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과 인권] 유엔 로비에서 로비를 하다
상태바
[유엔과 인권] 유엔 로비에서 로비를 하다
  • 변연식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장)
  • 승인 2008.06.10 18: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엔 인권이사회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 회의에 다녀와서
UPR이란?

UPR(Universal Periodic Review)이 뭐지? 보편적 정례검토는 또 뭐야? 스위스 제네바 유엔 인권 이사회 UPR 회의에 NGO 대표단으로 참가해달라는 제의가 왔을 때 이렇듯 보편적이지 못한 용어들이 먼저 나에게 다가왔다. 인권단체 사이에 메일이 오고 가고 뭔가 UN 관련 회의를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별 관심이 없었다.
부랴부랴 지난 몇 개월간 오간 전자우편을 다시 읽어보고서야 감을 잡았는데, UPR이란 192개 유엔 회원국의 인권상황을 매 4년마다 검토하기 위해 2006년 유엔 인권위원회가 인권이사회로 격상되면서 새로 만든 제도라는 것이다. 해마다 192÷4=48, 즉 매년 48개국이 검토를 받아야 하고 한국은 올해 5월 5~19일 열리는 실무 그룹 2차 회기에서 5월 7일로 날짜가 잡혀 있었다. 정부대표단이 우리의 인권상황을 보고하면 각국 대표단이 이를 검토해 질의와 권고를 하게 되어 있고 NGO 대표단은 그 전에 도착하여 주로 외교관으로 이루어진 각국 대표단을 상대로 로비를 해서 우리의 인권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질의와 권고를 하도록 이끌어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UPR… 웬 UFO? 참 딱하다. 인권단체에 있다는 내가 이렇게 모르고 관심이 없었는데 기자들은 어떻겠는가? 일반대중들은 또 어떻겠는가? 정말 문제 있다. 곧이어 열린 국가인권위 토론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문제 제기하였고 인권단체들이 몇 개월간 애써 준비하고 있는 활동을 더욱 쉽게 이해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용어를 바꾸기로 합의하였다. 유엔 인권이사회의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라고. 1948년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이래 여러 국제 인권 협약이 만들어진 시대를 ‘기준 설정의 시대’라고 한다면, 이제 4년마다 각 나라가 기존 유엔인권위원회의 정치화, 이중기준, 선별성을 극복하고 어떻게 그 협약과 선언을 이행하였는지 숙제 검사를 받는 ‘이행의 시대’로 들어서기 위한 제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 제네바의 유엔빌딩 앞에 선 필자.

로비에서 로비를…

민변, 인권운동사랑방, 참여연대 등 8명으로 구성된 NGO 대표단 중 먼저 도착한 일행은 제네바 숙소의 숨이 턱 막히도록 작은 방에 여장을 풀었다. 갑자기 잡은 숙소의 겉모습은 스위스답게 아름다운데 오래되어 퀴퀴한 냄새가 났다. 아흐~내 팔자야…. 하지만 이제 와서 어떻게 하랴. 세계의 외무부, 법무부 공무원들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모두 제네바로 모여들어 방도 잡을 수 없는걸. 지하 컴퓨터방에서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정부 보고서를 반박하기 위해 인권단체들이 애써 만든 보고서는 이미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로 보내져서 7일에 함께 공식 문서로 배포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실제 인권 상황을 거의 모른다고 할 수 있을 외교관들을 상대로 설득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보완작업이 필요했다. 선택과 집중이다!! 15개 문항을 추려내고 각국 외교관들의 E-mail 주소로 질의 사항과 권고안 예문을 보내고 우편함으로 자료를 직접 넣기도 하면서, 이명박 정부 들어 무엇이 더 악화되고 있는지 한국의 실제 인권 상황과 정부의 보고서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리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을 위해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국내에 남아 밤새워 번역을 해주셨고, 민가협의 한지연씨, 민변의 이동화씨가 많은 도움을 주셨다.
한국 심사 하루 전인 5월 6일은 우리가 유엔빌딩에서 집중적으로 로비를 한 날인데, 유엔 유럽본부 로비는 말 그대로 각국에서 온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정부 대표들, 국가인권기구 대표자들이 뒤섞여 시끌벅적했다. 본회의장에서 다른 나라 심사를 하고 있는 외교관들을 회의 시작 전이나 직후에 섭외해서 약속시간을 잡고 로비에서 만나 우리의 인권상황을 직접 설명하는 것이다. 말이 통할 것 같은 국가를 우선 선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군대가 없는 나라 코스타리카에 관심이 많아서 그 나라에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 복무제에 대한 로비를 하려고 벼르고 찾아 다녔으나 그(혹은 그녀)는 끝내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형제 폐지 법안이 아직 통과되지 못한 걸 설명할 때는 말이 필요 없이 천주교인권위에서 가져간 홍보엽서 그림을 보여주면 되었다. 국제 엠네스티 본부가 있는 영국의 외교관을 만나 공을 들였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억압되는 문제는 경찰차로 뺑뺑 둘러싸인 차벽 사진을 보여주면 모두가 놀라워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캐나다 외교관을 로비로 모셔 와서는(?), 우리의 주민등록번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그에게 직접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며 이 번호가 개인정보 보호 문제에서 얼마나 위험한 숫자인지를 설명했고, 결국 캐나다가 “주민등록제도는 공공서비스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사용되어야 할 것”이라는 권고를 하게끔 이끌어내었다. 이러한 로비활동에는 인권운동사랑방의 명숙씨, 참여연대의 전은경씨, 민변의 장영석 변호사가 역할분담을 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쳐서 ‘한국의 트로이카’라는 별명을 얻었다.

▲ 각국 외교관을 만나 한국의 인권상황을 설명하는 NGO 대표단

차벽 사진이 ‘로비’한 한국 집회․시위의 현실

드디어 5월 7일 아침 9시. 정부측 대표단 26명을 이끌고 있는 김성환 외교통상부 차관과의 만남으로 바쁜 하루를 시작하였다. 정부보고서를 제출하기 전, NGO와 충분히 협의하기로 되어 있는 과정이 파행을 겪은 일에 대해 우리는 유감을 표명하고, 인권을 외교적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하였다. UPR의 명칭 개정 의견에 대해서는 그도 수용하였다. 점심 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문경란 상임위원, 이성훈 정책본부장과의 간담회가 있었다. 국민들에게 국제 인권규범과 권고를 적극적으로 쉬운 말로 알려야 하지 않나 하는 의견이 오고 갔다.
그리고 오후 본회의장에서 우리정부의 발언과 각 나라 대표 발언을 모니터링하는, 이번 제네바 방문에서 두 가지 핵심 활동 중의 하나가 시작되었다. 넓은 회의장에서는 두 대의 카메라가 각 대표 발언을 동영상으로 내보내는 Webcast가 작동하였고, 빨간 불이 켜진 카메라의 렌즈 방향을 보면서 그 많은 각국 대표자 중 발언자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었다. NGO석과 기자석이 그나마 마련되어 있어서 뉴욕 NPT(핵확산금지조약) 회의 때보다는 그나마 인간적이었다고 해야 할까. 나라 이름은 프랑스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곳도 있다. 예를 들면 뉴질랜드는 ‘Nouvelle Zealand’로 표기되어 있다.
이 날 회의에서 한국 정부가 집중적인 질문을 받은 사안은 사형제와 이주노동자 권리 문제였다. 영국 등 11개 국가들은 “15-17대 국회에서 제출된 사형제 폐지 법안이 아직 통과되지 못했다”며 집중적인 질문을 쏟아냈다. 네덜란드는 “다음 18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되어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 10개국은 “등록, 미등록에 관계없이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덴마크도 “한국이 가입을 미루고 있는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을 비준하라”고 권고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미국, 영국, 북한이 같은 입장을 취하며 개정 또는 폐지를 권고했다. 회의장에서 북한 외교관 두 분을 만났고 반갑게 인사하기도 하였다.
그날 저녁에는 이번에 많은 도움을 준 한국인 김기연 씨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 모여 밤샘작업으로 각 대표단의 발언과 권고 내용을 분석하고, 형식적 답변으로 일관한 정부 측을 비판하는 보도자료를 작성하여 한국으로 발송할 수 있었다. 일이 끝나고 나니 새벽 5시가 넘어 동이 트고 있었다. 9일에는 영문 보도자료 작성과 배포, 그리고 정신대대책협의회가 일본의 배상을 촉구하는 권고를 끌어내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친 일본 UPR 참관을 끝으로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

우리의 숙제

한바탕 인권의 이름으로 쏟아낸 온갖 말의 잔치를 보고 듣고 돌아온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씁쓸하고 슬프다. 한국정부는 4년 후 맡은 바 숙제를 잘하고 제네바에 갈 수 있을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이주노조 토르너 위원장(네팔)과 부위원장(방글라데시)이 청주 외국인보호소에 억류되어 있다가 강제출국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17년을 한국에 살며 청춘을 바친 눈 맑은 착한 청년 토르너…. 대한민국의 인권에 대한 수사와 현실은 제네바와 서울의 거리만큼이나 멀어 씁쓸하고 차갑다. 우리가 좀 더 인간의 얼굴을 한 나라이길 바란다면, 이 문제부터 해결하면서 제네바로 가야 하지 않을까. 정부는 국제 인권규범과 권고를 적극적으로 이행하려는 의지로 적극 나서서 모처럼 마련된 새로운 UN제도가 잘 정착되고 진화해갈 수 있도록 숙제를 잘해나가길 촉구한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