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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세계평화의 날 담화]인권 존중은 참 평화의 비결이다
icon 천주교인권위원회
icon 2002-05-09 12:02:15  |   icon 조회: 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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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세계 평화의 날 담화

1999년 1월 1일

인권 존중은 참 평화의 비결이다


1. 거의 20년 전에 선의를 지닌 모든 사람에게 보낸 저의 첫 회칙 [인간의 구원자](Redemptor Hominis)에서, 저는 인권 존중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인권이 온전히 존중될 때는 평화가 꽃피지만, 인권이 유린당하면 전쟁이 일어나 전보다 더욱 심각한 인권 침해가 발생합니다.<1>

대희년을 한 해 앞둔 새해를 시작하며, 저는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사랑하고 이 세상에 평화를 굳게 다지고자 하는 모든 분들,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 여러분과 함께 참으로 중요한 이 주제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세계 평화의 날을 앞두고 제가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소신은 이렇습니다. 인간 존엄의 증진을 지도 원리로 삼고 공동선의 추구를 최우선 과업으로 삼을 때에 평화 구축을 위한 확고하고 지속적인 토대가 놓입니다. 그러나 인권을 경시하거나 무시할 때에 그리고 개인의 이익 추구를 불의하게도 공동선에 앞세울 때에는 반드시 불안과 폭동, 폭력의 씨앗이 뿌려지게 됩니다.


인권 존중은 인류의 유산

2. 인간의 존엄은 초월적 가치입니다.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게 인식해 왔습니다. 사실, 인간 역사 전체는 이러한 확신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고(창세 1,26-28 참조) 따라서 근본적으로 창조주를 향하고 있는 모든 인간은 동일한 존엄을 지닌 사람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개인의 선을 증진하는 것은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것이며, 바로 이 점에서 권리와 의무가 만나고 서로 힘을 북돋아 줍니다.

우리 시대의 역사는 인간에 대한 진리의 망각에서 오는 위험을 비극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 눈앞에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나치즘, 파시즘과 같은 이념의 결과를, 그리고 인종 우월주의, 국수주의, 민족 배타주의와 같은 허황된 통념의 결과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고양과 개인적 열망의 이기적 충족을 삶의 궁극 목표로 삼는 물질적 소비주의의 결과는 언제나 명백히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단히 위험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 영향은 지극히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인간 존엄에 대한 모독은 그 근거가 무엇이든, 어떠한 형태이든, 어디서 일어나든 결코 그냥 넘겨서는 안 됩니다.


인권의 보편성과 단일성

3. 1998년은 세계 인권 선언 채택 5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 선언은 의도적으로 국제연합 헌장에 이어져 있는데, 이 두 문서가 공통된 열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근본 전제로서 세계 인권 선언은 인류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지닌 타고난 존엄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의 인정이 전세계의 자유와 정의, 평화의 토대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2> 그 뒤에 나온 인권에 관한 모든 국제 문서는 이러한 진리를 다시금 선포하면서, 인권은 인간의 타고난 존엄과 가치에서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고 천명합니다.<3>

세계 인권 선언은 명확합니다. 이 선언은 그것이 선포하는 권리들을 인정하는 것이지 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권리들은 인간과 인간 존엄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 권리들을 정당하게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인간 본성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동등한 권리를 지닙니다. 그러한 까닭에, 이 권리들은 인생의 모든 단계와 모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상황에 적용됩니다. 이 권리들은 다함께 단일한 전체를 형성하면서 명백히 인간과 사회의 선을 모든 측면에서 증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인권은 전통적으로 두 범주로 광범위하게 분류됩니다. 하나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입니다. 두 범주 모두 정도는 다르지만 국제 협약으로 보장되고 있습니다. 모든 인권은 단일한 주체인 인간의 다양한 차원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든 범주의 인권을 온전히 증진하는 것은 참으로 개별 인권에 대한 철저한 존중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보편적이고 단일한 인권의 수호는 평화로운 사회 건설과 개인, 민족, 국가의 총체적인 발전에 필수적입니다. 세계 인권 선언이 전 인류를 위하여 정해 놓은 수준을 모든 경우에서 존중한다면, 인권의 보편성과 단일성에 대한 긍정이 개별 권리의 행사에서 문화적 정치적 차이를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근본 전제들을 염두에 두면서, 저는 특별히 오늘날 다소 공공연히 침해받고 있는 몇몇 구체적인 권리들을 밝히고자 합니다.


생명권

4. 그러한 첫째 권리가 생명에 대한 기본권입니다. 인간 생명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신성 불가침한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지 마라." 하는 하느님의 계명은 결코 넘어서는 안될 한계를 그어 주고 있습니다. "무고한 인간에게서 생명을 빼앗으려고 하는 고의적인 결정은 언제나 도덕적인 악입니다".<4>

생명권은 침해할 수 없습니다. 이는 긍정적인 선택 곧 생명을 위한 선택을 내포합니다. 생명 지향의 문화 발전은 모든 환경의 삶을 포용하며, 모든 상황에서 인간 존엄의 증진을 보장해 줍니다. 진정한 생명의 문화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세상에 태어날 권리를 보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 태어난 아이, 특히 여아의 생명을 영아 살해의 범죄에서 보호해 줍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의 문화는 장애인들이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발전시킬 수 있도록 보장해 주고, 병자들과 노인들을 적절히 보살펴 줍니다.

최근 유전 공학 분야의 발전은 매우 불안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과학 연구가 인간에게 봉사하려면, 그 모든 단계에서 면밀한 윤리적 성찰이 따라야 합니다. 윤리적 성찰은 온전한 인간 생명을 지켜 주는 적절한 법률적 규범을 만들게 할 것입니다. 생명은 결코 사물의 수준으로 격하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선택한다는 것은 온갖 형태의 폭력을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곧 수많은 인간을 괴롭히는 빈곤과 기아의 폭력, 무력 충돌의 폭력, 범죄적인 마약과 무기 거래의 폭력, 자연 환경에 대한 몰지각한 훼손과 같은 폭력을 거부한다는 뜻입니다.<5> 모든 상황에서 적절한 법률적 정치적 보장 조치로써 생명권을 증진하고 보호하여야 합니다. 한 인간의 존엄과 생명권에 대한 어떠한 침해도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권의 핵심인 종교 자유

5. 종교는 인간의 가장 깊은 열망을 표현하며, 인간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인간 관계에 영향을 줍니다. 근본적으로 종교는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물음에 답변을 해 줍니다. 따라서 종교 자유는 인권의 핵심입니다. 종교 자유는 불가침 권리이므로, 개인이 양심의 요구에 따라 종교를 바꿀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여야 합니다. 인간은 모든 상황에서 자기 양심을 따르도록 요구받으며, 결코 양심에 거슬러 행동하도록 강요될 수 없습니다.<6> 바로 이러한 까닭에, 그 누구도 어떠한 상황에서든 어떠한 동기에서든 특정 종교를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할 수 없습니다.

세계 인권 선언은 종교 자유에 대한 권리에는 단독으로든 집단으로든,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개인의 신념을 표명할 권리가 포함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7> 그럼에도 오늘날 종교 집회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거나 어느 한 종교의 신자들에게만 허용하는 곳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인간 기본권의 하나인 종교 자유에 대한 이러한 중대한 침해는 신앙인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국가가 어느 한 종교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할 때는 다른 종교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개인과 가정, 집단 전체가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여전히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나라들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종교 자유와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또 다른 문제를 결코 침묵으로 넘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서로 다른 종교적 신념과 문화를 가진 공동체나 민족들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다가 지나친 감정 대립으로 결국은 폭력 충돌로 변하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종교적 신념이라는 미명 아래 폭력에 의존하는 것은 주요 종교들의 가르침 자체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여러 종교 지도자들이 그 사실을 수없이 강조해 왔다는 사실을 저는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밝힙니다. 폭력 사용은 종교적으로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며, 참된 종교심을 길러 줄 수도 없습니다.


참여권

6. 모든 시민은 공동체 생활에 참여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신념은 오늘날 일반적인 공감대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권리는 부패나 특혜로 민주주의 과정이 무너질 때에는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부패는 권력 행사에 대한 정당한 참여를 방해하고 모든 사람이 공동체의 자산과 시설에서 골고루 혜택을 받아야 할 권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선거조차도 특정 정당이나 개인의 승리를 위하여 조작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모독하는 이러한 행위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시민들은 참여에 대한 권리뿐 아니라 책임도 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이러한 책임 행사를 방해받을 때 자신들의 실질적 역할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려, 결국 수동적인 무관심을 보이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될 때 건실한 민주 제도의 발전은 실제로 불가능해집니다.

최근에, 전체주의 형태의 정부에서 민주주의 정부로 옮겨가고자 분투하고 있는 국가들은 합법적인 선거를 보장하기 위하여 다양한 대책들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들이 비상시에 아무리 유용하고 효과적이라 하더라도, 민주 과정의 조작은 단호히 거부하여야 한다는 국민의 공통된 확신의 토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국제 공동체 안에서, 국가와 민족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깊이 변화시키는 결정들에 참여할 권리가 있습니다. 특정 경제 문제의 기술적인 세부 사항은 일부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논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치적 재정적 힘이 몇몇 국가의 정부나 특수 이익 집단이라는 소수에게만 편중되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국가와 국제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려면 경제 분야에서도 모든 사람이 그들과 관련된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극심한 차별

7. 가장 비극적인 형태의 차별은 인종 집단과 소수 민족들에게 생존할 수 있는 근본 권리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차별은 그들을 억압하거나 강제로 이주시키거나 그들이 어느 민족인지 더 이상 분간할 수 없도록 민족 정체성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인간에 대한 그러한 중대한 범죄 앞에서 우리가 그냥 침묵하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그러한 범죄를 종식시키려는 모든 노력은 결코 지나친 것일 수 없습니다.

그러한 범죄의 희생자들을 보호하고 그러한 범죄 예방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책임을 인정하려는 국가들의 의지가 증대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가 있습니다. 곧 최근의 국제연합 외교회의의 활동입니다. 국제연합 외교회의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정관을 명확하게 승인하였습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임무는 범죄를 규명하고, 집단 학살, 반인류적 범죄, 전쟁과 침략 등의 범죄를 저지른 책임자들을 처벌하는 것입니다. 이 새 기구가 건실한 법률적 토대 위에 세워진다면 세계 차원에서 실질적인 인권 보호에 점차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 성취의 권리

8. 모든 인간에게는 발전할 수 있는 타고난 잠재 능력이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자신의 인격을 충만하게 실현하고 사회 환경에 적절히 자리잡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는 어린이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하여야 합니다. 그들 앞날의 성공은 교육에 달려있습니다.

이러한 전망에서 볼 때, 세계의 일부 극빈 지역에서 교육의 기회, 특히 초등 교육 분야의 기회가 실제로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어찌 우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현실은 흔히 교사들에게 적절한 급여를 지급할 능력이 없는 일부 국가의 경제 상황에서 기인합니다. 또 다른 경우는, 초등 교육이 아니라 고등 교육이나 특수 교육에 돈을 들이는 것 같습니다. 특히 여자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 기회의 제한은 분명 차별 구조를 야기함으로써 사회의 전반적인 발전을 저해할 것입니다. 세계는 결국 새로운 기준에 따라 나뉘어질 것입니다. 한편에는 고도의 기술을 갖춘 국가와 개인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극히 제한된 지식과 능력을 가진 국가와 민족들로 나뉠 것입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이러한 현상은 국가와 국가 사이뿐 아니라 한 국가 안에서도 존재하는 이미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을 가중시킬 것입니다. 경제 선진국들의 도시와 농촌 개발 계획에서 교육과 직업 훈련이 일차적 관심사인 것처럼 개발도상국들에서도 교육과 직업 훈련이 주요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품위 있는 생활 수준에 이르는 조건인 또 하나의 기본권은 노동권입니다. 일할 권리가 없다면 먹을 것과 입을 것, 집과 보건 혜택, 다른 많은 생필품들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의 심각한 문제는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세계 도처의 수많은 사람이 실직이라는 참담한 현실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특히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이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야만 합니다. 비상 조치가 필요하긴 하지만, 실직이나 질병 또는 개인이 어쩔 수 없는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는 비상 조치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8> 가난한 사람들이 굴욕적인 구호 체제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도록 근본적인 노력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연대를 통한 세계 발전

9.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는 경제 금융 제도의 세계화는 세계의 공동선과 경제적 사회적 권리 행사를 보장할 책임 주체를 시급히 설정하여야 할 필요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자유 시장은 스스로 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시장이 충족시켜 줄 수 없는 다른 많은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공정한 물품 교환의 논리에 앞서, 그리고 그것에 적합한 정의의 형태들에 앞서, 인간이기 때문에 그 고귀한 존엄성을 이유로 인간에게 귀속되어야 할 그 무엇이 있습니다."<9>

최근의 경제 금융 위기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결과를 가져 왔고, 그들을 극도의 빈곤 상태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이제 막 일정한 지위에 올라 희망찬 미래를 바라보려는 시점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그러한 희망이 무참히 꺾이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에게나 자녀들에게나 비극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금융 시장의 불안정이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연대를 통한 세계 발전, 곧 모든 사람이 자신의 역량을 실현할 수 있는 지속적이고 총체적인 사회 발전이라는 새로운 미래상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세계 차원의 금융 관계 책임자들에게 간곡히 호소합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극빈국들의 심각한 외채 문제 해결을 위하여 진정으로 노력해 줄 것을 부탁 드립니다. 국제 금융 기관들은 이와 관련하여 치하할 만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관련된 모든 이에게, 특히 부유한 국가들에게 호소합니다. 이러한 조치들이 완전히 성공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해 주십시오. 2000년을 눈앞에 둔 지금, 되도록 많은 나라들이 현재의 어려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관련 기관들이 합의에 이르고자 하는 진실한 의지를 가지고 대화를 나눈다면 만족스럽고 확실한 해결책에 이르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렇게 하여 심각한 곤경을 겪고 있는 나라들이 발전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도 바로 우리 다가온 천년기를 새로운 희망의 때로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환경에 대한 책임

10. 인간 존엄의 증진은 건강한 환경에 대한 권리와 이어집니다. 이 권리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지닌 역동성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국제적 지역적 국가적 환경 규범들은 이 권리에 점차적으로 법률적 형태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률상의 조치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땅과 바다, 기후, 식물계와 동물계에 가해지는 심각한 파괴의 위험은 모든 나라, 특히 부유한 국가들에게 현대 문명의 전형적인 소비주의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도록 요청합니다. 비록 심각성이 덜하기는 하지만 과소 평가할 수 없는 또 다른 위험이 있습니다. 곧 농촌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땅을 어쩔 수 없이 지나치게 이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그들에게 토지 경작과 환경 존중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특별 교육이 장려되어야 합니다.

세계의 현재와 미래는 창조의 보전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과 환경은 끝없이 서로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행복을 환경에 대한 관심의 중심에 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창조물을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자연 자원과 그 올바른 사용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촉구합니다.


평화에 대한 권리

11. 어떤 의미에서, 평화에 대한 권리 증진은 다른 모든 권리에 대한 존중을 보장합니다. 그것은 힘의 구조가 공동선을 위하여 협력의 구조에 양보하는 사회를 건설하도록 장려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역사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폭력에 의존하는 것은 결국 실패하고 만다는 것을 자명하게 보여줍니다. 전쟁은 파괴합니다. 전쟁은 건설하지 않습니다. 전쟁은 사회의 도덕적 토대를 약화시키고 더욱 심한 분열과 지속적인 긴장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럼에도 무수한 희생자들을 내는 전쟁과 무력 충돌에 대한 소식은 끊이질 않습니다. 저의 선임자들과 저는 이러한 공포의 종식을 수없이 촉구하여 왔습니다. 전쟁이 진정한 모든 인도주의의 실패임을 깨달을 때까지 저는 계속해서 전쟁의 종식을 외칠 것입니다.<10>

다행스럽게도 일부 지역에서 평화 확립을 위한 조치가 취해지고 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협상을 계속하기로 결심한 용기 있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큰 갈채를 보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지역에서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대량 학살을 우리는 고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전 국민이 그들의 땅에서 쫓겨나고 가옥과 농작물들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 무수한 희생자들을 생각하면서, 저는 국가 지도자들과 선의를 지닌 모든 사람에게, 때로는 외부의 경제적 이해 관계로 촉발된 비참한 내전에 휘말린 사람들, 특히 아프리카의 그러한 사람들에게 원조의 손길을 뻗쳐, 그들이 내전을 끝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호소합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 조치로는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들에 대한 무기 거래를 근절시키는 것은 물론 대화의 길을 모색하는 민족 지도자들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다운 길이며 평화의 길입니다!

전쟁 상황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 분쟁과 폭력밖에 모르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저는 슬픔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어린이들은 평생 동안 그런 끔찍한 체험의 상처를 지니고 살아갈 것입니다. 전쟁터로 내몰리는 어린이들을 두고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린 생명들이 이런 식으로 죽어 가는 것을 용인할 수 있습니까? 사람을 죽이도록 훈련받거나 흔히 그렇게 하도록 내몰리는 어린이들은 앞으로 시민 사회에 합류할 때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될 것입니다. 교육도 중단되고 취업의 기회도 막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미래에 이 얼마나 치명적인 타격입니까! 어린이들에게는 평화가 필요합니다. 어린이는 평화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저는 지뢰나 다른 전쟁 도구의 희생양이 된 어린이들에 대하여 한 마디 더하고 싶습니다. 지뢰를 제거하려는 노력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지만, 지금도 우리는 믿기 어려운 비인간적인 모순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위험한 무기 사용을 영원히 끝내겠다고 명확히 표명한 정부와 국민들의 의지와는 반대로, 이미 지뢰가 제거된 지역에 다시 지뢰가 묻히고 있습니다.

소형 무기들과 경무기들이 통제도 받지 않고 대량으로 확산됨으로써 전쟁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습니다. 한쪽 분쟁 지역에서 다른 분쟁 지역으로 이러한 무기들이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어 가는 길마다 폭력을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는 이러한 살상 무기들의 제조와 판매, 수입과 수출을 규제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합니다. 그러할 때에 비로소 무기의 대량 불법 거래 문제에 철저하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인권의 문화는 모든 이의 책임

12. 여기서 이 문제를 더 자세히 다룰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이 모든 인간 권리를 보호하는 데 헌신하지 않는다면 그 어떠한 인권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하나의 인간 기본권에 대한 침해가 아무런 반대도 받지 않고 용인된다면, 다른 모든 권리도 위험해집니다. 그러므로 인권 문제에 대한 범세계적인 접근과 인권 수호를 위한 진정한 투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서로 다른 전통을 존중하는 인권의 문화가 인류 도덕 유산의 필수 부분이 될 때에 비로소 우리는 평화로운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인간의 모든 권리가 존중된다면 어찌 전쟁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완전한 인권 준수는 국가간의 견고한 관계를 수립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인권의 문화는 곧 평화의 문화입니다. 모든 인권 침해는 분쟁의 소지를 안고 있습니다. 저의 존경하는 선임자이신 하느님의 종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났을 때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셨습니다. "전세계에서 한 사람이라도 폭력으로 죽음을 당한다면, 누가 감히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평화와 안전을 약속할 수 있겠습니까?"<11>

양심을 움직이는 인권 문화의 증진은 사회 모든 분야가 함께 협력해 나가도록 촉구합니다. 저는 특별히 대중 매체의 역할에 대하여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대중 매체는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나아가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폭력을 찬양함으로써 인권 침해에 원인을 제공한 대중 매채의 책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중 매체가 상호 이해와 평화 증진을 주창하여 이루어졌던 대화와 연대의 고귀한 활동에는 마땅히 갈채를 보내야 합니다.


결단의 때, 희망의 때

13. 새로운 천년기가 바로 눈앞에 다가오고, 많은 이들의 마음은 더욱더 정의롭고 우호적인 세계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열망은 실현될 수 있고 또 실현되어야만 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복음을 삶의 척도로 삼아 살아가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이러한 맥락에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인간 존엄의 선포자가 되십시오! 신앙은 모든 이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다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간이 거부한다 해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끝이 없는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 모든 이의 완전한 인간 존엄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당신 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12> 이것을 생각할 때, 누구를 우리의 관심에서 제외시킬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가장 가난한 이들과 가장 소외된 이들 속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는 친교인 성찬례는 우리에게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섬기라고 촉구합니다.<13> 영원히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부자와 라자로라 불리는 가난한 사람의 비유가 명확하게 보여 주듯이, "분명히 대조되는 몰인정한 부자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사람 가운데 하느님께서는 후자 편을 드십니다."<14> 우리도 가난한 이의 편을 들어야 합니다.

희년을 위한 마지막 셋째 해 준비는 아버지의 집을 향한 영적 여정으로 이루어집니다. 모든 이가 진정한 회개의 길을 걷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란 악을 거부하고 선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뜻합니다. 2000년의 문턱에서 우리는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의 존엄을 수호하고, 아무 권리도 없는 이들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인정하기 위한 노력을 새롭게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맡기신 사명을 온전히 실천하면서, 아무 권리도 없는 이들을 위하여 목소리를 드높입시다! 이것이 임박한 희년의 정신입니다.<15>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도록 가르치심으로써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심오한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개개인과 모든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무한하고 영원합니다. 이 사랑에 대하여, 예언자 이사야 서에 있는 하느님의 말씀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여인이 자기의 젖먹이를 어찌 잊으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어찌 가엾게 여기지 않으랴!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너는 나의 두 손바닥에 새겨져 있다"(49,15-16).


이 사랑을 나누라는 초대를 받아들입시다! 그 사랑 안에 모든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비결이 들어 있습니다. 새로운 천년기의 여명에서 다 함께 평화를 이룩하도록 합시다.


바티칸에서, 1998년 12월 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주(註)

1.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인간의 구원자](Redemptor Hominis, 1979.3.4.), 17항: AAS 71(1979), 296면 참조.
2. 세계 인권 선언, 前文 참조.
3. 특히 비엔나 선언(1993.6.25.), 前文, 2항 참조.
4.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 1995.3.25.), 57항: AAS 87(1995), 465면 참조.
5. [생명의 복음], 10항, 같은 곳, 412면 참조.
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Dignitatis Humanae), 3항 참조.
7. 제18항 참조.
8. 세계 인권 선언, 제25항 1호 참조.
9.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백주년](Centesimus Annus, 1991.5.1.), 34항: AAS 83(1991), 836면.
10. 이와 관련하여, [가톨릭 교회 교리서], 2307-2317항 참조.
11. 미국 의회 대표단에 한 연설(1945.8.21.): Discorsi e Radiomessaggi di Sua Santita Pio XII, VII(1945-1946), 141면.
12. [인간의 구원자], 13-14항: AAS 71(1979), 282-286면 참조.
13.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97항 참조.
14.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삼종기도 연설(1988.9.27.), 1항: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1988년 9월 28-29일자, 5면.
15.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서 [제삼천년기](Tertio Millennio Adveniente, 1994.11.10.), 49-51항: AAS 87(1995), 35-36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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