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평화는 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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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평화는 처음이라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21.05.17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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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평화가 뭐야?"
책_평화는 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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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평화가 뭐야?”

- 평화는 처음이라를 읽고

배여진(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

 

부끄러운 고백을 하건대 필자는 한동안 평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뉴스에서 남과 북(가끔 미국도 낌) 두 정상이 만난다든지, 어느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잠시 평화에 대해 고민을 하는 하곤 했다. 미군기지 확장으로 한평생 일군 땅을 빼앗기게 생긴 대추리 주민들과 함께 하겠다며 포크레인에 올라가고, 빈집 전망대 위에 밧줄로 몸울 묶기도 하였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평화에 대한 고민과는 먼 삶을 살고 있다. 나에게 평화는 그저 라떼 시절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다 어느 날, 큰 아이가 질문을 했다. “엄마, 나 크면 군대 가야해?” 하늘이 노래졌다. 그렇다. 난 아들을 한 명도 아닌 두 명을 낳았다. 오마이갓, 아니 오마이아들!! 그 때부터 나는 원초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우리 애들이 20살이 되기 전에 군대가 없어질 수 있을까?’

 

엄마, 평화가 뭐야?” 평소 질문이 많은 큰아이가 또 물었다. 늘 그렇듯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겨우 대답을 꺼냈다. “. 평화란 한 마디로 딱 정의하기는 힘든데, 전쟁이나 싸움이 일어나지 않고 사람들이 행복한 거.” 대답을 하는 동시에 스스로 의문이 생겼다. ‘이게 가능하기는 한 건가?’

 

저자 이용석은 평화는 고정불변의 보편적 가치가 아니, “다양한 해석이 충돌하고 논쟁하는 개념이며, 평화를 실현하는 방법이나 평화의 내용 등을 둘러싸고도 치열한 갈등이 일어나는것이라 말한다.(p17) 인권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듯, 평화도 비둘기가 물어다 주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논쟁과 갈등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저자는 평화를 한 마디, 한 문장, 한 문단으로 쉽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질문을 바꿔본다. “평화는 무엇을 봐야 하나?”, “평화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가톨릭 미사에서는 미사 도중 주변 사람들에게 평화를 빕니다라는 말을 건네며 인사를 나눈다. 찰나의 순간을 놓치면 가장 어색한 순간이 되기도 하지만, 눈길을 나누며 상대방에게 평화가 깃들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는 그 시간은 온돌 방바닥마냥 마음이 뭉근해지는 시간이다. 설령 내 마음에 평화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조금도 없을 때에도 아는 사이도 아닌 누군가가 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를 건네면 평화를 잃은 내 마음이 묘하게 위로를 받는 기분이곤 한다. 이제 저자의 위 두 가지 질문과 평화의 인사를 함께 생각해보자. 평화의 인사를 건네는 나는 상대방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평화를 빌어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상대방이 처해있는 상황 중 가장 불행하고 안 좋은 상황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평화의 인사를 건네야 한다. , 평화의 시선으로 평화의 인사를 건네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평화의 시선이 젠더, 계급 등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과 교차해야 한다고 말한다.(p30)

 

특히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뼈 있는 네 가지 질문을 던진다. 전쟁과 폭력은 인간의 본성인지, 강한 군대가 있어야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인지, 모두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게 합리적인지, 절대악을 몰아내기 위해 불가피한 전쟁도 있는지 등 평화라고 하면 연관검색어처럼 떠오르는 이 질문들에 우리의 편견들과는 다른 방향의 길도 제시한다. 물론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한편 저자는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 묻는 대신에, 누가 전쟁을 원하고 바라는지, 누가 전쟁을 부추기고 기획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그런 행위는 과연 어떻게 지속가능한지 꼬집는다. 저자는 전쟁으로 돈을 벌고, 권력을 유지하는 군수업체와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전쟁을 용인하고 묵인하는 보통 사람들을 등장시킨다. 보통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와 당신, 우리 모두이다. ‘보통 사람들은 혐오와 배제, 차별을 만들어내며 이와 같은 속성은 전쟁을 일으키는데 아주 좋은 토양이 된다고 지적한다. ‘보통 사람들중 한쪽은 혐오와 배제, 차별이 마치 이것들을 가해해도 되는 권리처럼 인식을 만들고, 또 다른 보통 사람들은 혐오와 배제, 차별을 멈추라고 말한다. 또 한 쪽의 보통 사람들은 이 둘 사이의 가운데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중립인 것처럼 비겁한 경계에 서있다. 전쟁을 이용해 돈을 벌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사이에 가면을 쓰고 숨어 혐오와 배제, 차별을 자극하고 부추긴다. 결국 피해는 보통 사람들의 몫이지만, 그 책임에서 보통 사람들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저자는 단호하게 전쟁이 시작되고 유지되는 데에는 우리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p123)

 

평화를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과 사회 구조 속에서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저자 이용석. 병역거부자가 되기 위해 평화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다 평화활동가가 되었다고 소개하는 그는, 이 책에서 어려운 평화 이론들을 되도록 등장시키지 않는다. 병역거부 당사자로서 무수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평화활동가로서 현장에서 치열하고 또 즐겁게 현장에서 직접 느끼고 동료들과 함께 고민하며 모아온 평화의 언어들을 책 평화는 처음이라에 담았다.

 

서로에게 건네는 평화의 인사를 위한 평화의 시선을 향한 안내서, “엄마, 평화가 뭐야?”라고 질문한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이 책을 손에 쥐여 주어야겠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여야겠지. “엄마가 절대 평화에 대해 몰라서 이 책을 주는 게 아니야. 일단 읽어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