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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잊을 수 없는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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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 2002-05-10 12:23:52  |   icon 조회: 4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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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4월 9일

송철환(희생자 송상진씨 아들)



1975년 4월 9일
그날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형도 책가방을 들고 학교를 가고 나도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너무나도 일상적인 하루가 시작되고 거리의 사람들은 언제나처럼 그날을 살고 있었습니다. 간혹은 웃음짓고 간혹은 소리치며 어떤 이는 아이들에게 줄 선물 꾸러미를 들고 또 어떤 이는 선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며 그날은 그 어느 누구에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하루였습니다. 먹구름이 일고 번개가 치며 억수같은 장대비가 한없이 쏟아지는 그런 날도 아니었고 맑게 갠 하늘에 4월의 황사가 엷게 낀 하루였습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에겐 그날 하루가 잊혀져 지나가 버리는 일상의 하루였지만 나에게는 결코 잊혀질 수 없는,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1975년 4월 9일 오후 7시
하교길, 마침 저녁 뉴스 시간에 '인혁당 사건 관련 8명의 형 집행'이란 보도에 아연실색하여 바삐 집에 들어가서 형에게 뉴스 보도가 사실인지를 물었을 때 집안에는 침통함만이 가득차 있어 더 이상 한마디도 물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 작은 삼촌이 '너거 아버지 이제 오시니까 같이 마중 나가자'고 하여 그제서야 내가 "뉴스에 사형 집행했다는 말이 뭡니까?" 물으니 "지금 정부에서 체면도 있고 해서 국민에게는 사형을 집행했다고 해 놓고 비밀리에 석방해 주는 거니 터미날로 나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무슨 날벼락같은 소린가!

그래! 담당형사도, 중앙정보부원도, 하나같이 '정치적 사건'이니까 시국이 조용해지면 바로 풀려난다고 누누이 밝혀왔는데, 아하! 정치란 이렇게 쇼를 벌이는 것인가 보다.


1975년 4월 9일 오후 10시경
서대구 고속 터미날에서 저녁 9시가 넘게 기다리다 길이 엇갈렸나 하여 집에 돌아오니 아직 아버지는 오지 않았습니다.

밤 10시가 넘어 그예 어머니께서 작은 유골함을 들고 대문을 들어서시며 울음도 크게 울지 못하셨습니다. 아버지! 공산 초등학교와 대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시다 교원 노조 활동을 하셨고, 친구를 사랑하셨고, 산을 좋아하셨던 소탈하시고 모나지 않은 삶을 살아오신 아버지가 작은 유골함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내가 받아 안고 방을 들어설 때 그 뼈 구르는 소리는 평생을 내 귓가에 떠나지 않고 들려 옵니다.


1975년 4월 9일 이후
나는 사람이 싫어졌습니다.
학교 선생님의 눈길이 싫었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태연히 하루하루를 시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원망스럽고 경멸스러웠습니다. 그 기나긴 방황과 불량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었고 헤어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학교를 다니지도 않고 밖으로 나돌아 다녔습니다.

한때는 마음의 평안과 구원을 위하여 천주교 영세도 받았지만 그 후 어디에서도 정의구현사제단의 '인혁당은 무죄'라는 인식은 없었습니다. 이 모든 행위는 죄악입니다. 사람을 경멸하는 것만큼 큰 죄악은 없을 것입니다. 그날 이후 나의 삶은 죄악으로 얼룩졌습니다.


다시 4월 9일
세칭 '인혁당 사건' 관련 여덟명이 사형되고 난 후 장석구 선생이 옥사하셨고 전재권 선생, 조만호 선생, 정만진 선생께서 운명하셨습니다.

조만호 선생께서는 석방 후 정신 이상과 거식증으로 음식에 독약을 탈것을 두려워하여 굶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정만진 선생께서는 인혁당의 진상을 규명하고 유신정권의 실체를 밝히시려다 심장마비로 운명하셨습니다. 그분들은 돌아가셔서 비로소 그분들의 사랑을 만나실 것입니다. 다시 만나 술 한잔 기울이며 예전처럼 너털 웃음을 웃고 계실 것입니다.

7.4 남북공동성명 발표를 듣고 기분 좋아 못 마시던 술을 마시고 아이들을 깨워 춤을 추셨다던 하재완 선생님, 우리 남매를 너무나 칭찬하셨던 도예종 선생님, 언제뵈도 호인이셨던 가슴 너른 서도원 선생님, 김용원 선생님, 여정남 선생님, 아버지의 유언으로 합장해 달라고 하신 사도로서 존경하는 이수병 선생님.


1998년 4월 어느 날
인혁당 진상규명 활동을 하기 위해 상근할 수 있는 일꾼이 필요한데 한사람도 나서지 않는다는 함종호(민주주의민족통일 대구경북연합 상임의장)선배의 말을 듣고 그날 영천에 사시는 인혁당 관련자 이재형 선생을 만났습니다. 세월보다 더 깊게 패인 주름살을 보며, "당당하게 살아야 해"라고 한없이 되뇌시던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아직도 인혁당은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7.4 남북 공동성명이 유신헌법의 종신집권을 가능케 하는 이용물이었음을 알고 "더 이상 민주주의도, 선거도 없는 총통제를 획책하고 있다"고 비분하시고, "더 이상 박정권과는 타협도 기대도 하지 않겠다"고 중학교 다니던 나에게까지 궐기할 것을 요구하시던 아버지는, 그러나 작고 여린 가슴의 인간이었습니다.


이제 기필코 인혁당 사건의 진실은 밝혀져야 합니다.
인혁당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나의 비겁함과 나의 무기력, 나의 분노와 나의 배타적 경멸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에게 용기와 희망과 사랑과 포용을 약속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간곡히 호소합니다.
역사와 진실이 가벼이 왜곡될 수 없는 것임을, 그리하여 역사 앞에 진실 앞에 두려움과 겸허함으로 임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슬픔과 분노가 그대로 슬픔이나 분노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교훈과 반성과 다시금 일어나는 희망으로 될 때 그 슬픔과 분노는 되뇌고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인 것을 확인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2002-05-10 12: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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