다.

10. 이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 공익소송기금(아래 ‘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천주교인권위는 유족의 뜻을 받아 2009년 5월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별첨.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11. 많은 관심과 보도 부탁드립니다. (끝)

※별첨.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별첨
故유현석 변호사님의 걸어오신 길


유현석 변호사님은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하였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셨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하셨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우신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으셨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사셨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서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되었다.
유현석 변호사님은 2004년 5월 25일 선종하여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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