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지기]아직 진행형입니다.
상태바
[인권지기]아직 진행형입니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1.08.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1999년부터 매년 여름 4주 동안 사법연수생들은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사회봉사연수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7월 9일부터 8월 2일까지 사회봉사연수를 하신 24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법률상담봉사활동으로 천주교인권위원회에 올 때에는 이 곳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어렴풋이나마 재소자 특히 사형수들을 만날 기회가 있지 않을까,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보지는 않을까 생각한 정도였다. 실제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사법연수원생들의 법률상담봉사활동으로 마련한 프로그램에는 교정사목 부문이 있었지만, 정작 내가 속한 곳은 '이도행을 생각하는 모임'이었다.


법률상담봉사활동 기간 동안 한 일은 치과의사모녀살해사건으로 알려진 이도행씨 사건 기록을 살펴보고 법의학과 검시제도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몇몇 사람들을 만나 검시제도에 대한 짤막한 보고서 한 편을 쓴 것이 전부이다. 그나마도 아흐레라는 기간이 짧아 겨우 무엇이 왜 문제인지 이해할 때쯤 되니까 봉사활동기간이 다 끝나버렸던 것 같다. '봉사'는 안하고 공부만 한 셈이다. 참가한 사법연수원생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려 경험이 일천한 필자가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한 법률상담봉사활동에 대한 소감을 말한다는 게 부끄러운 까닭이다. 하여 차라리 천주교인권위원회와의 만남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게 나을 듯 하다.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면은 어쩌면 점차 인기가 없어져 가는 가치인 인권, 그 자체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법률상담봉사활동 기간 중에 법의학과 검시제도에 대해 고민하는 모임에 가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인권위원회 사람들 외에도 이도행씨와 김훈 중위의 동생이 있었다. 같은 이슈와 관련되었다고는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서로 다른 입장에 놓인 사람들이 함께 모여 무엇이 왜 문제인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그 목표 자체에 대한 논의를 거부하거나 반대로 구체적인 실천에는 관심이 없고 원론적인 차원의 논의만을 거듭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무엇이 왜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하여도 합리적이고 개방적으로 논의하려고 하고 동시에 믿음을 갖고 구체적인 활동을 해나가는 것이 신선했다.


아울러 관심을 끈 것은 짧은 기간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기 어려운 일들을 해나가는 면이었다. 처음 가톨릭회관에서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실을 찾고서 꼭 대학 동아리 방 같다며 웃었을 때, 난 인력이나 재정적 지원은 고사하고 여론의 관심이나 사회 분위기에도 편승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붙잡고 자기 일처럼 쫓아다니는 어떤 열정과 만난 셈이다.


그래서 무엇을 배웠노라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노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천주교인권위원회와의, 인권위원회 사람들과의 만남이 즐거웠다는 것, 그들이 아름답게 느껴졌다는 것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런 만남이, 마주침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무엇을 만들어 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또한 천주교인권위원회에 왔던 다른 사법연수원생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도 나로선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만남이, 마주침이 법률상담봉사활동 기간이 끝나면서 같이 끝나지는 않은 것 같다는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상은 아직 진행형이다.

[교회와인권 66호] 이동진 32기 사법연수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