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문사]故 곽형근 이경의 죽음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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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문사]故 곽형근 이경의 죽음을 바라보며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1.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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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7일 오전 11시경 용산서에서 근무하던 곽형근 이경이 내무반에서 추락사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다. 최초의 언론발표는 "내성적인 성격의 곽 이경이 전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6월 19일 천주교인권위에 가족들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이 왔다. 인권위에서는 연락을 받고 즉시 영안실이 마련되어 있는 용산 중앙대병원으로 달려갔고 가족들과 함께 사건의 동기와 사망경위 그리고 향후 사건의 추이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이 과정에서 인권위는 곽 이경 사망사건이 최소한 언론보도처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자살은 아니며 곽 이경이 살아온 삶과 주변생활여건에서 자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6월 20일 서울대병원에서 부검이 진행되었다. 사망원인을 정확히 밝혀내기 위한 절차였다. 부검의 결과 사망원인은 추락사였지만 부검을 통해 타살인지, 자살인지, 사고사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 부검집도의 이윤성교수의 의견이었다. 왜 추락하게 되었는지는 부검을 통해 밝힐 수 없다는 것이나 다만 추락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사망동기나 사망경위에 대해서는 경찰 수사팀이 밝혀내야 하며 수사결과와 부검결과를 종합하여 최종결론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용산서 수사팀은 이미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부검을 수사종결을 위한 요식절차로 처리하고자 하는 잘못된 행태를 보였다. 부검도 채 끝나기 전 부검현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가슴을 졸이던 사망자의 아버님을 찾아가 아들의 유품을 받기 위해서는 서명이 필요하다며 도장을 받고 유품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유품인도를 위한 서류는 사체인도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고 도장을 찍은 후 곧바로 '사체인도확인서'라는 서류를 전달하였다. '사체인도확인서'에는 "변사체에 대하여 검시한 바, 타살의 혐의 없으므로 검사 전00의 지휘에 의하여 사체를 유족에 인도함을 확인함"이라고 되어있었다. 수사가 진행 중에 있었고 사망동기나 사망경위가 전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타살의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게다가 '사체인도 확인서'는 부검도 실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검 이전에 이미 만들어진 것으로 후에 형사반장을 통해 밝혀졌다.


이를 통해 볼 때 용산서 수사팀은 사건을 은폐, 축소하기에 급급했으며 조속히 종결하기에만 관심이 있을 뿐 객관적이고 투명한 수사를 통해 진상규명을 하여 유가족의 의혹이나 궁금증을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판단 하에 인권위와 유가족은 경찰청과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팀 교체를 강력히 요구하였다. 용산서에서 발생한 사건을 용산서에서 수사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수사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보장받기 어려운 것이었으며 용산서 수사팀이 보여준 일련의 행위는 유가족에게 실망과 분노를 주었을 뿐이었다.


6월 26일 용산서에서 서울지방청으로 수사팀이 교체되었다. 서울지방청의 수사팀이 수사에 착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7월 1일 용산서 고참병 2명에 대해 구타행위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며 3명은 징계위에 회부되었다. 이를 통해 용산경찰서가 "곽 이경 등 신참들의 부대적응을 위해 보름동안 고참들과 격리시키기 때문에 구타행위 등이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던 것은 거짓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서울경찰청에서 "경찰서 내 의경 내무반에서의 구타·가혹행위를 막지 못해 사고가 나도록 한 점과 곽 이경 추락사 이후 사건의 진상을 제때 정확히 밝히지 못한데 대한 지휘책임을 물어 경찰서장과 중대장 등 지휘책임자들을 문책할 방침"이라고 밝힌 후 용산경찰서장이 전보발령되고 중대장이 직위해제 되었다.

상황은 급박하게 전개되어 갔으나 곽 이경의 사망동기나 사망경위에 대한 수사는 별 진전이 없었다. 도리어 곽 이경 사망의 동기나 경위를 밝히는데는 직접적 관련이 별로 없는 구타사고가 마치 사건의 본질인 것처럼 대두되었다. 언론은 또다시 곽 이경 사건은 자살이라고 결론지어 보도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사건의 진실을 밝힌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최근 '추적60분'에서는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청송교도소에서 발생한 '박영두 사건'에 대해 방영하였다. 수많은 조사인력과 객관적 자료들에 입각하여 마침내 진상을 규명하였으나 가해자나 가해자가 몸담고 있는 국가공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에서는 도리어 이제와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며 도리어 자신들이 피해자이며 피해를 당하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청년은 누구나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본인의 의사가 아니라 징병제도에 의해 누구나 군대에 가야 하는 것이다. 소위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에 간 아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을 때 유가족의 마음은 말 그대로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진다고 한다. 이러한 죽음에 대해 국가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유가족이 주장하는 '국가책임론'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이러한 억울한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법적 제도적 개선이 가능해진다.

[교회와인권 65호]남상덕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