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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국가보안법과 신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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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 2002-05-10 12:59:36  |   icon 조회: 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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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과 신앙인


다음 글은 [사목] 6월호에 기재된 것입니다.




양승규(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 규명 위원회 위원장)

1. 시대의 한과 독재자의 죄

조선의 왕조 정치가 타락하여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선량한 백성들은 식민 통치에서 신음했다. 해방 후에는 남북이 분단되어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 체제로 반세기 동안 서로 대치하여 긴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일제 시대에는 치안 유지법에 따라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몰린 우리 애국자들이 핍박을 받았고, 1948년 새로운 헌법에 따라 민주 국가로 출범한 대한민국에서는 국가보안법으로 뜻 있는 사람들을 옥죄인 것은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신앙인은 시대의 징표를 살펴 하느님의 정의를 구해야 한다.
1948년 12월 1일 제정 공포된 국가보안법은 일제하의 치안 유지법을 모체로 하여 이를 계승하였으며, 동시에 그후 정권의 독재 강화와 더불어 더욱 확대 강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1) 정부가 수립되고 이른바 여순 사건에 따른 좌익 세력의 폭동을 계기로 공산화를 막아야 한다는 논리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승만 정권이 이 법을 악용하여 반대 세력을 탄압하고 1958년 12월 24일 이른바 2·4 파동을 거쳐 강압적으로 그 법을 개정한 것에서 이미 그 법은 정당성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법은 4·19 이후 1960년 민주당 정권에서 약간 개선되었으나, 5·16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반공법의 제정과 국가보안법의 강화로 '2대 안보 형사법'이 성립되었다.2)
박정희의 죽음으로 이어진 사회적 혼란과 5·18 광주의 아픔을 딛고 들어선 전두환은 헌법을 파기하고 이른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에서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을 합쳐 새로운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여 이 법을 무기로 심한 인권 탄압을 자행했다. 부천서의 성고문 사건이나 1987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은 그 결과이다. 노태우의 6·29 선언에 따른 직선제 개헌으로 태어난 제6공화국에서 국가보안법의 개정 또는 폐지 문제가 첨예한 대립을 보인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 상황에서 1990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이 합세한 3당 야합으로 이루어진 민자당 정권은 또 1991년 5월 11일 국회에서 보안법 개정안을 반대를 무릅쓰고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에 대하여 끊임없이 위헌 시비가 일고 있고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이 법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3)
박정희 군사 정권은 인민혁명당 사건(1964년), 동백림 사건(1967년), 통일혁명당 사건(1968년) 등 많은 공안 사건을 만들어 냈다. 특히 1974년의 인혁당 재건 위원회 사건의 경우 그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의문을 제기하고 진상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으나,4)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이 비상 고등 군법 회의의 판결에 대한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을 확정한 다음날 새벽에 인혁당 관련자 등 8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5) 이는 박정희 정권의 야만성을 그대로 드러낸 살인 재판의 표본이다. 그후에도 국가보안법 위반 공안 사건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법은 그 내용이 올바른 이성과 일치하여야 하고, 또한 그 입법 과정도 정당하여야 한다. 그러나 현행 국가보안법은 1980년 12월에 국보위에서 제정되었고 그후의 개정도 적법한 절차를 밟지 못하여 법치 국가의 실정법으로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법에는 국민의 자유나 기본권을 억압하는 내용이 담겨 있고, 법의 집행에서도 많은 국민에게 한을 심어 주어 독재자의 탐욕에서 나온 대표적인 악법이라 할 수 있다.
독재자는 어느 시대에서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떠들어대지만 따지고 보면 죄의 노예라 할 수 있다. 독재자의 마음을 포로로 잡고 있는 탐욕, 오만, 잔인, 미움 따위의 감정이 그 나라의 백성들을 사로잡아 타락시킨다.6) 우리 사회가 계속해서 총체적인 부패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이를 실증하는 것이다. 여기서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인권을 탄압하고 자신의 탐욕을 채운 박정희나 전두환 등 독재자가 저지른 죄악이 얼마나 큰가를 철저히 규명하는 것은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2. 국가보안법은 안보의 필수적 요소인가?

국가보안법 제1조 1항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서 각자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국가를 형성하고 있다. 정치는 바로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고 복지 증진을 꾀하는 것을 첫째 목표로 해야 하고,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복지 향상을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요청이다.
국가보안법은 과연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법인가? 그것이 독재자의 권력 야욕을 채워 주고 국민에게 많은 한을 심어 주어 타락을 부채질하고 있으며, 오늘 우리 나라가 겪고 있는 위기는 악법으로 인권을 짓누르고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 주지 못한 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는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요한 14,6)를 믿고 따르는 신앙인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냉전 체제에서 남북이 전쟁을 치르고 긴장 관계가 계속되는 가운데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면서 반대 세력을 억압한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무너지고 비교적 민주화의 길을 걷고자 한 제6공화국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국가보안법의 개정이나 폐지의 문제가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1972년 '7·4 남북공동선언'이 있은 후 박정희는 유신 체제를 구축하여 독재 체제를 강화했다. 그후 1991년 12월 13일에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남북 총리가 서명했고, 이미 "남북 교류 협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게다가 2000년 6월 15일에는 평양에서 역사적인 남북 정상 회담을 통해서 공동 선언이 나오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대화와 교류를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국가보안법의 개정이 불가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고, 국회에서 보안법 개정안의 제출을 놓고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음은 참으로 답답하다.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전 보장을 위하여 필수 불가결하다는 이유로 그대로 존치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며,7) 이 법의 개정조차 할 수 없다는 입장은 북한이 아직 변화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북한을 반국가 단체(제2조)에서 제외하여 찬양, 고무죄(제7조)와 불고지죄(제10조)를 인정하지 아니하면 사회적 혼란을 막을 수 없다는 데 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회적 혼란이 법률의 규정만으로 막아질 수 있는가? 내란의 죄(형법 87조 이하), 공안을 해하는 죄(형법 114조 이하) 등에 관한 형법의 규정이 마련되어 있는데, 국가보안법이 없으면 국가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는가?
공자는 정치의 요체를 묻는 제자에게 튼튼한 경제, 강한 군대 및 백성의 믿음[足食, 足兵, 民信] 세 가지를 들고,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백성의 믿음이라고 가르쳤다. 아무리 풍족하고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도덕성을 상실하여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없을 때 그 나라가 붕괴되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정치 공동체는 공동선을 위해서 존재하고, 공동선 안에서 정당화되고 그 의의를 발견하며, 공동선에서 비로소 고유의 권리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권력은 기계적이거나 폭군적인 형태로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유와 책임 의식에 뿌리박은 도덕적 힘으로서 전 국민의 힘을 공동선으로 향하게 하는 권력이어야 한다.8)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한다고 유신 체제를 구축하고 강압 정치를 하던 박정희가 이른바 궁정동 안가에서 어린 가수들을 불러다가 술판을 벌인 가운데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고, 청와대 금고에서 수억 원의 현금이 나왔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전두환, 노태우가 대통령 재직시에 엄청난 비자금을 챙겨 재판을 받고 추징금도 제대로 내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그들을 과연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한 대통령으로 받들 수 있는가? 이들은 까르데날 신부의 말처럼 "인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떠들어대는 독재자9)로서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하여 국민을 괴롭힌 장본인임을 증명하고 있다. 권력을 쥐고 부정을 저지르면서 인권을 탄압한 자들보다 더 국가를 파괴하고 국민에게 허탈감을 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로버트 케네디는 권력을 이용하여 부정을 저지른 자를 내부의 적(the enemy within)이라 하고 이들은 외부의 적보다도 훨씬 나라를 파괴하는 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10) 과거에 대한 반성이나 속죄도 없이 혼돈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의 정치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독재자들을 추종하면서 직접 간접으로 인권을 침해하고 부정에 가담하고 자신의 안일을 꾀한 자의 입으로 국가보안법이 안보에 필수적이라는 논리를 끌어들여 그 개정조차도 불가하다고 할 수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기본적 인권의 보장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의 규정은 천부적인 인권의 보장을 확인한 것으로 국가의 공권력은 바로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보살피는 데 그 존재 이유가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해방 이후 남로당 등 좌익 세력을 억누르는 데 이바지했을 수도 있으나, 부패한 권력에 대항하여 민주화를 갈망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양심의 소리를 억누르는 데 악용되어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수사 기관의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이라고 호소하고, 이른바 시국 사건 관련자들에 대하여 국가보안법을 남용하고 그들을 가혹하게 고문하여 인권을 침해한 사실을 여기서 하나하나 들출 필요도 없이 그 해악이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11)
이러한 점에서 독재자들의 야욕을 채우고 이를 빌미로 자신의 영화를 꾀한 추종자들을 타락시켜 죄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선량한 많은 사람들에게는 한과 증오를 심어 준 법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보에 필수적인 법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는 악법이라 할 수 있다. 인권 단체를 중심으로 한 시민 단체에서 끊임없이 폐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법을 그대로 유지하여 국론의 분열로 정치적 논쟁을 일삼지 말고 하루 빨리 폐지하는 것이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리고 신앙인은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으로 우리 사회가 바로 설 수 있도록 꾸준한 기도와 희생을 바쳐 건전한 사회를 이룩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3. 민족의 화해와 신앙인의 역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우리는 남북의 분단으로 이념적 대립이 심화되고, 한국전쟁으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었다. 이 때문에 같은 말과 전통을 가지고 있는 한 민족이면서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을 비방하고, 긴장 관계를 고조시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주었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여(제2조) 일반 시민들에게 북한과의 접촉을 차단했고, 이산 가족들이 서로 소식도 전하지 못하는 한심스러운 상태를 지속해 왔다.
1972년 7·4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될 때 우리는 민족의 화해가 이루어지고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남북은 독재 체제를 강화했고, 박정희는 유신 체제를 구축하여 국가보안법으로 국민을 더욱 핍박했다. 이는 독재자의 탐욕이 무엇을 말해 주는지를 새삼 일깨우게 한 것이다. 남북 기본 합의서가 채택되고 남북이 동시에 UN에 가입하여 서로가 체제를 존중하기로 합의했는데도 북한을 적대시하고 정권의 편의에 따라 이른바 북풍을 적절히 이용해 온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남북은 서로 이념적 대립을 하는 냉전 시대에도 적대 감정을 심어 주기보다는 공동선을 추구하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마땅했다. 우리는 오늘날 동서의 벽이 무너지고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에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 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나 채택한 '6·15 남북 공동 선언'에서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평화 통일을 모색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지고, 이산 가족의 만남에서 우리는 한 핏줄이고 한 가족임을 확인했다. 그런데도 북한이 변화하지 아니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유지하고 이에 따라 사람을 옥에 가두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가?
물론 북한도 변화해야 한다. 인간의 보편적 권리와 의무를 존중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남과 북은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공동선을 실현하는 정치 체제를 갖추어 서로 신뢰할 수 있을 때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 위하여 서로 신뢰를 쌓아 나가야 한다. 우리는 북한이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소리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먼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청산하여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굳은 안보 태세를 갖추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살고 있다. 오늘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의 각 분야에서 부정부패가 만연되고 있는 현상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앙인이 세상의 소금과 빛(마태 5,13-14)으로서 제구실을 다하지 못한 데서도 비롯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마태 16,24-25)라고 가르치셨다. 이는 모든 신앙인에게 내려진 엄숙한 명령이다.
정치 권력은 공동선을 목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국민이 자발적으로 정치 권력에 복종하는 것은 그 정치 권력이 정당성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우리의 헌정사에서 5·16 쿠데타에 의한 군사 정권이나 12·12 반란으로 성립한 전두환 정권은 강압적인 힘으로 국민의 복종을 강요했고, 이에 저항한 사람들을 긴급 조치나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린 것은 일종의 폭력 행위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신앙인이 하느님의 진리를 거슬러 독재자의 힘에 기대어 인간을 고문하고 가혹 행위를 했다면 이는 자신의 생명을 잃는 행위를 한 것이다. 박종철의 고문에 가담한 자 가운데 기독교 신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를 드러내는 것이고, 독재자의 비위를 맞추면서 세속적인 출세를 하고 있는 신앙인도 예외는 아니다.
1974년 4월 긴급 조치 4호가 발표되고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으로 250여 명이 검거되었을 때 발생한 지학순 주교의 구속 사건은 교회가 유신 헌법의 허구적 기만성과 그 폭력성을 깨닫게 해 주었다.12) 지 주교는 내란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아 군법 회의에서 실형 선고를 받은 후, 1974년 8월 10일자 항소문에서 "나는 1974년 7월 23일 아침 양심 선언을 통하여 소위 비상 군법 회의라는 것은 그 스스로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판단할 수 없는 꼭두각시로 규정하고 비상 군법 회의에서의 재판을 부정한 바 있다. 따라서 본인이 항소를 제기한 것은 주어진 판결의 감형을 구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재 권력의 직접적인 하수 기관이 비상 군법 회의의 법이라는 이름을 빌린 폭력을 나 스스로 확인하기 위함이며 극형과 무기 징역 등 혹형에 시달리는 여타의 민주 학생 및 민주 시민과 동열에 서기 위함이다."13)라고 밝히고 있다.
정의가 없는 정치 권력은 폭력 집단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앙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교회가 언제나 어디서나 참된 자유를 가지고 신앙을 선포하고, 사회에 대한 교리를 가르치며 ......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이 요구할 경우에는 정치 질서에 관한 일에 대해서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14) 여기서 신앙인은 누구나 사회 교리에 입각하여 부당한 권력 행사에 대해서 고발하고 저항하는 것은 마땅하다.15)
죄인을 부르러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인류를 당신의 품안으로 불러들이고 죄인의 회개를 이끄신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라신다."(1디모 2,4)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이를 말해 준다. 그리하여 교회는 정의에 어긋나는 권력을 행사하는 자라 하더라도 그의 구원을 위하여 그 잘못을 지적하고 고발하여 회개하도록 이끄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 둘이 만나서 타이르고, 말을 듣지 않으면 둘이나 셋이 가서 타이르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에 알려라."(마태 18,15-17 참조)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은 신앙인의 자세를 일깨운 것이다. 그리고 신앙인까지 권력의 타락에 편승하여 자신의 안일이나 영달을 꾀한 잘못에 대하여 모두 함께 참회하고 이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신앙인들은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불교이든 가리지 않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와 희생을 바치고 있다. 신앙인들이 증오와 갈등을 풀고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으로 서로 화해하고 일치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요청이다. 가톨릭 교회는 그동안 꾸준히 북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특히 1995년 서울대교구는 민족화해위원회를 설치하여 북한의 형제를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2000년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에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이신 강우일 주교는 "지난 세기를 마감하는 마지막 시대에 이미 세계 역사는 큰 전환점을 맞고 이념의 대립과 냉전 구도는 막을 내렸습니다. 다만 오직 이 한반도만은 예외적으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이념과 체제의 대립을 극복하지 못하고 전쟁의 위협을 항시 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이 한반도에도 이 대희년에 드디어 역사의 새 장이 열리려 하고 있습니다. 분단 55년 만에 성사된 남북 정상 회담은 평화 공존과 통일의 길을 모색하며 이산 가족의 상봉을 약속하고 상호 협력과 교류를 다짐하며 7천만 겨레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우리는 북한 동포도 우리와 한 핏줄이며 같은 문화적 동질성을 갖춘 사람들임을 확인하고 존중하는 마음부터 배워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사는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정의와 사랑으로 분단 반세기의 벽을 허물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평화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라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생활화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고 하나로 모으는 길이 될 것이다.

4. 맺는 말

우리는 남북의 분단뿐 아니라 동서의 지역 감정으로 얼룩진 참으로 서글픈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활화하여야 한다는 신앙인까지도 그 탁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라 여겨진다. 냉전이 종식되고 각 나라는 국가 이익을 앞세워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것이 오늘의 세계이다. 우리는 민족의 동질성을 살려 남북의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기 위하여 상호 존중하고 공동선을 실현하여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물론 우리도 집단적 이기심을 버리고 지역적 갈등을 해소하여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풍토가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
성 토마스 데 아퀴노가 "공동선에로 질서 지우는 것이 법의 근거이다."16)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법은 사람이 지켜야 할 사회적 규범으로서 공동선의 실현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그 제정이 적법 절차를 밟았다고 보기도 어렵고, 게다가 그 법의 내용도 이성을 통해서 비추어진 자연법의 원리에도 맞는다고 볼 수 없다.
"인간의 법은 올바른 이성과 일치하는 한도 내에서, 따라서 영원한 법에 기원을 두는 한도 내에서 법이다. 그러나 그 법이 이성과 모순될 때 그것은 악법이 되며, 이런 경우에 그 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라 폭력 행위가 된다."17)라는 성 토마스의 가르침에 따라 보면 국가보안법은 폭력 행위에 악용된 전형적인 악법이다. 남북 정상 회담 이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힘을 기울여야 할 이 시기에 국가보안법의 개폐를 놓고 정치적 논쟁을 일삼기보다는 이를 폐지하고 사회적 갈등을 풀어야 한다. 신앙인은 진리를 증언하고 실천하는 것이 그 소명이다.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 데로 나아갑니다"(요한 3,21).

1) 박원순, [국가보안법연구 1] 증보판, 역사비평사, 1995년, 71-72면.
2) 위의 책, 181면.
3) 위의 책 참조.
4)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 속의 횃불] 제1권, 1996년, 315면 이하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성명서, "인혁당 사건의 진상을 밝힌다"(1975.2.24.) 참조.
5) 위의 책, 370면 참조.
6) 에르네스또 까르데날, [침묵 속에 떠오르는 소리], 김영무 옮김, 분도출판사, 1977년, 137면 참조.
7) 박원순, [국가보안법연구 3], 역사비평사, 2000년, 193면 참조.
8) 사목헌장, 74항.
9) 에르네스또 까르데날, 앞의 책, 136면.
10) 로버트 케네디, [내부의 적], 양승규 옮김, 삼성문화문고 98권, 1977년 참조.
11) 박원순, [국가보안법연구 2], 역사비평사, 1997년: 국가보안법 적용사는 국가보안법의 제정 당시부터 제6공화국에 이르기까지 그 적용 사례들을 들어 그 법의 남용을 지적하고 있다.
12)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앞의 책, 6면.
13) 위의 책, 75면 참조.
14) 사목헌장, 76항.
15) 지 주교는 앞에서 든 항소장에서 "나는 나의 항소심을 그릇된 정권하의 그릇된 악법에 대항하는 진리와 정의를 위한 싸움터로 간주한다. ...... 나는 내가 받고 있는 재판의 과정, 이 자체가 언젠가는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을 의심치 않는다."라고 하여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와 맞서 싸운다는 뜻을 뚜렷이 하고 있다.
16) G. 달 사쏘-R.꼬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요약], 이재룡·이동익·조규만 옮김,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3년, 195-196면.
17)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 1995년, 7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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