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함께 고통을 껴안고 나눠온 사람들이 바꾸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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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함께 고통을 껴안고 나눠온 사람들이 바꾸어 왔습니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20.02.2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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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천주교인권위원회 이돈명인권상 수상자 선정 이유

세상은 함께 고통을 껴안고 나눠온 사람들이 바꾸어 왔습니다

9회 천주교인권위원회 이돈명인권상 수상자 선정 이유

 

정연순(변호사, 이돈명인권상 시상위원장)

 

이돈명변호사님은 군사독재시절, 인권과 양심을 지키는 사람들의 변호를 맡으셨고 그 과정에서 당신 스스로도 감옥에 갇히시는 등 민주화와 사회의 약자를 위해 헌신해 오신 분입니다. 그 분을 기리며 그 뜻과 정신을 구현하고자 애쓰는 개인이나 단체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이돈명 인권상의 제 9회 수상자로 성소수자부모모임을 선정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새로운 과학기술이 유토피아 같은 사회를 만들어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21세기가 어느덧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불안과 공포 속에 시달리고 있으며, 부와 권력의 양극화로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조차 너무도 힘겨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괴롭게 하는 것일까요. 혹자는 다른 이들, 권력을 가진 이들을, 돈을 가진 이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만, 실제로는 그 손가락은 우리 스스로에게 향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무지와, 불안,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이들에 대해 갖는 편견과 혐오, 차별에 대해서입니다. 우리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내가 다수라는 이유로 그 불안을 잠재우고 오만한 자신을 기쁘게 받아들이기 위해 누군가를 끊임없이 배척하고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닫힌 마음으로 가득한 이 세상이 바로 지옥인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만든 지옥 속에서 괴로워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동체 속에서의 소수자는 우리의 일그러진 마음을 받아 온갖 혐오, 차별을 받아 다치고, 때로는 죽기조차 합니다. 어느 한 집단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의 혐오와 차별은 그 집단에만 향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소수자들을 향해 확산됩니다. 결국 소수자의 인권을 지켜내는 것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공동체를 지켜내는 일이고, 나를 지켜내는 것이며 우리 스스로가 만든 지옥에서 벗어나는 싸움입니다.

 

그러나 그 싸움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다수의 편견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당사자는 물론이지만, 그 옆에서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어찌 보면 더욱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외면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치부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 공동체는 어떻게 될까요. 소수자는 영원히 고립되고 결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됩니다. 오늘의 우리 사회가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게 있다면 바로 그 일을 자신의 일처럼 껴안고 함께 고통을 나눠온 사람들에 의해서입니다.

 

오늘, 수상을 하시는 <성소수자부모모임>의 활동은 단지 자신들의 자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으로, 인류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을 깨닫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다른 소수자들에 대한 온갖 혐오와 차별에 저항하며, 인권의 보편성에 우리 공동체가 귀 기울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하기에 <성소수자 부모모임>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대표적 인권 변호사로서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헌신해 온 이돈명변호사님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시상위원회는 만장일치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