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온 우주와 맞서는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 '그냥,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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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온 우주와 맞서는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 '그냥, 사람'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21.03.14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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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우주와 맞서는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

-<그냥, 사람>을 읽고 -

배여진(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

 

 

숫자는 참 간결하다. 한 명 한 명 죽음의 무게조차 그저 숫자에 불과한 것으로 만든다. 작년 11,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를 하루 앞두고 서울신문 1면에는 <아무도 쓰지 않은 부고>라는 제목으로 2020년 전반기 야간노동 중에 숨진 사람들의 부고를 전했다. 148. 마치 야간노동이라는 하나의 사건 같지만 무려 148명의 죽음이다.

 

그리고 얼마 전, ‘로켓배송으로 유명한 기업 쿠팡이 미국 나스닥 주식 시장에 상장을 준비한다며 떠들썩 했다. 국내 기업이 세계적인 증시 시장에 진출한다고 하니 기업 입장에서는 최고의 호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쿠팡에서 과도한 배송 업무 때문에 택배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악재의 반복일 뿐일까.

 

필자는 결혼과 동시에 잠시 해외 살이를 하느라 수년간 속해 있던 인권운동이라는 나의 우물을 떠났다. 물론 SNS와 뉴스로 소식을 접했지만 현장에 있는 것은 아니니 난 늘 나 스스로를 방관자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는 동네 엄마들, 조리원 동기들을 만나며 내가 그 동안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접했다. 그 안에는 제주도는 이제 예멘 난민들 때문에 위험하다며 혐오를 대놓고 드러내는 사람도 있고, 부동산 투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 현직 경찰, 괜찮은 학원과 교육시설에 정보가 빠삭한 사람 등 예전에는 어울리기 힘들어 했을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 그 동안 나는 많이 유연해졌고, 조금은 변했을지도 모른다. 한 발짝 떨어져 내가 있던 우물을 바라보니 그 곳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작가 홍은전이 나에겐 보이고 그에겐 보이지 않는 세상”(p20)에 대해 생각했다는데 내가 딱 그렇다.

 

작가 홍은전의 책 <그냥, 사람>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그냥,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냥의 뜻은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인 것이란다. , ‘있는 그대로라는 뜻이다. 인간으로 시작해서 동물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그냥, 사람>은 장애인, 세월호 참사 희생자가족, 비정규직 노동자, 노숙인, 철거민, 이주노동자 등의 딱지를 뗀 있는 그대로의 사람과 동물의 이야기이다.

 

있는 그대로의 날것의 이야기이니 읽다 보면 많은 것이 교차 된다. 필자가 중학교 2학년 때 봉사활동으로 갔던 꽃동네에서 좋은 일을 했다는 뿌듯함 뒤에 왠지 모르게 남아있던 불편함과 꽃동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했던 고 박현, 고 송국현의 죽음이 교차 된다. 대학생 시절 다른 운동권 계열의 학생들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서명운동을 하는 걸 보면서 무심히 지나쳤던 나와 지하철역 휠체어 리프트를 타다 사망한 장애인들 죽음이 교차 된다. ‘거지가 뭐냐고 묻는 아이의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하나 망설이는 나와 해마다 300명이 넘는 홈리스와 천 명이 넘는 무연고자들이 외롭게 죽어가는 거리가 교차 된다.

 

이 숱한 장면의 교차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불편함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호재와 악재 속에서 호재만을 보고 싶었던 나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방관자로 인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며, 우물 밖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알고도 미래의 나는 여전히 그냥방관자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무력감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느꼈다는 것 만으로도 당신은 우물 밖 세상을 내다 볼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차별에 저항하며 싸우는 일은 온 우주와 맞서는 일이고, 그런 경이로운 존재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홍은전. 세상의 호재만을 보고 싶은 우리에게 뒤통수 띵 하게 만드는 홍은전의 글로 마무리를 한다.

 

나는 그들이 부디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싸우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건 세상의 차별과 고통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이 곧 망할 거라는 징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