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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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하여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21.05.1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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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하여

 

오진방(한국한부모연합 사무국장)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생명 주일’(52)을 앞두고 발표한 담화문을 통해 여성가족부가 추진하는 비혼 동거’ ‘사실혼법적 가족 범위 확대 정책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가치로 여겨졌던 것과는 매우 다르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2014, 주디 덴티 주연의 <필로미나의 기적>영화가 떠올랐다. 임신을 알게 된 가족들이 주인공 필로미나를 로스크레아 수녀원으로 보내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수녀원에서 아이를 낳은 어린소녀들은 세탁공장에서 12시간에 달하는 노동시간을 채우고 나서야 단 한 시간의 면회를 통해 자신이 낳은 아이를 면회할 수 있었다. 당시 미혼모들이 낳은 아이들을 세계 각국에 돈을 받고 수출하는 정책을 펼친 아일랜드는 아이를 평생 찾지 않는다.”는 각서에 사인을 하고서야 입양을 보냈다. 그야말로 인권유린의 현장에 어린 미혼모들의 속죄는 다름 아닌 혼인하지 않고 낳은 아이와 헤어지는 것이었다. 영화 속 가족을 이루고 싶었던 필로미나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였을까? 현재 다양한 가족을 구성하며 서로 의존할 권리를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종교가 내세우는 보편적 가치는 거의 똑같이 작동되는 듯하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 언급한 염수정추기경과 516일 이철, 기독교대한감리회장의 한 인터뷰는 참으로 닮아 있다. “차별을 막는다고 가족 형태를 무너뜨릴까봐 걱정인거죠. 차별을 하지말자에서 그쳐야하는데 기존의 가족형태가 깨질까봐 염려하는 것이니까 저희 입장에서는 이미 차별을 막는 법은 충분하다고 보는 것이죠.” 종교에서 주장하는 우리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깨질까봐 염려되는 가족형태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혹시 2004년 제정된 건강가정기본법에서 명시된 대로 혼인혈연입양을 통한 가족만을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로 보는 것은 아닐까?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가구형태는 부부+자녀로 구성된 가족이 점점 감소하는 방향으로 흘러 왔다. 2000년 전까지 50%를 약간 상회했던 부부+자녀로 구성된 소위 정상가족은 2019년 현재 30% 이하로 떨어졌다. 오히려 1인 가구가 30%를 상회하고 이어서 한부모, 조손 가구, 비혈연 가구형태로 다양한 가족들이 차지하고 있다. 1977년 미국의 통계에 의하면, 가족의 부양자인 남편과 전업주부이자 어머니와 자녀들로 구성된 현대 핵가족은 단 16%에 불과하다고 한다. 가족형태의 변화는 이미 농촌의 확대가족이 폐기되었고 초기 산업자본주의 핵가족 등장과 함께 후기 독점자본주의를 거쳐 신자유주의시대 가족은 이미 변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를 인식하듯, 여성가족부는 지난 4,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시대에 가족의 개인화, 다양화, 계층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다양한 가족에 대한 정책수립계획을 발표했다.

 

다양한 가족 유형 중 하나로 청소년부모가 있다. 지난 54일에 방송된 MBC < PD수첩 > '인천 모텔 아기 - 위기의 청소년부모' 편에서 새로운 유형으로 등장한 17세 청소년 부모는 다음과 같이 인터뷰를 했다.

 

"엄청 많은 시설에 다 연락을 해봤어요. 보육원, 자립원, 미혼모시설 다 연락을 해 봤는데 보육원은 아기 입양처를 연결시켜주겠다 이렇게 말씀하신 곳도 있었고 미혼모 시설은 아기 아빠랑 떨어져야 되니까 받아주는 없었고 일단 미성년자는 집을 계약해주는 곳이 잘 없어요."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는 빈곤도 세습된다. 돌봄 없는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끝없는 가족 내 잔혹사는 인천미추홀구 화재사건인 라면 끓이던 형제 날벼락코로나 시대의 비극으로, 강북구에서는 한파 속 내복 아이사건으로, “여수 냉장고 시신 방치사건인천서 8살 여아 숨진 채 발견엄마는 쓰러진 채 발견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의지할 가족과 이웃이 없는 청소년부모에게 수많은 저출산 정책과 가족 관련 지원기관, 늘어가는 복지 예산과 시설 중심적 한부모정책 속에서도 아이를 키울 방법이 없었다.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는 종교는 고통 받는 타자들에게 청소년부모를 비롯한 자격 없는 시민들의 가족구성을 법제도 안의 가족으로 대할 것인가? 아니면 혜택을 받아야 하는 수혜자로만 대할 것인가?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손 내밀어 친구가 되어준 예수의 가르침은 정녕 낙인화 된 복지정책을 만들어 시설에 수용하는 것 뿐이었을까? 영화 <필로미나의 기적>에서 처럼 당대에 가족으로 인정되지 못한 혼외출산 당사자들이 수녀원에서 강제노역을 하고 아이와 분리되는 정책은 구별이 아닌 차별이었고 포용 없는 배제였다.

 

착취와 약탈의 본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자본주의 21세기 버전인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대세인 지금 이 세상에서 자유로운존재로 살기에는 어려운 일이다. 여성은 남성과,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과, 그리고 병든 이들은 건강한 이들과 구별되지만 차별되어서는 안 된다. 이 문제에 대해 더욱 성찰할수록 정체성차이성안에서 배제 없는 포용은 종교의 가장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누구까지 환대할 수 있는가?

 

데리다는 전적인 환대(무조건적 환대)와 조건적 환대로 나누는데 무조건적 환대는 내가 나의-집을 개방하고, 이방인(성을 가진, 이방인이라는 사회적 위상 등을 가진 이방인)에게만이 아니라 이름 없는 미지의 절대적 타자에게도 줄 것을, 그리고 그에게 장소를 줄 것을, 그를 오게 내버려둘 것을, 도래하게 두고 내가 그에게 제공하는 장소 내에 장소를 가지게 둘 것을, 그러면서도 그에게 상호성(계약이 들어오기)를 요구하지도 말고 그의 이름조차도 묻지 말 것을 필수적으로 내세운다.

 

정치와 법이 난무하지만 고통 받는 이들이 늘어가는 이 시대에 종교는 중요하다. 보편적인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어려운 시대에 고통 받는 타자를 향한 배제 없는 포용정책일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말하자면 가족유형에 따른 차별 없는 환대의 공간에서는 가족에 대한 정의(定議)는 정의(正義)로운 정의(定議)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함께 할 가족은 필요하며 비정상가족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