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교수에 대한 1심 판결에 관한 의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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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교수에 대한 1심 판결에 관한 의견서
  • 안주리
  • 승인 2004.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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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0일 마침내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졌다. 처음부터 우려했던 바대로 재판부는 남과 북을 포함하는 한국사회에 대해 민족적 애정과 비판의식을 잃지 않았던 사회과학자의 학술활동에 대해 7년이라는 중형으로 대응하였다. 이미 시대적 소명을 다한 냉전시대의 낡은 유물로 평가되는 국가보안법에 기초해 내려진 이번 판결에 대해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는 법리상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이것은 비단 송교수 개인의 문제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건전하고 비판적인 학문활동의 자유가 사법부를 포함한 국가기관의 편견으로 인해 왜곡되고 방해받는 사정을 우려함에 따른 것이다.

첫째,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학문활동의 자유는 어떠한 이유로도 그 본질적인 내용이 침해받을 수 없다. 학문의 자유는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 가운데 하나로서 그 내용으로 연구의 자유와 연구결과 발표의 자유, 교수의 자유 및 연구를 위한 결사의 자유를 포함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연구의 자유는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자유로서 어떠한 형태로도 방해받을 수 없는 절대적 자유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의 자유는 연구결과 발표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한 무용한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헌법을 포함한 우리의 전체 법체계가 상정하고 있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상은 자신의 사상 및 연구의 결과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토론하는 자유롭고 비판적인 문화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양심실현의 자유가 없는 양심의 자유가 공허한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그러므로 학자의 연구결과 발표가 현 사회질서를 구체적으로 위협한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것은 연구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학문 자유의 본질적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송교수가 이미 공개된 학술지나 시사잡지, 저서 등을 통해 발표한 내용을 기초로 유죄판단을 내리고 있다. 이것은 연구결과 발표의 자유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또 다른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도 반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실질적으로 해악을 야기하는 명백한 위험이 없는 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확립된 원칙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되고 이것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수렴되는 것을 체제의 기본원리로 하고 있다. 특히 학문적 성과는 학문의 세계에서 상호 토론을 통해 검증되는 것이 문명사회의 확립된 원칙이다. 나아가 이러한 내용들은 이미 수년 전에 공개적으로 발표된 것으로서 이것이 지금에 와서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구체적 위험을 가지고 있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새삼 사법적으로 문제삼기는 어려운 성격의 것들이다.

더욱이 재판부는 송교수의 연구내용 자체에 대해 이것이 남한 체제를 의도적으로 비판하고 폄하하면서 상대적으로 북에 대해서는 옹호하고 찬양한다는 등의 내용에 관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법부의 권한을 넘어서는 월권적인 것이며, 절대적 자유인 연구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이다. 학문이나 예술을 포함한 사상의 자유는 그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정신적 기본권에 대해 확립된 이론이다. 이와 같은 사법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연구 내용에 대해서 까지 법적 판단을 감행함으로써 국민의 사상과 정신적 영역에 개입하려하는 전근대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송교수와 같은 학문영역에 종사하는 집단으로서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도대체 재판부가 적시하는 ‘북한에 이롭고 남한에 해로운’ 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학문과 사상을 ‘적에게는 이롭고 우리에게는 해로운’ 이분법적 방식으로 나눌 수 있는가? 재판부는 이번 송교수 판결을 통하여 스스로 “국가보안법은 자유민주질서 수호 및 국가안전에 위해를 준다고 판단될 때만 최소한의 범위에서 적용되어야한다”고 밝히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본질적으로 유린하는 결과적 상황까지 연출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사법부의 자의적인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 또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아래 아직도 자유민주주의 분장체제를 합리화하는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이러한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둘째, 학문활동의 영역을 제외한 부문에서 송교수가 수차례 북한을 방문하고 북의 인사들과 접촉하는 등의 친북적 활동을 해왔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그 사실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이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사법부의 공정하고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는 바이지만, 위의 학문자유와 관련하여 다음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송교수의 북한 왕래 또는 북한 인사들과의 접촉이 그의 학문활동을 목적으로 필요한 범위에 한정된 것이었다면 이 또한 학문의 자유의 한 부분으로 보아 넓게 인정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송교수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가 북한을 방문하고 북의 인사들을 만난 것은 북한의 사회 그리고 사상을 객관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자신의 사회학적 방법론인 ‘내재적 비판론’에 따르면 그 사회의 내부적인 시각이나 분위기를 직접 경험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연구를 위한 결사의 자유로서 학문자유의 일환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현존하는 실정법에 반하고 처벌된다고 하기 위해서는 위의 일반적인 학문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현 사회질서를 구체적으로 위협한다는 특별한 사정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보면 송교수의 대북활동이 우리 사회에 대해 이렇게 높은 정도로 위험한 수준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의 북한 방문은 주 목적이 학문활동을 위한 것이었으며, 북한 인사와의 접촉이나 교류도 이를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연구결과를 송교수는 남한의 공개적 잡지와 저서를 통해 발표하였으며, 이것은 이미 우리의 지식인 사회에서 널리 공유된 바가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이미 공개되고 널리 알려진 학자의 연구결과 발표를 이유로 형벌, 그것도 중형을 선고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에 대한 침해임은 물론 우리 법질서의 근본원리인 자유민주주의 체제와도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끝으로 지금까지 여러 차례 반복되어 온 국가보안법 자체에 대한 비판을 다시 한 번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강조한 학문의 자유에 대한 위협을 포함하여 국민의 건전한 표현의 자유, 나아가 사상의 자유를 규제하는 것으로서 국가보안법은 이미 지나가 버린 냉전시대의 유물임이 그동안 여러 차례 지적되었다. 이미 우리는 북을 적대와 정복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평화와 동맹의 민족적 공동체로서 인식하고 있고 또 이에 기반한 정부의 정책도 확고하게 자리잡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은 여전히 북한을 남한 사회를 위협하는 반국가단체의 하나로 전제하고 그에 동조하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할 수 없다는 냉전적 대결의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법원의 자세는 정부의 평화정책과 일치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헌법상의 평화통일 원리에도 반하는 것이다. 그 동안 수많은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하였던 국가보안법은 이제 역사의 후면으로 퇴장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언제쯤 법원은 이러한 성숙한 국민의식을 반영하는 현명한 판단을 내려줄 것인가.

이번 사건을 두고 송교수의 석방과 무죄판결을 기대하는 각종의 성명서가 여러 분야의 인사들로부터, 또 해외에서도 발표된 바 있다. 송교수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학자이다. 이러한 사람에 대해 그의 민족적 학문활동을 이유로 유죄의 중형판결을 내리는 것은 우리 국민의 정신적 성숙도를 평가절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치적, 이념적 편향이 지나치다는 것을 외부에 확인시켜 주는 것일 따름이다. 북한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며 장래의 공존을 모색하는 평화와 통일의 길을 찾자는 주장에 대해 대한민국 사법부는 이제 포용의 뜻을 베풀 때도 되지 않았을까.


2004. 4. 7
민주주의법학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