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가톨릭교회의 문헌들을 꺼내 읽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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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된 가톨릭교회의 문헌들을 꺼내 읽는 일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20.02.2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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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된 가톨릭교회의 문헌들을 꺼내 읽는 일

 

좌세준 (변호사,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이사)

 

가톨릭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비신자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기간이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보통 6개월에서 1년 가까이 예비신자 교리 교육을 받습니다. 저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중에 세례를 받았는데, ‘고시 준비생이라는 이유로 그 보다 짧은 교리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는 특혜를 받았습니다. 기간은 짧았지만 매주 미사에 참례하면서 전례의 의미, 가톨릭교회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예비신자 교리에서 일반적으로 다뤄지는 것은 가톨릭 신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믿을 교리입니다. 변호사가 되고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예비신자 교리를 통해서는 접하지 못했던 가톨릭 사회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림 제2주간에 지내는 사회교리주간을 통해 사회교리가 어떤 것인지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사회교리는 사회문제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사무국 구성원들과 인권위원들이 함께 하는 모임으로 사회교리·교황문헌 읽기모임을 이어가고 있는데 20192월 정기총회에서 제안된 이 공부모임의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하여 해답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고, ‘인간의 삶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인식에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부분입니다. 인권(Human Rights)이라는 개념의 두 쌍 중 인간(Human)’이라는 부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것은 권리(Rights)’라는 또 하나의 부분이 우리 사회에서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길을 찾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가톨릭교회도 우리들이 모여 사는 사회 속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가톨릭 신자로서 삶을 살면서 다양한 사회문제에 접하게 됩니다. 가톨릭교회는 이와 같은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신자들이 지켜야 할원칙이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사회교리입니다. 이 공부모임의 명칭을 사회교리·교황문헌 읽기모임이라고 한 것은 가톨릭 사회교리가 역대 교황들의 회칙이나, 공의회 문헌 등을 통해 제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준비모임을 거쳐 시작된 공부모임은 2~3주에 한 번 정도 사회교리를 담은 회칙, 공의회 문헌 등을 함께 읽고 자유로운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 모임은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읽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20여 년 전인 1891년에 나온 이 회칙은 가톨릭 사회교리를 형성한 첫 번째 문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물론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관심은 이 회칙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 회칙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적의를 품은 일련의 사상들을 오류목록(1864)에 포함시켜 단죄하는 기존의 방식을 넘어서서 당대의 주요 문제들, 특히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에 주목하고 이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톨릭 사회교리의 대헌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회칙의 첫 장은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되며 노동자들의 생계임금(생활임금)과 노동자들의 결사 및 파업의 권리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회칙이 일명 <노동헌장>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회칙을 함께 읽으면서 사유재산을 자연법에서 나온 것으로 설명하며 사실상 절대적 권리로 보고 있는 점(33)과 사회주의에 대한 당대 가톨릭교회의 입장이 갖는 정치적 의미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891년 이 회칙이 발표되자 미국의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는 이 회칙에서 언급된 사유재산의 자연권성을 반박하면서, “토지사유제는 정당하지 않다는 내용의 편지를 레오 13세에게 보냅니다. 이 서한들을 담은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라는 헨리 조지의 책을 읽어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읽은 문헌은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사십주년(Quadragesimo Anno)입니다. 새로운 사태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31년 발표된 이 회칙은 1929년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직후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비오 11세는 산업화의 부정적 영향은 물론 탐욕적인 금융 분야의 영향력이 국제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경제 세력들 간의 무한 경쟁으로 이해되는 자유주의에 대한 경계와 사유 재산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회칙에서는 국가는 고유하게 국가에 속하고 국가만이 수행할 수 있는 임무를”, “효율적으로수행하여야 한다는 보조성의 원리’(principle of subsidiarity)가 천명(35)되고 있습니다. 이 회칙이 발표될 당시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작은 도시 몬드라곤의 본당 사제였던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는 임금 계약이 어느 정도 동업 계약으로 바뀌어야 하고”, “노동자와 관리직 종사자들이 소유나 경영에 공동으로 참여하고 어떻게든 이윤의 분배에 참여함으로써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이득을 주는 방식을 권고(30)한 이 회칙에 감명을 받아 몬드라곤 협동조합이라는 결실을 이루어냅니다. 공부모임에서는 호세 마리아 신부의 삶을 다룬 책 호세마리아 신부의 생각의 내용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서민처럼 활달하고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 적응)’를 모토로 가톨릭교회와 현대 세계의 소통의 길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성인 교황 요한 23세의 회칙 어머니요 스승(Mater et Magistra),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는 불평등의 세계화, 3세계의 빈곤, 핵 확산 시대의 평화가 제기된 1961년과 1963년에 발표되었습니다. 특히 지상의 평화는 회칙의 대상을 종전의 주교, 가톨릭 세계의 성직자, 신도로 한정한 것이 아니라 그리고 선의의 모든 사람들에게보내는 회칙임을 선언함으로써 가톨릭 사회교리가 종교를 넘어서는 보편적 원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고 최근에 두 번에 나누어 읽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인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1965바티칸공의회의 꽃으로 불려오는 중요한 문헌으로 가톨릭교회와 신자들의 소명을 상세히 망라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그리스도 정신에 근거하여 인간이 지녀야 할 보편적 권리를 옹호하고, 공동선을 추구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톨릭 사회교리를 함께 공부하는 것, 그것은 급변하는 사회 현실에 맞서 인권의 옹호와 신장”, “정의와 평화의 구현을 끊임없이 밀고 나가야할 우리 위원회의 단단한 나침반이 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