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가 내 아들을 두 번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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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내 아들을 두 번 죽였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1.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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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가협, 군의문사 특조단 해체요구 무기한 농성 돌입
초가을 햇살이 따갑게 얼굴을 내리쬐는 18일 오후, "군에서 의문사한 아들의 사인이라도 제대로 밝혀달라"고 국방부 앞에서 20여 명의 아버지·어머니들이 절절히 외치고 있다.

△군의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군대내 사망사고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촉구하며 '군의문사 진상규명과 군폭력 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회장 김봉임, 아래 군가협) 소속 유가족들이 17일부터 무기한 농성에 돌입한 것.

아들의 장례식 4년째 거부

그곳에서 아들의 장례식을 4년째 치루지 않으면서 그 의문에 쌓인 죽임에 항의하고 있는 김기순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자식의 죽음을 접한 부모들이 대부분 그렇듯 김 어머니 도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98년 8월 10일 오후 6시 김 어머니는 진해에 정박 중인 2함대로부터 아들 김태균(당시 해군 중위 보급장교) 씨가 귀대하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9월 8일, 김 씨는 경상북도 김천 직지사 뒷산에서 목이 맨 상태로 온몸이 썩은 채 발견됐다.
김 씨가 중위로 진급하고 근무지를 3함대에서 2함대로 옮긴 지 40일만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부대에서는 '김 씨가 함대 생활에 적응을 못해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 어머니는 아들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시 사망한 김 씨의 앞니가 5개나 부러진 사실을 비롯 그의 죽음에 많은 의혹이 있었기 때문. 결국 김 어머니는 장례식도 치르지 않고 아들의 주검을 김천 의료원에 지금까지 안치해 둔 채, 의문의 죽음을 규명하고자 국방부 앞까지 오게 됐다.

군의문사, 대부분 '자살' 처리

이번 국방부 앞 농성단 단장 주종우 아버지는 "우리들의 울분을 가장 크게 터트리는 것은 군대가 아들의 죽음을 은폐·조작했다는 것"이라며, "군 지휘관들은 처벌을 안 받기 위해 우리 자식들을 자살자로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군가협 소속 아버지·어머니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의문투성이다.

윤옥순 어머니의 아들 홍완표(당시 21사단 65연대 이병) 씨는 90년 4월 13일 코를 제외 한 안면부 전체가 크게 손상당한 상태로 두 눈을 뜬 채 죽었다. 단국대 독어독문과 3학년 재학중 휴학하고 군에 입대한 지 5개월도 안 돼 일어난 일. 하지만 해당 군부대가 홍씨 사망사건에 대해 실시한 수사 끝에 내린 결론은 '자살'이었다.

이동애 어머니의 아들 김문환(당시 12사단 일병) 씨가 죽은 사건은 올해 3월 14일에 발생 했다. 김씨가 군무하던 부대는 '철책근무를 서고 있던 김 씨가 총기로 자살했다'고 결론 내렸지만, 이 어머니는 당시 김 씨의 사체나 입던 옷에 남은 핏자국이 총기로 자살한 것 치고는 너무나 깨끗했다고 주장했다.

특별조사단, 군의문사 규명 못해

군대내 사망사고와 관련하여 여론이 악화되자, 지난 99년 9월 국방부는 사상 처음으로 군의문사 및 군폭력 사건에 대한 육·해·공 합동 특별조사단을 구성했다. 당시 특별조 사단은 총 166건의 민원을 접수했고, 지금까지 1백건이 넘는 사건에 대해 재조사를 실시 했다.

그러나 접수된 민원 중 73%에 해당하는 사건들은 타살의혹이 제기되거나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사건들인데, 특별조사단은 이 가운데 단 한 건도 '타살' 의혹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군가협 소속 아버지·어머니들은 국방부 앞에서 무기한 농성을 하며, 특별조사단의 해체까지 요구하고 나선 것.

천주교인권위 안원영 사무차장은 "군대내 사망사고는 사망자 해당 부대의 헌병대가 수사 를 하기 때문에 지휘관과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군대내 사망사건이 '의문사' 사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했다. 안 사무차장은 이어 "특별조사단의 재조사도 애초 수사결과를 확인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며 허울뿐인 특별조사단을 비난했다.

한편 군대내 자살이 자살자만의 책임인가에 대해서, 안 사무차장은 "이들이 죽은 원인이 부대 내에 존재한다면 자살자도 유공자로 보아야 한다"며 군대내 사망사고에 대한 국가의 책임 강화를 주장했다.

국가가 유족들에게 화답해야

취재 도중 한 어머니가 농성장 주위를 지키고 있는 전경을 향해 소리소리 지르며 울분을 토하던 목소리가 취재가 끝난 후에도 귓가를 맴돈다. 조금이라도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자 기자의 소매를 붙들고 말을 이으려는 아버지·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군가협은 오는 20일 오전 11시 국방부 앞에서 '국가책임론 제기 및 유공자 등록 일괄 신청에 관한 기자회견'을 갖고, 22일 오후 3시에는 결의대회를 가진다. 이들에게 울분과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한, 이번 농성은 결코 끝나지 않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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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