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사건의 특별재심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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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사건의 특별재심의 필요성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1.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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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칼럼]문재인 변호사(본회 위원)
천주교 조작간첩 진상규명대책위원회가 대표적인 조작 사례로 꼽고 있는 '재일교포 관련 신씨 일가 간첩사건'의 신귀영 선생은 징역 15년형을 복역 중이던 1994년 11월 16일 부산지법에 재심청구를 하였다.

그에 앞서 대책위는 국내는 물론 일본에 거주하는 사건 관계자들을 만나 증언을 청취하는 등 장기간의 광범위한 진상조사활동을 통해 이 사건이 조작되었음을 확신하게 되었고, 그 조사자료들이 법원에 제출되었다.

그러한 노력이 헛되지 않아 부산지법은 1995년 7월 24일 재심개시결정을 하였다. 간첩사건에서 사법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그러나 신귀영 선생은 끝내 재심재판을 받지 못했다. 대법원은 검찰의 재항고를 받아들여 1998년 2월 25일 재심개시결정을 취소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징역 15년과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신귀영선생과 신춘석선생은 이미 만기 출소하였고,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서성칠 선생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옥중에서 치료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채 사망하였다. 그 엄혹했던 시절에 '간첩'의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책위의 진상조사 활동에 참여하였던 저는 이들의 유린당한 삶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명예회복과 피해배상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조치를 끝까지 다해 보자고 약속하였다. 그래서 새로운 재심사유를 만들기 위해 1998년 6월 9일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여, 이 소송에서 과거 간첩사건 재판 때 간첩행위를 목격했다고 증언하였던 증인으로부터 고문에 못이긴 위증이었다는 증언을 확보한 후, 그 증언을 근거로 1999년 7월 29일 부산지법에 다시 재심청구를 하였다.

그러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법원이 재심개시결정을 하더라도 검찰이 또다시 항고, 재항고를 할 경우 언제 재심재판을 받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재심재판은 고사하고 재심개시결정이란 문턱을 넘는데 몇 년을 허비하고 있는 셈이다.

형사 재심제도는 오판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무고한 자를 구제하기 위한 인권보장장치이다. 따라서, 증거서류가 위조되거나 증언이 위증임이 재판에 의해 판명된 경우 등 판결의 근거가 상실된 경우는 물론이고, 오판의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되면 재심을 받을 수 있어야 마땅하다.

일본의 판례는 재심개시를 위해서는 판결의 사실인정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일으키기에 족한 증거가 새로 제출되면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재심개시여부의 판단에 있어서도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재판의 대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재심사유를 엄격하게 몇 가지로 한정하고 있는데다가, 대법원이 새로운 증거제출을 사유로 한 재심청구에 대해 과거 재판절차에서 발견되지 못하였거나 발견되었어도 제출 또는 신문할 수 없었던 증거로서 그 증거가치가 다른 증거들에 비해 객관적인 우위성이 인정되는 증거의 경우에만 재심사유가 인정되고, 법관의 자유심증에 의해 증거가치가 좌우되는 증거의 제출은 재심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증인의 증언 등 새로운 증거의 제출에 의해 재심개시결정을 받는 것이 사실상 봉쇄되어 있다.

이미 역사의 법정 또는 진실의 법정에서는 조작임이 판명된 많은 시국사건들, 심지어 사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대통령이 된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조차 재심이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보안법의 개정이 논의되면서 정부도 과거 많은 남용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남용되었다는 것은 그 적용이 잘못되었다는 뜻이고, 이는 결국 국가보안법사건에 오판이 많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국가보안법을 개정하여 앞으로 남용을 막는 일 못지 않게 과거의 남용사건을 재심하여 억울한 희생자를 구제하는 것이 중요한데, 현행 재심제도로는 재심을 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은 5·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행위 또는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신군부의 헌정질서파괴범죄행위에 대한 저항행위로 유죄판결을 선고받은 자들의 특별재심청구권을 규정하여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제한 없이 주소지 법원에서 재심을 받을 수 있도록 한 바 있다.

광주문제만 이렇게 해결할 일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의 남용에 의한 피해도 똑같은 방법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국가보안법 개정과 함께 국가보안법사건에 대한 특별재심을 입법화하여 재심의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국가보안법이 제대로 개정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귀영 선생의 거듭된 재심청구도 개인의 구제차원을 넘어서서 조작간첩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재심의 필요성을 이 사회에 환기시키고 인정받기 위한 노력으로서 보다 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