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과 인권은 동시에 존재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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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과 인권은 동시에 존재 할 수 없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20.12.2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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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과 인권은 동시에 존재 할 수 없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국가보안법은 제정 직후부터 그 존재와 적용 과정의 인권침해와 반민주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고 위헌 소송은 물론 개정과 폐지 논란이 이어져왔다. 현재 여덟 번째 위헌 소송이 진행 중에 있으며 얼마 전 국가보안법 위헌소송대리인단이 공식 발족하여 헌법재판소에 공개변론을 신청하는 등 법정 공방이 준비되고 있기도 하다. 2004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의장과 법무부장관에게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권고하기도 했으며 국제사회에서도 대한민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점검을 할 때마다 국가보안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권고하는데 특히 7조에 대한 비판은 매우 강력하다. 유엔은 46개월을 주기로 모든 국가가 대상으로 순차적으로 실시하는 국가별인권정례검토(UPR)를 비롯하여 국가인권기본정책(NAP), 자유권규약위원회 등 공식 보고 절차에서 대한민국에 매번 빠짐없이 국가보안법과 사형제도 폐지를 권고하고 있을 정도이다.

 

36년간의 일제 식민지, 독립과 함께 시작된 분단, 한국전쟁 그리고 다시 분단 70, 그 세월 동안 우리는 지독한 반공주의와 독재의 시간을 살아왔기 때문에 간첩으로 조작되어 고문 받고 수십년 옥살이를 하거나 사형을 집행당한 사례들을 너무 많이 접해 왔다. 그래서 그 정도로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으면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인식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의 큰 비극이기도 하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에 의해 공안기관에 잡혀가 조사를 받고 감옥에 가는 일만큼 심각한 일이, 바로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검열하고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억압당하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 20205월 대법원이 내린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한 확정 판결은 이런 측면에서 매우 충격적이다. 7대 경기도 파주시의회의 유일한 3선 지역구 의원인 안소희 의원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6월에 집행유예 3, 자격정지 2년의 형이 확정되어 의원직을 상실했다. 안소희 의원은 소위 내란음모사건으로 자신이 몸담았던 통합진보당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해산되는 일을 겪으면서도 내리 3선을 한 파주시의회의 최다선 의원이었다. 그만큼 지역 주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받는 기초자치단체의 의원이었기 때문에 그 충격이 더 컸다.

 

안의원은 2012년 통합진보당 출마자 결의대회에서 혁명동지가라는 민중가요를 참가자들과 함께 제창하였는데 법원은 혁명동지가의 가사가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으로서, 이른바 이적성이 인정되기 때문에 그 제창 행위 역시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혁명동지가의 가사 내용 등을 종합할 때 미필적으로나마 피고인들에게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에 대한 인식이 있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혁명동지가90년대와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집회나 시위를 나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듣고 함께 불렀을 소위 운동권 히트곡이었다. 국가보안법 71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의 공소시효가 아직 남았다면 이 노래를 동료들과 함께 불러봤을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 될 수 있는 있는 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의 살아있는 위력이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며 국내 북한이탈주민 정보를 북에 넘기는 간첩행위를 했다고 사건을 조작하여 국정원 직원들이 구속되기도 했던 서울시 공무원 조작간첩사건 사례, 이메일로 받은 북한의 서적 파일을 다른 사람에게 보낸 혐의로 구속되었던 전자도서관 대표의 사례, 서점에서도 정식 판매되었던 북한의 어린이책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혐의로 유죄를 받고 학교에서 쫓겨난 전교조 교사들의 사례, 북한에서 개설된 트위터 <우리민족끼리>의 트윗을 리트윗 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사진관 관장 사례, 북한의 안면인식 카메라 기술을 도입하는 경협을 시도하다가 구속된 IT회사 대표 사례 등이 모두 2010년 이후 일어난 최근의 일들이다.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박물관으로 가지 않은 채 오히려 우리 일상 속에 더 넓고 깊숙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악법은 아무리 잘 운용한다고 해도 그저 악법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것일 뿐이다.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서슬 퍼렇게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다는 것을 21대 국회와 2020년의 우리들은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국가보안법 모든 조항이 인권침해 요소를 가지고 있어 완전히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몇 개 조문의 개정으로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다 해결 할 수 없고 국가보안법의 악용으로 인한 인권 침해 역사를 치유하지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찬양과 고무라는 잣대로 너무 쉽게 국민을 억압 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 7조는 악용의 소지가 가장 큰 조문이다. 국가보안법 제7조는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사상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은 일로 유죄 판결을 받게 되어 형벌을 받게 되는 형벌과잉 초래되고, 찬양·고무· 선전·선동 모든 개념이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않아 검찰이나 사법부의 자의적 판단이 너무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떠한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고 그에 따르는 형벌은 무엇인지를 반드시 법률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는 형사법의 대원칙이자 자의적인 형벌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고 법률에 의해 국가 형벌권을 통제하기 위한 죄형법정주의를 위배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심각한 인권침해이기 때문에 국가보안법과 인권은 동시에 존재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국가정보원의 국내수사가 중단되었다고는 하나 국가보안법은 존재 자체가 이미 국민의 정치사상의 자유를 현격히 침해하고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이다.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하며 그것이 남한과 북한이 더 가까이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한번도의 통일에 한걸음 다가가는 일이 될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온전한 자유는 없고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조작사건을 만드는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공안기구들이 존재하는 한 인권도 없다.

 

우리 중 단 한사람이라도 인권을 침해 받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모두의 인권이 침해되는 것이라는 인권의 원칙을 다시 확인한다. 21대 국회가 국가보안법 폐지로 우리 국민의 인권을 한 단계 성장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