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경계한다
상태바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경계한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1.08.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는 일본 우익진영의 교과서 왜곡 파동으로 그 어느 때 보다도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경계하자는 목소리가 드높다. 그러나, 예의 그 목소리는 8·15를 지나면서 역시 잦아들고 마는 우리의 현실을 접하면서 '익숙한' 실망을 다시 한번 맛보게 된다.


일본의 군국주의 경향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1945년 종전이후 일본은 단 한번도 군국주의화를 포기해 본 적이 없다. 자신들로서는 치욕적인 패전을 곱씹으면서 과거의 영광을 부활시키려는 그들의 노력은 집요하다고 할 수 있다. 8·15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은 20년 후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확히 20년 후인 1965년 일본은 한국의 친일파들의 도움으로 화려하게 이 땅에 돌아오지 않았던가. 바로 [한·일 협정]이라는 면죄부를 손에 쥐고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대응(정부나 민간을 모두 포함해서)은 소극적이다 못해 이벤트에만 치중하는 어처구니없는 면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초등학교시절 한때 어느 친구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받은 적이 있다. "현재 일본에는 군인이 몇 명 인줄 아니?" 10만, 100만 1000만 명 등의 답을 내놓았지만 그 친구는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가로 지으면서 내 뱉는 한마디는 이렇다. "정답은 빵명이야. 일본에는 자위대는 있어도 그것은 군대가 아니야. 그래서, 일본에는 군인은 단 한 명도 없어." 그 친구의 유식함에 나는 스스로 위축되고 말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우리 국민들 전체가 아마도 그 때 그 친구와 같은 인식을 은연중에 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현재 일본은 우리 안에서 굶주린 채로 갇혀있는 맹수와도 같다고나 할까? 누군가가 우리의 문만 열어준다면 금방이라도 뛰쳐나가 누구라도 헤칠 수 있는 상황이다. 누가 뭐라 해도 현재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의 군사 대국이다.


단지 일본의 군사대국이라는 것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일본의 그 막강한 군사력을 제어할 만한 내부적인 장치가 하나 둘 풀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형식적으로나마 제국주의 일본의 상징으로 여겨져 양심적인 일본 내 시민단체들에 의해서 거부되어 온 '히노마루'(일장기)와 '기미가요'(천황을 찬양하는 내용의 일본국가)가 법제화되었고,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는 교과서가 세상에 선을 보였다. 다음 단계는 일본의 전쟁 참여를 영구히 부정한 평화헌법의 개정이 될 것임을 이제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래 없는 경제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이미 주변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신사를 참배한 대담함을 보여주어 그의 높은 인기에 탄력을 실었다.


이제 이러한 일련의 드러난 일본의 군국주의 시나리오를 접하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현재 논의가 중단되긴 했지만 우리는 여기서 북-일간의 수교 논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양국이 서로 내세운 수교의 조건이 일본측은 대북한 경제협력이었고, 북한은 수교의 제1의 조건으로 '식민지 과거사 청산'이었다.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이 일본과의 수교 조건으로 '식민지 과거사 청산'을 들고 나온 것은 단순히 북한 특유의 강한 민족주의적 경향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번 더 생각해 본다면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막아내려는 포석을 읽을 수 있다.


실제로 독일, 이탈리아와 달리 2차대전의 전범국이면서도 전후처리가 소홀했던 일본의 경우를 전세계에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에 제동으로 작용했었다. 전후 처리가 불철저했던 전범국 일본을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포함한다는 것은 2차 대전을 부정하고 있는 유엔으로서는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될 뿐만이 아니라 유엔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며 일본의 군국화를 조장 내지는 방조하고 있는 미국에게도 대단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할 일이 조금은 더 명확해 보인다.
먼저, 바로 제국주의 일본의 협력자 즉 '친일파 문제'를 공론의 장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친일파 문제는 우리만의 특수한 문제가 결코 아니다. 바로 전세계 양심들이 동의할 수 있는 안티 파시즘의 문제이다. 굳이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처벌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친일파는 전세계 특히 서구의 시각에서 보면 일본제국주의자와 동일한 전범들인 것이다. 이러한 전범들을 우리 스스로 단 한사람도 처벌하지 못하면서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난할 수 는 없다. 결국 한국에서 친일문제가 공론화되고 북한이 수교과정에서 일본의 식민지 과거사 문제 제기할 때, 일본의 군사 팽창은 부담을 가지게 될 것이다.


둘째로, 이번 역사 교과서 대응에서도 확인되었듯이 미약하지만 일본 내에 양심적인 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지속적으로 일본 현지에서 일본의 우경화를 감시하고 막아낼 수 있도록 연대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사실 전후 일본은 국내 저항세력이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해왔다.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말이다.


셋째로, 일본은 '유사시' 자위대를 주변국에 파견할 수 있는 길을 이미 터놓은 상태이다. 바로 미일간 신가이드라인이 바로 그것이다. '유사시'라는 것이 대단히 자의적이지만 그것이 북한의 위협이라는 것은 이미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남북한 긴장관계는 오히려 일본의 바라는 바일 것이다. 결국, 남북한 간의 긴장관계를 최대한 완화시키려는 노력이 또한 절실하다. 남북한의 긴장은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자위대를 출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명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그것은 역사 속의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명언이 될 것이다.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비난하기에 앞서 과연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 어쩌면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교회와인권 66호]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