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학교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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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교 가는 길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23.09.1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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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길을 꿈꾸며

학교 가는 길을 읽고 -

 

배여진(사단법인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

 

처음으로 발달장애인을 만났을 때가 언제인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장애인 시설로 봉사활동을 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도대체 언제였을까. 학창 시절을 떠올려봤다. 초중고 총 12년의 시간 동안 학교라는 공간에서 발달장애인을 만난 적이 없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 다니던 성당의 중고등부 주일학교 교사생활을 시작하고 발달장애 청소년을 만났다. 그 아이는 혼자 성당에 와서 함께 중고등부 미사를 드리고, 주일학교 교리는 물론, 여름캠프와 겨울피정까지 함께 했다. 돌발 행동이 자주 있진 않았지만 가끔 그런 행동을 보이면 잠시 밖으로 데리고 나와 진정시켰다. 이 학생이 발달장애가 있다고 해서 따로 주어지는 특혜 같은 건 없었다. 여름캠프나 겨울피정에도 따로 부모님이 동행하지 않고 혼자 왔고, 다른 학생들보다 좀 더 일찍 잠을 자게 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주일학교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이 학생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는 등 함께하는 것에 익숙했다. 물론 몇몇 학생들은 여름캠프나 겨울피정에서 이 학생과 같은 조가 되면 경쟁하는 프로그램들에서 불리하다며 불만을 갖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지금 되돌아 생각해보니 이 시간들은 주일학교 통합 교육의 현장이었던 것 같다.

 

2017년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진이 돌아다녔다. 강서구에 특수학교인 서진학교설립을 앞두고 특수학교를 설립해야만 하는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사람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이다. 그 사진을 보고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하면서 며칠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특수학교 서울서진학교는 20203월 개교했다.

 

<학교 가는 길>은 서진학교가 설립되기까지의 여정이 담긴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의 기획과 제작, 배급 과정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위 다큐멘터리의 감독이자 이 책의 작가인 김정인은 99분의 다큐멘터리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책을 통해 풀어낸다.

 

전국의 발달장애인의 수는 몇 명이나 될까? 26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적지 않은 수의 발달장애인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발달장애인을 얼마나, 자주, 어디에서 만나고 있는가. 주변에서는 볼 수 없는데 뉴스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발달장애인과 그의 가족들. 우리는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을 하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부모로서 감당했어야 할 무게와 고충들을 우리는 마치 다 아는 것처럼 슬퍼하고 애도한다. 그런데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에 만들어 질 때나, 혹은 발달장애인들이 어떤 일들을 저질렀을 때 그와 그의 가족들을 향하는 날 선 언어들은 차마 눈 뜨고 읽기 어렵고, 귀를 열어 듣기 고통스러울 정도이다

 

2017년 서진학교 설립을 위해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 무릎을 꿇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전국의 특수학교 재학생의 절반은 학교를 통학하는 시간이 매일 왕복 1~4시간이라고 한다. 스쿨버스를 오래 타고 이동하다 보니 생리 현상 조절이 어려운 학생들은 아예 기저귀를 착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작가 김정인은 이 모든 게 통학 거리만 가까웠더라면 전혀 문제 되지 않았을 것”(p25)이라고 말한다. 통학 거리가 먼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특수학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장애 학생의 교육은 기본적으로 장애-비장애 학생의 통합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통합교육은 장애-비장애 학생의 물리적인 통합만이 진행됐을 뿐, 통합교육환경에서 장애학생들은 지속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헌법에서는 모든 국민이 차별 없이 교육을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지만,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권리일 뿐이다.

 

지적장애를 가진 딸을 둔 엄마 장민희 씨는 이 책에서 비장애 학생들은 수월성 교육을 위해 외고, 과학고, 예술고, 체육고 등 특목고에 진학하기도 하고 직업을 위해 특성화고에 진학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교육 선택권이 있는 반면 장애학생들은 학교 설립 확정 공고가 났어도 주민들의 반대라는 커다란 장벽에 부딪힌다고 말한다.(p56)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곳에 특수학교 대신 외고나 과학고가 설립된다고 했다면 어떤 반응일까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 사회의 축적된 경험들로 인해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그 일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만약 특수학교의 자리에 외고나 과학고가 설립된다고 한다면 그 지역에는 장애인들을 비난하고 혐오하는 현수막이 아니라, 외고 혹은 과학고의 똑똑한 학생들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달릴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위치가 어디쯤에 있는지는 이 간단한 가정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한편 이 책의 작가이자 감독인 김정인은 서진학교의 설립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에서 끝내지 않는다.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 지역이 갖고 있는 상처와 차별의 역사를 드러낸다. 김정인의 말마따나 을과 을의 싸움을 우리는 목도해야 했다.

 

이 책에서는 더 나아가 장애인의 노동문제(일자리)와 자립생활에도 눈길을 돌린다. 장애인의 교육-노동(일자리)-자립생활은 하나의 싸이클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돈은 못 벌어도 좋으니 직업을 갖길 바란다. 일을 하지 않으면 다시 세상과 단절이 될 것이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작가 김정인은 장애인은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누군가의 잘못이라기보다 한국 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p113)라고 꼬집는다. 보통의 부모들은 자녀가 나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길 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녀가 자신들보다 하루 일찍 죽기를 바란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원이다. 만약 장애인들이 부모의 부재 시에도 국가의 책임하에 이 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진다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원은 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학교 가는 길>은 서진학교의 설립 과정을 통해 한국사회의 모순과 지역 곳곳에 숨겨져 있는 차별의 역사, 소수자들을 외면하는 인간의 민낯 등을 보여준다. 통상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그렇듯이 이 책 또한 답을 내놓기보다 책을 읽는 동안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들을 향해 계속해서 질문을 내던지는 것 같다.

 

최근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유명 만화가가 학교 교사에게 갑질을 했다는 것에 분노하는 글들을 많이 봤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렇게 분노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장애인들이 교육을 받는 현실에 대해서는 왜 분노하지 않는가. 아니, 그 현실은 제대로 알고는 있는걸까. 아니, 알고는 싶을까. 유명 만화가 부부의 행동을 감싸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장애인들의 교육권이나 노동권 등 그들의 권리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그들이 사회적인 문제를 저질렀을 때 그들을 향해 향하는 과도하게 날이 선 말들이 칼이 되어 그들과 그의 가족들을 찔러대는 것은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 하는 의문이다.

 

서진학교가 설립되는 여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투쟁은 서진학교가 개교했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또다른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아 어디선가 싸워나갈 것이다. 그 길목에 우리는 그늘을 내어주는 커다란 나무로, 앉아서 쉴 수 있는 그루터기로, 마른 목 적실 수 있는 샘물로, 주린 배 채워줄 수 있는 열매로, 어두운 길 밝혀주는 달빛으로 함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유토피아를 만들자는 게 아닙니다. 단지 대다수 당신에게 당연히 주어진 보통의 삶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도 대수롭지 않게 경험하면 좋겠습니다. 평범한 하루하루, 그뿐입니다.” (p13,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