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와 인권] 모든 생명권(生命權)의 위협! 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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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와 인권] 모든 생명권(生命權)의 위협! 대운하!
  • 맹주형 (아우구스티노, 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
  • 승인 2008.06.3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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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반대하면”이 아니라 “국민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 지난 6월 19일 특별 기자회견에 나선 이명박 대통령. (출처-청와대)
지난 6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결국 촛불에 밀려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대선 제 1공약이었던 ‘한반도 운하사업’을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어떤 정책도 민심과 함께 해야 성공할 수 있음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많은 언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사실상의 운하 포기 선언’이라고 보도했고, 이는 분명 그동안 많은 종교인들의 생명의 강 순례와 걷기 그리고 촛불집회에 함께 한 국민들의 승리이다. 그러나 국민 80% 이상이 대운하 사업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대통령의 발언에 “국민들이 반대하면”이라는 단서 조항이 붙은 것은 아직도 이 정부가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국민들이 반대하면”이 아니라, “국민들이 반대하기 때문에”라고 말하며, 대운하 사업 자체에 대한 ‘포기 선언’을 했어야 맞다.

모든 생명권의 위협, 대운하!

그동안 우리 교회 내 수많은 수도자, 사제, 평신도 단체들이 함께 ‘운하백지화 천주교연대’를 만들고, 서명운동과 대운하를 막기 위한 강연회와 강 순례를 전개한 이유는 너무도 단순하다. ‘대운하’가 모든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과 모든 창조물들의 ‘생명권’(生命權)에 대한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운하가 가지고 있는 물류 효율성과 경제성의 허구는 접어놓더라도, 우선 운하가 만들어지면 생명의 근원인 ‘먹을 물’이 위협받게 된다. 즉 식수 안전성 문제이다. 한국은 전체 식수 취수량의 88%를 하천과 호수에 의존하고 있다. 한강과 낙동강이 한국 인구 2/3의 식수원(취수원)이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이 벤치마킹으로 생각한 운하 선진국 독일의 경우 83%의 취수원이 ‘지하수’이다. 세상 어느 나라도 국민의 수원지에 배를 띄우는 나라는 없다. 만약 수원지에 배를 띄우다 선박사고가 발생해 배에서 기름이나, 독성물질이 유출되면 상수원을 폐쇄하는 국가재난사태가 올 수 있다. 독일의 경우, 라인 강과 다뉴브 강에서만 한해 수십 건에서 400여건의 선박사고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흘러드는 오염물질의 양은 연간 200톤에 달한다. 그러나 독일의 취수원은 지하수이고, 우리나라는 하천과 호수이기 때문에 운하가 만들어져 선박사고가 날 경우 상수원을 폐쇄하는 국가 재난 사태가 올 수 있다.

생물종의 죽음, 대운하

또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해 "운하는 하천 생태계를 보존하는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거짓말이다. 독일 ‘마인-도나우 운하’(MD운하)의 경우 30년이 넘는 공사기간 동안 총 공사비의 1/5을 환경 분야에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운하 건설 후 이 지역 내 동․식물 종(種)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운하건설은 한마디로 하천 생태계를 가장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사업이다. 상상해보라. 강바닥을 고속도로 30개의 너비로, 최소 아파트 2층 깊이로 파내야만 배가 다닐 수 있는데, 이렇게 강을 파내면 과연 생태계가 보존될 수 있을까? 운하건설을 위한 준설은 수질개선과 생태계 보존이 아니라, 고유어종 멸종과 물고기 서식지 파괴라는 생태계 파괴의 원인이 된다. 실제로 한강과 낙동강의 한국 고유종 2종과 멸종 위기 종 58종의 야생동물이 생존을 위협받게 되고 금강의 조류 150여종, 10여 만 평의 갈대 군락지와 가창오리 등이 역시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운하는 분명 모든 생물권의 위협이다.

▲ 지난 5월 14일 '대운화백지화 천주교연대' 주최로 명동성당 문화관 소성당에서 열린 ‘생명의 강 살림을 위한 창조보전미사’


이명박 대통령과 우리가 다른 점!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일자리 30만 개 창출과 물류 혁명을 이야기하며 대운하를 통한 ‘경제적 가치와 성공’을 가장 최고이자 최선ㆍ최상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국민 성공 신화에 빠져 가장 우선되어야 할 지도자의 도덕성과 윤리성은 외면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정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도 그래야 하는가? 언제 올지도 모를 나와 내 가족의 또 다른 성공신화를 위해 그렇게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될 것인가?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신명기 30,19-20) 주님이 생명이시기에, 우리는 자본과 돈의 물신(物神)이 아닌 ‘생명’을 택해야 한다. 또 우리가 스승으로 믿고 따르는 예수님도 하느님과 재물 모두를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마태오 6,24). 우리 신앙인들은 경제적 가치가 아닌, ‘생명의 가치’로 이 정부와 대운하 사업,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유전자조작 옥수수 문제, 한ㆍ미 자유무역협정, 그리고 각종 민영화 사업추진 등을 바라보아야한다. 그리고 매일 켜지고 있는 광장의 촛불은 바로 생명에 대한 선택이자, 요구이다.

‘알렉세이와 샘’

‘알렉세이와 샘’이라는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영화의 무대가 된 곳은 벨라루시 공화국의 부지시체 마을로, 이곳은 1986년 폭발사고가 일어났던 체르노빌 원전에서 북동쪽으로 18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구(舊) 소련 정부의 이주 권고로 600명의 주민 대부분이 마을을 떠났지만 55명의 노인과 ‘알렉세이’라는 한 청년이 이 마을에 남아 살고 있다. 어떻게 이 마을 56명의 사람들이 남게 되었을까? 원전사고로 마을의 숲도 밭도 초원도 모두 방사능에 오염되었지만 그 마을 중심에는 마치 기적처럼 방사능이 전혀 검출되지 않은 샘이 있었다. 이들은 이 마을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풍요로운 삶이 있다고 말한다. 특히 마을 중심의 ‘100년의 샘’에서 나오는 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들의 생명을 기르기 위해 샘물을 빌려 쓴다고 말한다. 지구상의 물은 우리 인간뿐만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3천만종의 생물과 과거에 살았던 무수한 생물들이 함께 사용해왔던 것이다. 우리 것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물과 강을 개발해야할 대상이 아니고, 잠시 빌려 쓰는 소중한 존재로 인정할 때 진정한 의미의 대운하사업 포기가 된다.

“내안에 샘물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샘물이 나를 이곳에 머물게 하고 있다. 나의 마을에 나를 잡아 두고 있다. 그래, 그런 것이다.”(다큐멘터리 영화 ‘알렉세이와 샘’ 마지막 나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