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가난한 이들, 효율과 이윤의 세상에 저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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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가난한 이들, 효율과 이윤의 세상에 저항하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20.02.2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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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3대적폐 폐지공동행동'의 싸움은 어디까지 왔나?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 효율과 이윤의 세상에 저항하다

[부양의무자 기준폐지를 위한 청와대농성] 해단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부양의무자 기준폐지를 상징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제공:빈곤사회연대
[부양의무자 기준폐지를 위한 청와대농성] 해단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부양의무자 기준폐지를 상징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제공:빈곤사회연대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2017825,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광화문 농성장에 방문했다. 광화문에 있던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의 농성은 20128월 시작했고, 박능후 장관의 방문 이후 201795일 마무리 되었다. 장장 1842일에 걸친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농성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약속으로 실현되는 듯 했다. 농성은 마무리되었지만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3대 적폐 폐지공동행동>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로부터 근 3년의 시간이 흘렀다. 201810월부터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었고, 20197월부터 장애등급제 폐지가 시행되었다. 장애인 탈시설을 추진하기 위한 민관협의체가 설립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삶을 정말 나은 것으로 만들었을까? 각각의 3년차 성적표는 너무나 초라한 수준이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달성할 의지가 있는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대해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은 여러 차례 의지를 밝혔으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자꾸 반대로 가고 있다. 201810,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면서 주거급여 수급자 숫자는 27만명 가량 상승했다. 이렇게 성과를 보인 주거급여와 달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아닌 일부 완화에 그쳤던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의 수급자 숫자는 늘어나지 않았다. 문제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신청하는 수급자들의 핵심적인 욕구는 월세를 보조하는 주거급여가 아니라 생계, 의료급여라는 점이다.

지난 11월 인천 계양구에서 사망한 일가족 역시 주거급여는 받고 있었지만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생계, 의료급여 신청은 포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혼한 전 남편이 부양의무자이기 때문에 신청을 포기한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절망과 죽음이 연일 전파를 타고 흘러나왔지만 정부의 개선의지는 거꾸로 향했다. 대선 이후 ‘2차 기초생활보장제도 기본계획(2020년 여름 발표)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로드맵을 담겠다던 정부의 계획은 지난 9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담겠다는 것으로 후퇴했다. 해당 기본계획이 3개년 계획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시기는 앞으로 3년 뒤까지 미루어 진 것이고,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계획에서조차 제외 된 것이다. 올해도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부양의무자기준을 적극 완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시행 계획은 무척 왜소하기만 하다. 2020년 시행되는 부양의무자기준 완화안은 중증장애인가구, 생계급여에 한정할 뿐이어서 예상하는 대상자는 18천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7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한 빈곤 사각지대를 고려하면 효과를 내기 어려운 수준이다.

 

장애등급제 폐지의 핵심은 필요한 복지를 필요한 만큼 보장받는 것

장애등급제의 핵심적인 문제는 장애를 1급에서 6급으로 나누고, 각각의 등급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복지를 정해놓았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사람의 신체에 등급이 매겨질 수 없다는 것과 오로지 의학적 관점에서 정상의 신체를 기준으로 장애를 평가하는 것은 장애인의 신체를 부적절한 상태로 인지하게끔 한다는 비판을 해왔다.

더불어 각 등급에 따라 신청할 수 있는 복지의 종류가 정해지는 행정편의적 운영은 송국현님의 죽음과 같은 끔찍한 재난으로 이어졌다. 2014, 활동보조인 없이 혼자 살아가야 했던 송국현님은 집에 화재가 났지만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했다. 당시 활동보조인 제도는 장애 1급과 2급만이 신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공단은 송국현님이 혼자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변했지만, 침대에 누워있던 그는 홀로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없어 불길이 치솟는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201971,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가 시행되며 더 이상 1-6급과 같은 숫자로 장애인의 신체를 명명하지는 않지만,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이라는 두 가지 표식이 새롭게 등장했다. 더불어 이와 함께 공개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는 오히려 현재 이용하고 있는 복지마저 축소시킬 가능성을 함께 가져왔다. 껍데기는 변화했지만 여전히 실제 내용과 예산은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애인 수용시설 폐지, 공약은 했지만 예산은 0

장애인 수용시설 폐지는 대통령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어 있지만 실제 책정된 예산은 0원이다. 탈시설을 위해 당장 시작해야 하는 일은 신규시설 입소를 금지하고, 대규모 거주시설을 폐쇄하기 위한 단계별 조치지만 실제 계획은 수립되지 않았다.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을 시설에 가두어온 역사는 유구하다. 형제복지원, 선감학원과 같이 부랑인, 장애인에 대한 계도를 운운하며 국가적인 방조아래 운영 된 시설의 역사가, 종교기관과 민간단체들이 지은 대규모 시설이 복지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현재와 요양병원과 같은 사실상 시설에 입소할 수밖에 없는 빈곤층과 1인가구의 현실이 시설의 구조다. 가난하거나 장애가 있어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은 몸을 사회로부터 분리하고 감금해온 시간을 사죄하고, 누구나 사회 속에 존엄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바로 이 과정이 탈시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그리고 장애인수용시설을 폐지하자는 각각의 구호는 사실 하나의 요구일 수밖에 없다. 더불어 우리는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이 사회에서 실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함께 요구한다. 일이 필요한 사람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하는 것,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복지가 보장되는 것, 가난하고 아픈 이들의 생존을 가족들의 손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것. 이윤보다 평등과 평화의 가치가 빛나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우리의 길에 ‘3대 적폐는 당면한 과제이자 열쇳말이다.

 

기억해야 할 사람, 설요한

이윤과 효율의 가치로 움직이는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노동권은 인정받지도, 보장되지도 않는다. 설요한은 중증장애인 일자리 시범사업으로 꾸려진 동료지원가로 일했다. 중증장애인 당사자의 취업과 구직을 동료가 지원한다는 좋은 취지에서 도입되었지만, 고용노동부는 이 일자리에 성과기준을 정하고 압박했다. 한 달 네 명, 일 년 48명의 참여자를 발굴하고, 한 사람당 5번씩 총 240번의 면담과 매달 사례회의를 진행해야 했다. 이런 성과는 장애인 고용률이 36%에 불과하고, 장애인 고용의 문을 닫은 기울어진 세상에서 개인의 노력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지만,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이미 기관이 받은 지원금을 환수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설요한이 세상을 등지게 했다.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3대적폐 폐지공동행동>은 지금 국가인권위원회가 위치한 나라키움 저동빌딩 1층을 점거하고 있다. 대통령의 공약, 복지부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간 변화는 무척 제한적이거나 실제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방식으로만 실행됐다. 핵심적인 이유는 결국 예산이었다. 오랫동안 모든 부처 장관과 담당자들을 만나고 약속을 얻어냈지만, ‘기획재정부의 승인이 없으면 어렵다며 난색을 표할 뿐 누구도 대안을 가져오지 않았다. 지난 3년간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우리의 싸움이 만난 마지막 장벽은 예산, 그리고 예산을 통제하는 기획재정부다. 기획재정부 소유 건물인 나라키움 저동빌딩 1층에서 우리는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을 효율적이지 않은 몸으로 낙인찍고 예산의 우선순위에서 배재하는 기획재정부를 규탄하는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바로 이 곳에 설요한의 영정이 있다.

복지의 권리를 예산의 시소에 태우고,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내놓으라는 기획재정부의 숫자놀음을 보며 세상의 원칙을 바꾸어야 할 때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동정과 시혜의 부스러기를 줍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 필자가 이 글을 집필한 후 나라키움 저동빌딩 1층 점거농성은 종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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