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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명동성당 들머리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농성장에서
icon 천주교인권위원회
icon 2002-05-09 11:52:55  |   icon 조회: 4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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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박선영 열사

최종수 신부

들머리 돌계단에 누더기 이불을 둘러쓴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람들
밤새 내린 눈송이들
모퉁이에서 햇살을 기다리다 꽁꽁 얼어붙은
그 가파른 언덕을 오른 마구간
아직도 아기예수는 말구유에 누워 있다,
황토방 댓돌 위에 정갈한 흰 고무신 두 켤레
누구의 발걸음을 기다리는 것일까.

네온사인 불빛에 충혈된
해질녘 눈발이 날린다
편갈라 멱살을 흔들며 싸우는
여의도 유치원 아이들의 심술처럼
속절없는 눈송이들
삼삼오오 요란하게 흩날린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
돌덩이 가슴들의 눈동자처럼
누더기 이불 위로 하나 둘 쌓인다.

둘째 딸을 망월동에 묻고 나서야
숯덩이 주검들의 절규를
깃발의 분노로 부활시킨 어머니,
뀅한 눈으로 쓰러져
동상 걸려 불그스레 부어오른 손등에
링게르 꽂고 있다
내가 짐만 되는 것 같아요
어미가 잘못 살은 탓이예요
그렁그렁 이슬 고이는 백발의 어머니.

누가 어머니의 눈동자에
아직도 피눈물을 쏟게 하는가,
감히 어떤 쇠붙이들이
햇살을 창살에 가두려 하는가.

바람 한 자락도 갇히면
위-잉 위-잉 소리치는데
하늘을 날지 못하는
송이송이 눈송이도 한으로 맺히는데
누가 손발을 묶는가
누가 하늘에 자물쇠를 채우는가.

일장기 허물을 벗고서
성조기로 문신한 반역자들
저기 회전 의자에서 거들먹거리는 자들
녹슬은 펜촉으로 긁적거린
쓰레기통에 처박힌 신문들
희멀건 동태 눈깔 같은 카메라들
그 동업자들인가 청부업자들인가,
자기 밥그릇에 피눈물을 채우는 자들
스스로의 목구멍에 어둠을 처넣는 자들
저기 저 여의도 둥지에서
까마귀 떼처럼 지저귀는가.

기어이 솟아오른다
허기진 창자를 채우며
어둠의 창살을 쥐어뜯고서
아침 햇살은 오리라
그 햇살 가슴에 품고
어머니는 다시 젖을 물리리라,
새록새록 피어날
아이의 미소처럼
어머니는 기필코 춤을 추리라.

명동성당 들머리 국가보안법 폐지 단식농성장에서
2002-05-09 11: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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