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저는 삼풍 생존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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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저는 삼풍 생존자 입니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22.05.1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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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에 대한 기록

<저는 삼풍 생존자 입니다>를 읽고 -

배여진(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

 

산만언니푸른숲2021

 

1995629,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엄마와 내가 집에 들어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전화벨이 엄청 울려대기 시작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엄마가 빨리 티비 틀어봐.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대라고 말하는 사이 또 전화벨이 울렸다. 어릴 때 우리 가족은 삼풍백화점 근처에 살고 있었다. 그 날 이후 며칠 간 우리 집은 지인들이 우리 가족의 생사 확인을 위해 걸려오는 전화 벨소리로 가득했다. TV를 켜자 뉴스 속보로 무너진 삼풍백화점이 보였다. 엄마와 나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멍하니 뉴스를 보다 동생 생각이 났다.

 

당시 내 남동생은 툭 하면 태권도를 빼먹고 오락실이나 시원한 삼풍백화점에 가서 놀았었기 때문이다. 태권도장은 전화연결이 안 되고, 부랴부랴 동생이 태권도장에 있나 확인하러 뛰어갔다. 다행히 동생은 태권도장에 있었고, 나는 호기심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삼풍백화점으로 갔다. 불과 2-3일 전에 엄마와 함께 삼풍백화점에 가서 여름 샌들을 샀던 나는, 절반이 무너진 채로 먼지더미가 된 거대한 분홍색 건물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동네 사람들에게 삼풍백화점은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큰 놀이터 같은 곳이었고, 주부들에게는 가까운 마트였다. 그래서였을까. 한 다리 건너 누군가 부상자나 희생자가 있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가보니 같은 반 남학생의 엄마가 삼풍백화점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선생님들은 가족 중에 피해자가 있는지 실태조사를 하기 바빴다. 선생님들은 수업을 진행하긴 했지만 얼이 빠진 모습이었고, 그 분위기는 한동안 지속됐다. 또 다니던 성당 성가대에서 함께 했던 남매의 엄마도 삼풍백화점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한날한시에 엄마를 잃은 이 두 친구들은 얼마 되지 않아 모두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

 

<저는 삼풍생존자 입니다>의 저자 산만언니는 무너진 삼풍백화점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지금까지 버텨낸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실제로는 괜찮지 않았지만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던 세월 동안 마음과 정신이 계속 무너지고 있던 저자.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10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죽음을 선택하고 싶었던 과정, 그리고 죽기 위해 시도를 하고 다시 삶을 살아내고 살게 되는 그 여정들을 가감 없이 풀어냈다.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며 누군가를 위로하기란 참 쉽지 않은 일 일텐데, 저자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악성 글들을 보며 삼풍백화점 생존자로서 삼풍백화점 사건과 세월호 사건이 어떻게 다른지, 어째서 세월호 사건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지 직접 말해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저자는 사건 직후 진상규명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진 삼풍백화점 사건과는 달리 세월호 사건은 관련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고, 진상규명은 지지부진하다는 점을 꼬집는다.

 

또 보상금과 관련해서도 이런 종류의 불행과 맞바꿀 만한 보상금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생각보다 돈이 주는 위로가 오래 가지 않는다’(p195)며 대형참사 보상금을 수령했던 당사자로서 세월호 유족들이 아이들의 죽음을 빌미로 자식 장사를 한다고 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 악마들에게 일침을 날린다. 그리고 또 그들에게 제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거든 차라리 침묵하라’(p197)며 인간이 인간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이자 예의를 알려준다.

 

저자 산만언니는 사회적 참사 희생자들이 흘린 붉은 피로 진보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늦게라도 외양간이 얼추 고쳐진 덕에 우리가 전보다 안전한 세상에서 사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사는 것이니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p131)

 

과거에 있어 가정이라는 것은 정말 쓸데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부터 늘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세월호에 탄 아이들이 강남 8학군 아이들이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이런 생각 말이다. 저자 산만언니 또한 자신은 사회로부터 세월호 유족과 결이 다른 대우를 받으며 살아왔고, 어째서 세월호와 삼풍백화점 두 사건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이토록 다른지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첫째, 삼풍백화점이 갖고 있던 고급스러운 이미지, 둘째, 사건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 셋째, 경제성장률 등의 이유를 드는데 함께 고민해 볼 지점이 많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잔해물이 마저 철거될 때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옆을 지나다닐 때마다 여기에는 도대체 뭐가 생길까, 서로 궁금해 하였는데 5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은 그 자리에 주상복합건물이 생겨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추모비 하나 없이. 결국 사고 현장에 대한 온갖 소문과 괴담에 대한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자본이었다. 요즘 뉴스에는 그 주상복합건물이 자주 나온다. 현직 대통령이 그곳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504명이 죽고, 6명이 실종되고, 937명이 다친 그곳 위에 세워진 건물에서 마치 대통령을 만들어낸 신성한 곳처럼 여겨지는 것이 역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엄마를 잃고 결국 외국으로 이민을 떠난 내 친구의 가족들이 현명한 선택을 한 것 일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기 2-3일 전에 가서 샀던 샌들을 버리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발에 맞지도 않고 헐어버린 그 신발을 신발장에 넣어두고 신발장을 열 때마다 보며 그 때를 떠올렸다. 내가 2-3일 늦게 가서 신발을 샀다면 내가 잔해 속에 묻혀있었을 것이다. 과거에 있어 가정이라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라고 했지만, 이건 쓸데없는 가정이 아니다. 정말 현실이 될 수도 있었던 과거이다. 누구에게나 그렇다. 남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의 일이 되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어느 한 순간이다. 그 순간의 기억이 나와 가족의 평생을 잠식해 나간다. 무너진 삼풍백화점에서 살아 나와 슬프지 않았던 날들이 모두 행복이었다고 고백하기까지 그의 고통과 아픔을 내가 알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다. 그저 그 시간들을 견뎌낸 저자에게 응원을 보낼 뿐이다.

 

나름의 우울을 가슴에 안고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그리고 비극적인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산만언니는 말한다. ‘당신도 살아있으라. 살아 있으면 다 살아진다고. 괜찮다고. 다른 게 기적이 아니라 이 험한 세상에 우리가 그저 살아 있다는 자체가 기적이라고’(p6).

 

곧 삼풍백화점 참사 27주기가 돌아온다. 자본에 밀려 추모비조차 외딴 곳에 있는 그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