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법]한명씩...집시법 11조를 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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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법]한명씩...집시법 11조를 뚫는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1.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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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시위' 확산…집시법 개정 공론화 계기될 듯
▲ 지난 1월 17일 미 대사관 앞에서 기습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문정현 신부. 당황한 경찰은 문신부를 겹겹이 둘러싸고 한국통신 건물 앞까지 강제로 끌어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1인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불평등한 SOFA개정 국민행동(상임대표 문정현 신부·이하 국민행동)은 2월 5일부터 28일까지 한달 동안 광화문 미 대사관 정문 앞에서 주말과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두 시간씩 1인 시위를 벌인다. 또한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삼성 종로타워 국세청 앞에서 '100일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참여연대(공동대표 박상증)는 시위시작 29일째인 2월 5일부터 시위 인원을 1명에서 2명으로 늘이기로 결정했다.

참여연대 조세개혁팀 홍일표 간사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시위참여자를 모집한 결과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신청해서 하루 시위자를 2명으로 늘였다"며, "100인 100일 시위를 계획했는데 100인이 훨씬 넘게 참여하는 시위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1인 시위가 확산되자 경찰 측도 난감해하고 있다. 관할경찰서인 종로경찰서 경비과 관계자는 "1인 시위는 집시법상 시위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사실 난감하다"며, "본청 등 상급기관에서 대책을 세우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행동 측은 "계획된 1인 시위에 대해 경찰에서도 시끄럽게만 하지 않는다면 막지는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집시법으로 집시법을 뚫는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제11조>
누구든지 다음 각호에 규정된 청사 또는 저택의 경계지점으로부터 1백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1. 국회의사당, 각급법원, 헌법재판소, 국내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2. 대통령관저, 국회의장공관, 대법원장공관, 헌법재판소장공관
3. 국무총리공관, 국내주재 외국의 외교사절의 숙소. 다만, 행진의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이 조항 때문에 그동안 미 대사관 앞은 '집회 무풍지대'였다. 노근리 사건, 매향리 사건,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 SOFA 개정문제 등으로 인해 미국에 대한 규탄 여론이 어느 때보다 높았던 지난해에도 미 대사관 근방 100m 이내에서는 집회를 열 수 없었다. 여러 단체에서 무수히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월등히 수가 많은 경찰의 실력저지에 부딪혀 부근만 맴돌아야했다.

하지만 경찰 저지선을 뚫고 미 대사관 앞까지 가는 데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명이면 가능했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제2조 2항>
'시위'라 함은 다수인이 공동목적을 가지고 도로·광장·공원 등 공중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진행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 다수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를 말한다.

다수인. 몇 명 이상을 다수인으로 보느냐에 따라 '시위의 2인설'과 '시위의 3인설'이 논란 중이지만 단 한 명은 분명히 다수인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혼자 피켓을 들고서 미 대사관 앞에서 구호를 외쳐도 집시법의 규제를 받지 않게 된다. 집시법 제2조 2항으로 집시법 제11조를 뚫는 셈이다.

11조뿐 아니다. 1인 시위는 사전에 관할 경찰서에 집회신고서를 낼 필요도 없으며(제6조) 해가 뜨기 전이든 해가 진 후든 언제든지 할 수 있다(제10조). 그야말로 '자유롭게'인 것이다. 건국대 법학과 손동권 교수는 "1인 시위는 집시법으로 규율할 수도 없고 공공의 안정을 해칠 위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규율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방송통신대 법학과 곽노현 교수는 "한 명이 하는 것은 의사표현의 자유라고 봐야지 집시법상 시위라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 "특별한 대책이 없다, 다만 조용히…"

국민행동이 2월 5일부터 미 대사관 앞에서 벌이는 1인 시위는 이제까지와는 의미가 좀 다르다. 1인 시위는 국세청에 대한 항의 방법으로 지난해 12월 4일 처음 등장했다. 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 윤종훈 회계사는 "국세청이 있는 삼성 종로타워 2층에는 온두라스 대사관이 있어서 방법이 없나 집시법을 뒤적이다 1인 시위를 생각해냈다"고 말했다.

이후 12월 8일 스탑삼성 소속 13명은 평소에는 엘살바도르 대사관과 싱가폴 대사관에 막힌 서울 중구 삼성본관 앞에서 피켓을 들고 20m씩 떨어져서 지나는 '응용된 1인 시위'를 펼쳤다.

참여연대와 스탑삼성의 1인시위는 외국 대사관 100m 내에서 했지만 규탄의 대상이 외국 대사관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결정된 국민행동의 1인 시위는 외국 대사관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그것도 가장 민감한 미국 대사관이다. 현재 국민행동은 지난해 말 한미간에 개정합의한 SOFA(한미행정협정)가 여전히 미흡하다며 국회가 동의비준하지 말고 재협상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1인 시위가 새로운 시위 유형으로 확산되자 경찰 측에서는 난감해하고 있다. 관할서인 종로경찰서 경비과 관계자는 1인 시위가 확산되는 것에 대해 "현재로서는 특별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그 관계자는 "본청 등 상급기관에서 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본청 정보과 관계자는 "1인 시위가 생기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면서 "1인 시위는 새로운 유형으로서 집시법의 규제 대상이 안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별한 대책이 세워진 것이 없다면서 다만 "행위의 양태에 따라서 도로교통법이나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등 다른 법률로 규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측은 현재 구호를 외치는 등 침묵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1인 시위에 비친 집시법 11조

어느 사회나 욕구를 불합리하게 억누르면 반드시 분출구를 찾게 돼 있다. 사실 1인 시위는 집시법 11조가 만들어낸 '고육책'의 성격이 짙다. 현행 집시법 11조는 각종 사회단체들로부터 지탄받는 '악법' 중 하나로서 학자들 사이에도 많은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김도형 변호사는 집시법 11조가 "금지 대상의 장소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설정되어 있고 특정한 집회·시위의 방법의 제한이 아닌 일체의 집회·시위가 금지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건국대 법학과 손동권 교수는 "예외조항은 두지 않은 채 무조건 100m를 규정해 놨다는 데서 법조문 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기가 열리지 않는 국회와 개정하지 않은 법원 등에서도 똑같이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미 몇 해 전부터 집시법 11조는 악용되고 있다. 서울 도심 일부 건물주들, 특히 대기업들은 집회를 원천봉쇄할 목적으로 작은 대사관을 건물에 입주시켜 거대한 '집회 금지 블록'을 형성한 상태다. 너무 과하면 넘치는 법. 지나친 대사관 유치로 도심 대규모 집회의 행진에는 100m 접근금지 조항이 무시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집시법 11조는 함부로 막을 수 없는 대규모집회에서는 무시되고 상대적으로 약자인 작은 단체나 소규모 집회에만 시퍼렇게 적용되고 있다. '집회는 정당성과 내용·평화적 방식보다는 무조건 머리수'라는 왜곡된 의식을 집시법이 부추기는 셈이다.

현재 집시법 11조는 전국연합과 민주노총에 의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소송 중이다. 1인 시위의 확산이 이 소송에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앞으로 1인 시위가 펼쳐지는 곳은 이제까지 '당연히 집회와 시위가 금지되는 장소'라는 인식에서 조금은 다르게, 사람들에게 새롭게 보여질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현 집시법은 회사의 운동장, 대학캠퍼스 등 '천장이 없거나 사방이 폐쇄되지 않은 장소'면 무조건 옥외집회로 규정,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는 점(제2조 1항),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협'이라는 모호한 규정으로 인해 집회의 가부결정이 관할경찰서에 과도하게 맡겨진 점(제5조) 등이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도형 변호사는 "이제까지 우리는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경우 국회가 아닌 국민은행 건물이 당연히 국회 앞인 줄 알고 모였다, 행진 코스를 잡을 때에도 근처에 외국대사관이 위치해 있는 거리는 당연히 안되는 줄 알았다"면서, 집시법에 대한 무대응을 꼬집었다. 그는 집시법 개정 논의 활성화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오마이뉴스 이병한 기자 han@ohm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