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이후 교회를 말하다 - 성가소비녀회 조진선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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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이후 교회를 말하다 - 성가소비녀회 조진선 수녀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21.08.15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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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꿈꾸며

 

안녕하십니까? 저는 가톨릭 수도회 성가소비녀회 소속 조진선수녀입니다.

초대를 받고 얼떨결에 대답을 하고는 두고두고 후회하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우선 먼저 밝히고 싶은 것은 저는 가톨릭을 ‘대표하는’ 수녀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가톨릭에서도, 제가 속한 수녀회에서도 ‘소수’에 속하는 면이 많은 사람입니다. 보편적으로 ‘수녀’하면 떠오르는 모습의 수녀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장중심의 사람입니다.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JPIC) 활동을 해왔습니다. 기도하는 수도자라는 이미지보다는 활동가의 모습이 더 부각되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늘 부적합한 자라는 자격지심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수도생활 40년을 바라보는 지금,

이제야 저는 ‘나’라는 개인의 신비를 깨닫고 있습니다. 무엇으로도 규정지을 수 없는 한 사람의 우주적 신비는 그야말로 저에게 놀라운 깨달음입니다. 수도공동체 안에서 늘 ‘부적격자’로 자신을 내면화하고 살아왔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나’에게 ‘나’를 선물로 주셨고, 나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우주임을 깨달아가며 나의 고유성에 대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늘 부족하지만 하느님의 시선 앞에선 사랑스러운 존엄한 존재입니다. 저는 스스로 ‘스캔들 유발자’이며 여전히 다른 사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매력적인 나‘라고 표현할 만큼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구에 온 목적이 곧 이런 나를 만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나를 창조하시고 좋아하시는 하느님의 시선 앞에서 언제나 삶을 충만한 축제로 여기게 해주었습니다. 세상 모든 이가 이런 기쁨에 초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저마다 창조주께서 ‘일부러’ 주신 고유함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태도, 자신의 고유함을 좋아하시는 (창세기 1장)하느님의 시선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되살려져야 합니다.

창조된 우리 모두 고유하고 또 그 고유함이 더 진해질수록 다양함은 풍요로워집니다.

하느님의 기쁨이겠지요. 서로 다른 개별 존재들이 ‘다름’ 때문에 서로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은 하느님의 슬픔이 될 것입니다. 차별과 혐오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실수’라고 판결하는 것이고 하느님이 틀렸다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실수를 할 수 있는 분인가요? 그렇다면 하느님이 아니시겠지요.

우리 신앙인들은 거의 매일 하느님을 ‘무능하고 실수하는 분’으로 판결합니다. 이웃에 대한 판단을 할 때이지요. 우리는 다른 사람을 부족한, ‘결핍된’ 누구로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은 서로에게 선물로 증여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어떤 작품도 실패하실 수 없습니다.

나, 라는 우주적 존재의 신비를 발견하는 사람은 놀랍게도 하느님의 창조적 시선으로 자신을 보게 되고 세상을, 이웃을 바라보게 합니다. 거기에는 소수와 다수가 없습니다. 고유하고 다양한 또 다른 ‘나’들이 어우러진 생명의 향연이 있을 뿐입니다.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는, 그냥 ‘사람’들입니다.

다수와 대비하여 소수인 사람들을 성소수자로 분류하고 낙인찍고 차별하는 것은 얼마나 폭력적이며 하느님께 대한 배신입니까.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얼마나 자의적이고 이상한 방식으로 인간을 분리하고 구분하는지. 성으로 규정짓기 이전에 먼저 같은 사람으로 보아야 사람이 보입니다. 인간의 신비는 하느님의 신비에 맞닿아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온통 인간을 ‘성’을 중심으로 바라봅니다. 그냥 사람입니다. 모두가 고유하고 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름’을 ‘틀림’으로 표시하고 차별하고 혐오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하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체험하는 세상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해야하지 않을까요?

한 사람의 존재는 수많은 세포 안에 수많은 신비를 담고 있는 고유하고도 아름다운, 하느님의 모상입니다. 우리 세상이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차별금지법을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외쳤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 창조 섭리’를 거론하며 앞장서서 반대하는 것은 저에겐 충격입니다.

우선 차별금지법 이후의 교회에 대한 희망을 5가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1. 치유와 화해를 이루는 환대가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성명서>를 읽었습니다.

우선 읽으면서 분노를 느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시선이 ‘일방’입니다. 그것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관점입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떻게 이렇게 단호하고 평면적 시선으로만 볼 수 있을까.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우리의 삶을 사셨듯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고 고민해볼 수 없는 것일까. 아쉬웠습니다. 상처받고 주눅 들어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떨고 있는 이들의 상처에 더 큰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어떤 방식으로든 특히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일에 가담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상처받은 이들 특히 성소수자들을 환대하는 전례, 또는 프로그램 등 다양한 기획을 통해 치유와 화해를 이루는 공동체가 되어 하느님의 따뜻한 품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아무도 이질감과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2. 교회 안에서 혼인 및 가족 구성에 대한 존중과 모색이 필요하다.

그리스도교회는 ‘해방하는’ 교회이지 ‘단죄하고 배제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어떻게든 교회 구성원이 공동체 안에서 안전하고 평온함을 체험하게 해야 합니다. 물론 저항이 많겠습니다.

그러나 처음엔 늘 저항이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것, 낯선 것에는 저항하고 거부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공론화하고 신중하고도 자비롭게 길을 찾아야 합니다. 성소수자들도 지구에 초대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하느님의 모상입니다.

현실적 해결 방법은 일단 무엇이든 과감하게 실행하고 제안하는 무모함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성소수자가 커밍아웃하기도 어려운 사회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니 결혼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주제를 자주 다루면 좋겠습니다.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방식들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만나고 들어보고 함께 고민해가며 성령의 입김에 따라 교회공동체는 혼란의 길을 택해야 합니다. 카오스는 창조의 전제 조건이요 배경입니다. 두려움을 넘어 혼란을 건너 새로운 세상을 향하면 참 좋겠습니다.

3. 다름과 함께 살아가는 공존능력을 키워야 한다.

모두가 행복한 평화의 왕국(이사 11,1-9)‘은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는’세상입니다.

어떤 조건으로든 위협받지 않는, 아무도 위험하지 않은 세상입니다. 서로를 훼손하지 않고 공존하는 능력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다른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다양함에 대하여 경탄할 수 있는 것은 신앙의 힘입니다. 어느 하나 똑 같은 것이 없는 피조물의 세계. 그것은 표징입니다. 하느님은 ‘일부러’ 다르게 만들고 다양함을 통해 신비를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다름을 환호할 수 있는 창조영성을 되살려야 합니다. 무지개는 다양한 빛깔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우리도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4. 참된 구원관이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차별을 받고 울고 있는데, 누군가 죽어가고 있는데, 그러한 사회에서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행복론이 아닙니다. 더구나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면서 행복할 수 있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일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구원되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구원관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신자들의 영혼에 내재된 참 행복을, 참된 구원관을 되살려내는 일에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5.서로서로 돌보는 ‘다리 놓기’

저희 수도회에서 1일 피정을 시작으로 인연이 된 가톨릭 성소수자 모임인 <알파오메가>의 대표가 저에게 ‘다리 놓기’라는 책을 선물했습니다. 읽으면서 성령의 부르심을 느꼈습니다. 어떻게든 내가 속한 공동체와 성소수자 모임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방식의 시도를 해 볼 생각입니다.

저는 매일 매일 기도합니다. ‘이 지구가 서로서로 돌보는 세상이 되게 하소서’라고.

하느님은 왜 노아에게 무지개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약속을 하셨을까요.(창세 9,13)

저는 무지개를 좋아하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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