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의 연이은 부고 이후 남은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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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의 연이은 부고 이후 남은 과제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21.03.1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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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숙명여대에 합격하고도 재학생들의 반발로 입학을 포기한 A학생과 성전환 수술을 한 군인으로 계속 복무하고 싶다던 변희수 하사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핫이슈였다. 트랜스젠더 이미지가 특정 연예인의 이름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던 이 나라에 변화가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올해 봄이 막 깨어나는 시기에 트랜스젠더로 자신을 정체화한 이은용, 김기홍, 변희수 세 사람의 부고가 연이어 들려왔다.

1년에 단 며칠 '나 여기 있다!'고 외치는 퀴어문화축제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하라는 말이 유력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는 이런 나라에서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을 드러낸 그들의 용기에 기대기만 했었나 하는 자책, 갑작스러운 이별에 대한 충격과 슬픔, 용기에 부흥하기는커녕 여전히 너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꼼짝 않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 같은 감정들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할퀴었다. 떠난 이들을 기리며 남은 이들의 과제가 무엇인지 짚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서로의 곁을 살피며 삶을 이어가는 것, 이것이 산적한 과제 중 우리 각자가 반드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들을 떠나보내고 이 사회의 현실을 직시해본다. 가장 뼈아프고 통렬히 반성해야 하는 것은 정부와 국회다. 세 사람만 떠난 것이 아니다. 어떤 집단에서든 혐오의 대상이 되기 쉬운 성소수자들의 우울증, 자살률은 비(非)성소수자에 높다는 것은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밝혀져 온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제도 정비를 해온 바 없는 이 나라는 너무 많이 늦어버렸다. 진부한 말이지만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이 우리 앞에 펼쳐질 시간 중 가장 빠른 시기이다. 법과 정책은 무엇을 하지 않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은 이미 제시되었다. 연구도 충분히 진행되었고 세부적인 정책들도 많이 제안되었으며 정치권에서 그렇게나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 시민의 여론도 형성되었다. 정부와 국회. 딱 두 곳이 의지만 가지면 될 일이다. 

정책 과제 중 다음의 세 가지는 특히 빠르게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 성소수자를 통계에 반영하라.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첫 국정감사에서 통계청장에게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가구주와 배우자의 성별이 같아도 데이터가 처리되게 해달라는 취지의 질의를 하였다. 이후에도 통계청과의 소통을 이어가며 체계정비 작업을 모니터하고 있다. 장의원의 지적처럼 정책수립의 중요한 근거자료가 바로 통계이다. 그 통계에 성소수자가 제대로 반영되어 본 적이 없다. 인구의 몇 %가 성소수자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다른 국가와 비교하거나 연구를 토대로 '추측건대' 몇 %쯤 되겠다고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같은 성별인 사람, 주민등록번호가 가리키는 성별과 나의 정체성이 일치 하지 않는 사람, 나의 정체성이 이분법적인 분류에 속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이 몇 명이나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데 그들을 위한, 그들을 반영한 정책이 수립될 리 만무하다. 

둘째, 미디어의 혐오표현 대응책을 마련하라. 미디어에 대한 대책은 크게 두 가지 측면이 반영되어야 한다. 하나는 미디어에서 생산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향되거나 왜곡된 이미지에 대한 것이다. 성소수자라는 존재의 가시화를 금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성소수자가 주변인들에게도 쉽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지 못하게 한다. 이 때문에 상당히 많은 시민들이 자신의 평범한 지인들 중 성소수자가 있다고 생각지 못하고 미디어에 노출되는 성소수자의 이미지를 성소수자들과 동일시한다. 자극적인 소재와 요소를 총망라한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방영하는 SBS가 그룹 퀸(Queen)의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를 방영하면서 키스 장면을 삭제해버렸다. 의도는 없지만 동성 간의 키스가 길어지면 선정적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미디어가 성소수자를 어떤 시각에서 접근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디어가 이런 관점에서 성소수자를 그리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다른 하나는 혐오 표현의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멀리 유튜브까지 가지 않더라도 방송과 기사 등에 의견의 탈을 쓴 혐오 표현들이 난무한다. 이에 대한 규제에 대한 요구는 자주 표현의 자유와 얽히며 논의가 섞이게 된다. 같이 이야기 될 수밖에 없는 주제이기 때문에 그 경계에 대한 정책의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 시급하다.

 

기승전-차별금지법 

마지막으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각계각층에서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하는 안타까움을 표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이런 일은 다시 발생하지 않을까. 누구도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그것은 차별금지법을 언급하는 이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우리가 '기승전-차별금지법'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국가가 차별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의 출발이 차별금지법이기 때문이다. 혐오 차별이 만연한 사회를 비관하는 사람이 늘어가는데 정부, 국회 어느 하나 법 제정의 의지가 없는 것인가. 

국가가 움직이길 머뭇거리는 이 시간, 우리는 애가 탄다. 또 누군가를 놓칠까 봐. 서울시교육청은 제2기 학생인권종합계획(안)에서 '혐오 차별 없는 학교'를 '학생의 생존권을 위한 안전과 복지의 보장'의 하위 항목으로 분류하였다. 말 그대로 혐오 차별에 노출되지 않는 것은 안전과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이제는 낡은 말이 되어버렸지만 촛불정권이라는 이 정부가 출범하게 된 배경에는 국가가 단 한 명의 생명도 귀히 여기라는 시민의 요구가 있었다. 소수자에게 휘두르는 혐오의 칼날이 또 누군가를 깊이 찌르기 전에 국가는 책임과 역할을 다하라.

 

*이 글은 프레시안에 '프레디 머큐리의 키스씬과 변희수를 삭제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라는 제목으로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