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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차기전투기사업의 유일한 피해자는 대한민국 국민
icon 남상덕
icon 2002-05-12 17:04:56  |   icon 조회: 4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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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차기전투기사업의 유일한 피해자는 대한민국 국민(72매) - 김종대 2002-04-22


김종대(군사전문가)


미국에서 버림받는 F-15전투기

구소련이 해체되기 전인 1991년 이전까지 10년간 미 국방부의 연평균 전투기 구매대수는 3백대였다. 그런데 클린턴 정부가 출범하고 99년까지 8년간 연평균 전투기구매대수는 12대다. 그나마 95년부터 99년까지 신규 전투기구매 계약 실적은 거의 전무했다. 이로 인해 같은 기간 미국 경제의 한 축을 이루던 방위산업체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미 국내 총생산에서 차지하던 비율도 냉전시대에는 9∼10%에 달하던 것이 클린턴 정부 들어와서 5%에 채 못미치는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 연이은 방산업체 폐업과 합병이 이어졌고 미국 사회를 떠받치는 중요한 축인 군사경제는 주도권을 상실했다.

이렇듯 미 국방부가 신규 항공전력 증강을 전면 동결한 가운데 미 항공전력의 노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곤잘리스 라이자 대통령 안보 보좌관은 야당 시절부터 미 공화당의 주요 브레인으로서 이 문제를 주목해왔다. 라이자는 미 국방력의 노후화와 부실화된 전투준비 태세야말로 미국의 국가이익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핵심 원인으로 지목했다. 우리 사회의 해묵은 안보논쟁과 유사한 일이 미국에서도 벌어졌던 것이다. 이제 이들이 정권을 교체한 지금, 21세기 미국의 새로운 힘이라 할 수 있는 항공우주전력에 대한 새로운 부흥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다음세대 전투기라 할 수 있는 합동전투기(JSF)와 F-22랩터 개발 및 대량주문, 미사일방어망(MD) 구축 등 새로운 군사력 건설의 흐름이 그것이다.

이 새로운 미 항공력 건설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들은 기존에 미군의 재래식 전력에 대해 매우 가혹한 평가를 서슴지 않고 있다. 특히 미군의 주력전투기인 F-15에 대해서도 워싱턴 포스트의 표현대로 `덜컹거리고 흔들리고 늙은 헐크`에 불과한 미 공군의 애물단지라며 사실상의 사망선고를 내렸다. 작년에 미국의 회계감사원(GAO) 보고서를 인용하여 워싱턴 포스트는 F-15가 양산 초기단계에 비해 유지비가 4배 이상 증가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거침없이 보도했다. 국방분야에 가장 권위 있다는 랜드연구소가 `회색위협`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F-15전투기가 러시아의 차세대 전투기와 공중전에 매우 취약하다는, 언뜻 보기에는 국가기밀에 해당될만한 사실까지 거리낌없이 공개한 것도 그 예다.

이 보고서는 러시아 전투기의 야간전투능력이 의심스러운 부분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까지 F-15 성능이 러시아 전투기에 비해서도 낮다고 무참하게 깍아내리고 있지 않는가. 이것도 모자라 한국에서 F-15로 기종이 결정되기 이틀전에 미 공군 발행, `에어포스 매거진`이 F-15 유지를 위한 `동류전환`이 타 전투기에 비해 2배 이상이라는 사실마저 보도했다. 미국 내에서 언론과 군과 정치권에 의한 `F-15 죽이기`다. 만일 미국 국방부와 언론이 이 F-15전투기의 한국 판매가 임박해있다는 사실을 고려했다면 그와같은 발표가 자제될만도 하건만 차세대 전투기에 대한 조바심이 최소한의 자제력마저도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이렇게 볼 때 F-15가 좋은 전투기라는 말을 미국에 가서 했다가는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판이다. 아마도 이 F-15전투기에 대한 일편단심가, 용비어천가가 울려퍼지는 곳은 미국이 아니라 다름아닌 한국의 국방부다. 미국에서 버림받고 상처받은 서자가 변방의 한 반도국가에서 `귀하신 몸`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 육중한 몸체를 이끌고 온 F-15K는 기존의 격납고에 수용될지도 의심스럽고, 기존 활주로 길이로 이륙거리가 충분한지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미국의 보수언론 기사를 베껴쓰기 좋아하는 한국의 유력 보수언론들은 유독 F-15에 대한 미국발 외신보도에 대해서는 거의 받아쓴 적이 없다.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고 있다. 이 육중하신 몸을 제대로 관리해주어야 할 한국 공군은 앞으로 전력의 운용과 관리에 엄청난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다. 복좌 전투기이므로 조종사 80명에다가 통상 예비 조종인력까지 약 140명이 있어야 하고, 정비인력은 라팔 전투기보다 1백명 많은 3백명 정도가 소요된다. 그런데도 이 기종이 `군 운용적합성` 평가에서 1등이 나왔다고 하니 도대체 그 평가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아마도 지난 10년간 미국무기 구매에 전가의 보도처럼 인용되어 온 `상호운용성` 문제가 이번에도 강력하게 작용한 듯 하다. 4월 16일 방영된 MBC의 `PD수첩`에서 국방부 김종천 획득정책관(이 사람도 육군 출신임)은 "F-15K 전투기는 (국내 비축된) 미군 항공탄약을 16종 사용할 수 있는데 반해 라팔은 5종"이라고 밝혔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현기증이 왔다. 바로 이 논리, 옛날에 구식 M1 칼빈소총을 도태시키려고 했는데 탄약 잉여량이 많아 도태도 못하고 그 탄약 다 소비하느라고 M1 소총을 유지시켜온 사실과 무엇이 다른가. 구형 미군 탄약을 소비하기 위해 F-15K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은 소나타 승용차 백밀러에 맞추기 위해 벤츠 승용차를 구입하지 않는다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이런 식이라면 한국은 돈이 더 많이 들더라도 영원히 구식무기를 사야한다는 말 밖에 안된다. 만약에 이 말에 대해 국방부가 해명을 하려거든 16종 탄약의 탄종이 무엇인지 근거를 밝혀야 할 것이다.

더 코메디같은 논리 하나를 소개하겠다. 마치 `F-15K 경전`이 준비된 듯이 국방부가 주술처럼 암송하는 말 중에 하나가 미군도 2030년까지 F-15전투기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필자는 이미 미국 내에서 `F-15 죽이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어떻게 2030년까지 미군이 운용한다는 것인지 독자들은 의아해 하시리라. 그 정확한 의미는 이렇다. 2030년까지 미 공군이 갖고 있는 3백여대의 F-15E전투기가 전부 유지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지막 남은 1대가 비행을 멈춘다는 뜻이다.

전투기 몇백대를 2030년에 한꺼번에 도태시킨다는 것이 아니라 매년 일정량의 전투기를 도태시켜 2030년경에는 마지막 1대 마저도 없어진다는 뜻이다. 일본은 F-15J를 2017년까지 도태시킨다고 말하지 않고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도태시킨다고 말한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옳다. 그러면 이미 2030년 훨씬 이전에 대부분의 F-15전투기는 사실상 도태된다. 이것을 가지고 마치 2030년까지 F-15가 미군의 주력전투기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국방부의 논법이다. 대부분 미 보잉사의 논리다. 하기는 국방부 육군 장성들이 이 말을 알아들을지도 의심스럽지만.

이제 전투기 대량주문이 예상되는 사우디에서도, 네덜란드에서도, 싱가포르에서도 F-15전투기는 설자리가 없다. 유지하기에도 벅찬 이 전투기는 미 공군의 애물단지에서 한국 공군의 애물단지로 전환되고 있다. 국방부는 최고 전문가들이 평가한 결과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가 아는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는 기무사가 수사하고 기소한 공군의 조 대령과 수사중인 김 대령이 아닌가.


F-X사업과 햇볕정책

도대체 이 나라 국방에는 왜 이렇게 군사기밀이 많은 것인가. 지난 4월 19일 국방부는 차세대전투기사업(F-X)에서 미국 보잉사의 F-15K로 기종을 발표했다. 이 자리는 애초 내정된 전투기 기종만이 공개되는 요식행위였을 뿐 그간 기종평가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을 규명할 수 있는 평가내용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대부분이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또는 공급업체를 보호한다는 구실을 앞세워 국민의 알권리와 납세자의 정당한 요구는 무시되었다. 이번 기종평가에서 동원된 기상천외한 평가방식이나 군사기밀을 이유로 실체를 가리는 국방부의 현란한 테크닉에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제 기종이 마무리된 시점에서 국민이 안보의 주주이자 고객이 되는 `국민 안보시대`는 총체적 파산에 직면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대신 국민에게는 오직 의무만을 부과하는 `국민배제 밀실안보`가 정권과 시대를 초월하여 연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들에 의한 한국 국방의 지배구조는 김대중 정부 집권 초 국민의 염원이 서린 국방개혁을 좌초시켰으며,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에는 햇볕정책의 중심을 조용하게 파괴하고 있고, 미국 중심의 일극적 군사질서를 한반도판으로 완결 짓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F-15K 전투기 도입은 복잡한 한미 외교의 결과다.

무엇이 최초의 전투기 국제 공개입찰이라는 이 사업을 미국 지향으로 몰고 갔는가. 먼저 작년 3월의 시점으로 되돌아가 보자. 작년 3월 25일 워싱턴 포스트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김대중 대통령은 최근 유럽연합(EU) 고위 관리들에게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크게 실망해 돌아왔다고 밝히고, 부시 미 행정부의 주저가 햇볕정책의 종식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시하면서 EU가 역할을 강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유럽연합은 이에 따라 한반도의 평화과정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남북한에 중재팀을 파견,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연기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틈새를 메우려 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 기사의 배경은 이러하다. 작년 3월에 새로 출범한 부시정부는 자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을 몹시 푸대접했다. 당시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의 의도는 자신의 대북 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냄은 물론, 북미간에 미사일 협상의 원만한 합의도 이룸으로써 한반도에서 실질적 평화를 보장받는 정상외교를 희망했다.

다규멘타리 작가인 임종태는 미국의 주요 인사들을 면담하는 등 오랜 취재활동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문제의 출발은 클린턴 정부 말기의 북미 대화다. 2000년 10월 11일 북한 인민군의 조명록 차수는 클린턴을 방문, 서방이 북한의 민간 인공위성 발사에 협력해 준다면, 장거리 미사일을 포기할 용의가 있음을 내비쳤다. 당시 조명록 차수는 클린턴의 평양방문을 요청하는 김정일의 초청장과 더불어, 만약 서방이 북한을 위해 민간 인공위성 발사에 협력해 준다면, 장거리 미사일을 기꺼이 포기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뒤이어 평양을 방문한 울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에게도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이 인공위성 발사를 북한에 제공하는 조건으로 사정거리 3백 마일 이상의 미사일을 포기하겠다고 조명록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게다가 그는 미사일을 포기하는 대가로 이전까지 요구했던 10억 달러의 현금 대신, 경제난으로 인해 부족한 식량, 석탄, 물품 등 10억 달러 상당의 현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협상은 불행히도 수포로 돌아가 한반도 평화정착에 있어 10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다. 이에 대해 뉴욕 타임즈 편집장을 지낸 리온 시걸은 "그들(클린턴 외교진영)에게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용기가 부족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뒤이어 부시 행정부의 출범 후에도 북한은 클린턴 정부 말기의 `조미 커뮤니케`에 깊은 미련을 갖고 있었던 듯 하다.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이런 점에서 북한으로서도 대단한 관심거리였다. 임종태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 방문시 미국의 F-15K와 북미간의 미사일 협상 타결을 맞바꾼다는 빅딜(big-deal)을 복안으로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노벨상을 수상한 김 대통령의 하반기 대북정책의 승부처이며 한반도 평화를 임기내 완결짓는다는 점에서 미국을 향한 중요한 거래인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거래였다. 결국 김 대통령은 앞의 워싱턴 포스트 기사에서와 같이 미국 방문에서 부시 대통령과 현격한 인식 차이를 확인하는데 그치고 자신의 대북정책에 유럽의 도움을 청하는 정책으로 선회하게 된다. 당연히 한미 안보관계는 상당한 갈등과 긴장으로 돌입하게 된다.

이 당시 한국 F-X사업의 상황을 보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3월 20일 공군 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이제 곧 공군은 차세대전투기를 확보하게 되고 늦어도 2015년까지는 최신예 국산전투기를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지 17일만의 발언이다. 이 발언에서 주목되는 것은 김 대통령이 `차기`라는 말이 아니라 `차세대` 전투기라는 용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 또한 최신예 국산전투기를 개발한다는 비전제시야 말로 F-X사업의 향배를 가늠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2001년 4월, 국방부는 새로운 F-X 사업관리지침을 발표한다. 기존의 절충교역 30% 지침을 70%로 상향조정하고 핵심 기술 이전을 핵심 획득 사업목표로 부각시킨다. 절충교역 목표의 상향조정, 기술이전에 대한 강조는 당연히 유럽제 회사에 유리한 경쟁환경을 초래했다. 지난 10년간의 절충교역 실적을 보면 미국과는 평균 30%, 유럽국가와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40%를 상회하고 있다.

일련의 F-X사업에 대한 사업관리 지침의 변경은 유럽제 전투기 회사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새로운 사업관리 지침이 발표되고 난 후 5월경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언론이 일제히 `F-15K의 한국 판매가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비관적 논조의 기사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미국 보수언론을 비롯한 여론주도층은 국방부의 사업지침 변경과 작년 5월부터 한국에서 일어난 심상치 않은 변화, 유럽제 전투기의 대약진과 이에 유리한 한국 국방부의 사업지침 변경에 대해 매우 심각한 위기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만일 이 당시 기종이 결정되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과의 대북정책 조율에 실패한 김대중 정부의 자존심 싸움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무튼 한미관계가 극도의 긴장과 갈등의 정점에 다다를 수록 공군의 F-X사업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는 점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확실하다. 미국은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시 F-X에 대한 아무런 보장이 없자 매우 실망했다는 후문이다. 이미 3월경에는 미 국방부의 합동전투기사업(JSF : joint strike fighter)에서 보잉사의 비세가 나타나고 있었고 5월경에는 보잉사가 스스로 이 사업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미 정부로서는 보잉사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곧 미국내 대형 방위산업체 간의 나눠먹기 구조에 한국이 뒷받침해주기를 절실히 필요로 했다.

작년 5월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이 예견되던 시기다. 이때까지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 기조는 제2차 남북공동성명 준비차원의 안보정책, 즉 김정일 답방 준비차원의 통일안보정책이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이시기 국정원은 김정일 답방시 제안할 평화선언을 준비중이었으며 국방부는 대북 5대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미국 정보기관이 사찰을 강화한 결과 이것은 몇 달 후인 7월말 국정원 행정고시 출신 대북전략국 종합과장 안 모씨의 파면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사건이 있고 나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3번이나 김정일 답방을 촉구했던 몇 달전의 말을 바꿔 김정일 답방을 반대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그리고 8월 민간 방북단의 불상사가 있고 나서 임동원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서 탄핵결의 된다.

이 때 만일에 미국이 한국의 대북정책에 전폭적인 협력을 했을 경우 남북관계의 교착상태가 타개되고 김정일 답방 등 일련의 화해 이벤트가 성사되었을런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미국의 협력이 어렵다는 비관적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3월 이후, 김대중 정부는 분명히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흔적이 있으며 이것이 바로 F-X사업에서 나타난 변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채 몇 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이미 7월경에는 유럽업체와 핵심기술 이전 협상에 대해 국방부가 공군 시험평가단에게 모종의 제한과 외압을 가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공군의 조주형 대령은 시험평가단에서 고등훈련기 사업단으로 전보발령되고, 유럽제 전투기 우호세력들은 시험평가단에서 제거된다.

김대중 정부가 미국에 대해 자주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작년에 F-X기종결정을 하지 아니하고 올해로 늦춰서 했다는 점이다. 이 당시 미국 정부와 보잉사 압력의 요체는 `조속한 기종결정을 해달라`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 당연히 자국제 전투기를 구매하되 더 이상 우리를 기다리게 하지 말라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김대중 정부가 느려터진 행동으로 미국을 애타게했다는 것. 이것 말고 이 사업에서 그 어떤 자주성을 논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을 갖고 한국 국방부의 뛰어난 협상능력으로 포장하는 것은 한마디로 넌센스다.

현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견제와 자국제 전투기 판매, 이 두 가지 사안이 동시에 나타났으며 또한 두 가지 다 성공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전투기 구매가 햇볕정책 지지의 대가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마치 전투기 구매가 미국의 한국정부 대북정책 지지와 직결된다는 난시현상이 발생한 것은 친미 군부세력이 유포한 말장난이다. 지난 3월 27일 한 일간지에 보도된대로 김동신 장관이 NSC에서 미국의 지원을 통한 대북정책 추진, 즉 F-X연기 불가론이 바로 그러한 취지와 딱 들어맞는 발언이라 하겠다.


입찰과 조작의혹

이렇듯 공군의 시험평가가 완료된 4월 이후 7월부터 가격협상이 들어가기 전까지 국방부는 4월에 말한 핵심 기술이전에 대한 정책목표를 슬그머니 감추고 가격요인으로 기종결정의 중심을 전환했다. 높은 기술이전을 제안했던 유럽제 전투기의 비교우위가 사라진 셈이다. 이 당시 국방부가 예상했던 것은 F-15K의 장점은 낮은 획득비, 단점은 높은 유지비였다. 반면 라팔의 경우 장점은 낮은 유지비, 단점은 높은 획득비였다. 가격요인에서 F-15K가 유리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예상은 당시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다. 그러나 막상 입찰에 들어가자 라팔 전투기가 10억불에 달하는 파격적인 가격인하를 한데 반해 F-15K 전투기는 최초 제안가와 비교해 3억불의 가격을 올려버렸다. 가격요인에서 거꾸로 F-15K가 불리한 현상이 초래되고 만 것이다. 이 상황을 국방부는 물론 국내 어떤 언론도 예상하지 못했던 점이다.

조주형 대령은 이 때 상황을 회고하며 `국방부가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기술이전에서 가격으로 국방부가 강조해 온 내용들에서 모두 F-15K가 불리해지자 이때부터 `군 운용적합성` 분야에서 조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조 대령의 주장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실이 있다. 그간 미국제 전투기 선정문제를 놓고 많은 의혹을 받고 있는 김동신 장관은 작년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이미 "차기 F-X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간 무기의 상호운용성"이라는 발언으로 미국 전투기 지향성을 드러냈다. 이 말을 하는 순간 옆에 서있던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의 흐뭇한 표정이 방송을 통해 나간바 있다.

그런데 더 결정적인 것은 올해 2월 4일 F-X 제3차 최종 가격입찰이 있던 날 정오. 2시간 후에는 가격입찰이 예정된 시간에 김 장관은 국방부 출입기자단과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하고 있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김 장관은 "F-X사업은 계속 추진한다"며 "가격도 중요하지만 (한·미) 동맹관계도 중요하다"고 밝혀 기종선정 결과에 다소 논란이 있더라도 F-X사업을 강행할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것은 조선일보 2월 5일자 기사 내용이다.

이 기사는 참으로 시사하는 바 크다. 마지막 가격입찰이 진행되기 2시간 전의 상황이라면 국방부는 가격을 한푼이라도 더 깍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시간이다. 이런 시간에 장관이 마치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한미 동맹이 중요하다`는 발언을 한 것은 이미 가격입찰 결렬을 예상하고 한미 동맹의 논리로 기종을 결정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면 2시간 후 가격입찰 장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2월 4일 제3차 가격입찰. 보잉사는 최초 가계약협상시보다 약3억불의 가격을 높여놓은 상태였고 닷소사는 가계약시 예상되었던 가격보다 10억불 가량 가격을 내렸다. 당연히 가격문제라면 보잉사가 크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3차에 걸친 가격입찰은 제1차 가격입찰(1월 14일)에서 9번, 제2차 가격입찰(1월 24일)에서 7번의 비팅이 있었고, 드디어 제3차 가격입찰일인 당일날도 여러번의 가격 비팅이 예상되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3번째 가격 제출이 이루어지자 마자 국방부는 갑자기 더 이상의 진행은 없다며 마지막으로 4번째 가격을 써 놓고 업체 측은 모두 퇴장할 것을 명령했다. 당시 입찰에 참여한 업계 관계자들은 왜 국방부가 더 이상 가격 인하를 시도하지 않는지 의아했다는 것이 당시 분위기를 전하는 말들이다. 이 당시 일부 인사들은 1월 29일 “가격 협상이 결렬될 경우 F-X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했던 최동진 국방부 획득실장의 발언을 고려할 때 F-X사업 자체가 포기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와는 반대였다. 이제는 가격과 기술이전 등 모든 면에서 불리한 F-15K를 밀어주기 위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한미 동맹` 밖에 없다. 그러나 그간 공개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해 온 과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국방부는 기상천외하고 속보이는 말바꾸기를 천연덕스럽게 자행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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