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누더기가 된 군사법원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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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누더기가 된 군사법원 개정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21.09.15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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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가 된 군사법원법 개정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엄마 바보야? 우리나라 그런 나라 아니야.”

 

화제의 드라마 <D.P>에 나오는 대사다. 선임들의 가혹행위에 지쳐 휴가가 끝나고 부대로 복귀하지 않았던 탈영병이 붙잡힌 뒤 어머니와 면회하는 장면. 아들에게 피자와 치킨을 권하며, 가해자들을 재판하고 처벌하고 다시 시작하자며 다독이는 어머니에게 아들이 건넨 건 체념의 말이었다. 극 중의 가해자들은 다른 부대로 전출되었을 뿐, 처벌은 없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헌병대장(군사경찰대장)이 부하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적당히 사건을 묻고 가기로 했다는 대화를 나눈다. 사건 발생 부대의 지휘관이 진급을 앞두고 있다는 말과 함께.

 

드라마 밖 세상에는 더 기가 막힌 그런 나라 아닌 나라가 있다. 부하를 성추행 하여 죽음으로 몰고 간 상관에게 초범이라며 집행유예를 주는 나라(육군 제15사단 여군 대위 성추행 피해 사망 사건). 상급자로부터의 강간 피해를 보고하는 부하를 다시 강간하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지만, 피해자가 두 팔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며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나라(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온 몸이 시퍼런 멍투성이에 갈비뼈가 조각조각 부러진 구타 피해자를 보고 사진까지 찍어 가놓고 부대에서 심폐소생술 훈련을 하다 멍이 들었다.’고 브리핑하는 나라(육군 제28사단 윤 일병 구타·가혹행위 사망 사건). 영화나 드라마에 나올 법한 스토리가 대한민국 군대에선 참혹한 실화요, 역사였다. 모두 채 10년도 지나지 않은 일이다.

 

이 비통한 역사의 중심에 군사법원과 군 수사기관이 있었다. 지휘관이 법원, 검찰, 경찰을 모두 거느리고 수사, 기소, 재판의 권한을 틀어쥐는 군사법체계는 군의 입맛에 따라 숱한 인권침해 사건을 은폐, 조작, 무마하는 주요한 도구로 기능해왔다. 그리고 2021, 마침내 건국 이래 70년을 이어온 군사법원과 군 수사기관의 구태에 종지부가 찍히는가 싶었다. 공군과 해군에서 성추행 피해자가 보호 받지 못하고 연이어 사망하면서 평시 군사법원, 군 수사기관 폐지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케이스탯리서치를 통하여 일반국민 1,000(7.19.~7.22.)과 장병 2,992(7.26~8.5.)을 대상으로 진행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80%, 장병의 70% 이상이 평시 군사법원 및 군 수사기관 폐지, 또는 비군사범죄의 민간 이관을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군에서 기득권을 쥔 장군들도 40%나 그렇게 응답했다. 사람이 죽어야 개혁이 논의되는 것이 서글프지만, 국회에서도 군사법원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졌다. 군사법체계 전반에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국회는 국방부와 타협했다. 지난 831, 국회 본회의에서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개정안은 2심 군사법원을 폐지하되, 군 수사기관과 1심 군사법원은 그대로 유지하는 안이었다. 다만, 성범죄, 피해자가 사망한 범죄, 피의자가 입대 전에 저지른 범죄에 대한 수사, 기소, 재판은 민간으로 이관하게끔 예외를 두었다. 국방부차관이 8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에 출석하여 발언한 바에 따르면 법 개정으로 민간에 이관될 범죄는 전체 사건의 30% 정도로 추산된다. 군사범죄(수사, 재판에 군사적 지식이 요해지는 특수한 군형법 범죄)를 제외한 95%의 사건을 민간으로 이관하는 비군사범죄 민간 이관이 유력하게 검토되었던 것에 비하면 매우 후퇴한 개혁이 되어버린 셈이다.

 

당초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 위원들은 823일 군사법원법 개정안만 집중 토론하기로 했었다. 회의 전부터 이 날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비군사범죄 민간 이관안’(김진표 의원안)으로 논의를 정리하려 한다는 소문이 국회 안팎을 오가고 있었다. 국방부에도 비상이 걸렸던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장관은 822일에 부랴부랴 각 군 참모총장을 다 소환하여 관련 회의를 열었다. 작전 상황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휴일인 일요일에 장관이 긴급회의까지 소집하다니. 군사법체계 개혁이 국방부에 얼마나 민감한 이슈였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 823일 자 국회 회의록을 보면, 여러 의원들이 비군사범죄를 민간으로 모두 이관하는 데 공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법원행정처와 법무부 국회에서 그렇게 바꾸면 따르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렇게 오후 430분에 시작된 회의는 중간에 저녁 식사 시간으로 잠시 휴회했다가, 810분에 재개된다. 이 때 국방부차관이 비군사범죄 민간 이관에 우려를 표하면서 성범죄, 피해자가 사망한 범죄, 군인이 입대하기 전에 저지른 범죄만 민간으로 이관하자는 타협안을 제시한다. 전 날 장관이 참모총장들과 논의한 결과다. 이후 한 시간 가량 이어진 회의에서 여러 의원들이 국방부가 갖고 온 타협안에 비판적 태도를 보였고, 국방부는 이렇게까지 군사법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변변한 설명도 해내지 못했다.

 

차관은 비군사범죄를 민간으로 이관할 수 없는 이유로 군에서 다루는 사건에 음주운전이 많다는 주장을 펼쳤다. 영내에서도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비군사범죄 수사권이 민간으로 이관되면 음주운전 단속을 민간경찰이 영내에 들어와서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괴상한 주장이었다. 군사경찰을 아예 폐지하는 것도 아닌 마당에 음주 단속이야 군이 자체적으로 하면 될 일이다. 음주 단속 때문에 군이 자체적인 수사권을 유지해야 하다니. 궤변에 가까운 주장이 아닐 수 없었다. 군 스스로 독자적 사법체계를 유지할 까닭이 없음을 잘 보여준 셈이다.

 

그렇게 회의는 밤늦도록 이어졌고, 910분 잠시 정회된다. 그런데 1시간 반이 지난 1030분에 재개 된 회의에서 의원들은 갑자기 국방부가 제시한 타협안으로 진행하기로 했다는 말만 남기고 서둘러 회의를 마친다. 법안은 법사위를 넘어 본회의에 상정되었고, 정의당 강은미 의원의 반대토론에도 불구하고 가결되었다. 국민의 80%가 군사법체계 개혁을 주문하고 있는 와중에, 국회는 국방부가 허락한 범위에서 개혁의 고삐를 놓아버렸다.

 

국방부는 대단한 개혁이 된 것처럼 홍보하고 있으나, 개정 법률에는 독소조항은 물론 향후 예상되는 우려지점도 많다. 대표적인 예로, 성범죄, 사망사건 등의 경우에도 국방부장관은 국가안전보장, 군사기밀보호, 기타 이에 준하는 사정이란 모호한 판단 기준을 근거로 군 수사기관, 군사법원으로 관할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장관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군 안에서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피해자가 희망할 시 대법원에 장관의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신청을 할 수 있게 되어있으나, 계급사회인 군대에서 군인인 피해자가 장관의 결정에 정면으로 맞서 쟁송을 벌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예외 조항을 넣은 국방부의 속내는 국회 회의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차관은 823일 회의에서 사망사건이 1년에 한 100여건 되는 데 대부분 자살이 많습니다.”라며, “그래서 아주 단순한, 명백한 자살인 경우는 우리 군에서 할 수도 있고요. 국가안전보장 이런 경우에는 국방부장관이 할 수 있다는 유보조항을 좀 달아서, 매우 명백한 자살이나 사고에 의한 사망사고, 교통사고나 이런 거에 의한 것은 군에서 수사를 하고(후략)”라 말했다. 국방부가 판단하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는 죽음은 국가안전보장을 명목으로 그냥 군에서 수사하겠다는 얘기다. ‘단순하고 명백한 자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지만, 수사도 해보지 않았는데 무슨 수로 사망의 원인을 예단하여 수사 관할을 정한단 말인가. 이런 식이라면 장차 숱한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수사를 민간에서 할 것인지 군에서 할 것인지 다투며 진을 빼는 모습을 목도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민간 경찰과 검찰이 얼마나 의욕적으로 군에서 넘어온 사건을 처리하게 될 지도 미지수다. 2019 군사법원 연감군검찰이 기소하여 재판에 넘겨진 사건은 2019년 기준 2,839건이다. 개정 법률에 따라 민간으로 이관되는 사건이 전체 사건의 30%라 보면, 850건 정도가 민간 경찰과 검찰로 넘어가게 된다. 애매한 숫자다. 이 정도 사건을 수사하자고 경찰이 국가수사본부 차원에서 조직을 신설하여 전담 수사를 진행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지역 경찰들이 수사를 맡아 진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조직은 늘지 않고 부담만 느는 형국인데다가 군의 특수성이 반영된 수사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법에 따르면 민간 경찰과 검찰은 공소 제기 및 유지, 영장 신청 및 집행에 필요한 사항에 대하여 수사 및 영장 집행, 지휘를 군사경찰과 군검찰에게 촉탁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조직과 인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상황에서 민간 수사기관에 부담만 가중시키게 된다면 결국 수사 주체만 민간으로 바뀌고, 실질적 수사는 촉탁을 받은 군사경찰과 군검찰이 그대로 진행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로아미타불인 것이다.

 

아무 것도 내놓지 않으려던 국방부 입장에선 30%나 되는 사건을 민간으로 이관하는 것도 못마땅할 수 있다. 그러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사·기소·재판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던 국방부의 극렬한 저항이 대부분 수용된 상황에서, 결과는 국방부의 판정승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한심한 국회다. 성폭력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여 성폭력 사건과 사망 사건을 민간으로 이관시킨 것인데, 장차 구타, 가혹행위로 물의를 빚는 사건이 생기면 그 땐 폭행죄만 떼서 추가로 민간으로 이전시킬 생각인가. 국방부의 사생결단 속에 원칙 없는 이상한 개혁이 누더기 같은 군사법원법을 만들어냈다.

 

변화와 정의를 이야기하는 엄마에게 우리나라 그런 나라 아니라고 읊조리던 드라마 속 병사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지난 824, 2014년 세상을 떠난 윤 일병의 어머니는 누더기가 된 군사법원법 개정 과정을 지켜보며 또 다시 2014년이 되풀이되는 것 같아 절망스럽습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먼 훗날 아들 옆에 설 때 좀 덜 부끄럽고 싶었다는 어머니의 절규 앞에 그런 나라는 언제쯤 찾아오는가. 국회가 후퇴한 만큼, 또 누군가의 삶이 벼랑 끝으로 뒷걸음질 치게 될까 두려울 뿐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연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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