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베르의 후예들에게
상태바
쟈베르의 후예들에게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1.08.2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권칼럼]김승훈 신부(본회 고문)
우리 60대의 사람들은 <쟝발장>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국어 교과서에도 나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매우 감동적인 소설이었습니다. 물론 그 원 제목이 `레 미제라블'이라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유명한 소설 안에 아주 고약한 인물이 하나 나옵니다. 고등계 형사였다고 생각됩니다. 참으로 착한 쟝발장을 쫓아다니면서 못살게 구는 사람이었습니다. 미루어 생각하여볼 때 아마 법률을 조금 공부하였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쟈베르'라고 기억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법대로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감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때로는 흥분하기도 하고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또한 알게 모르게 많은 잘못을 저지르면서 살아갑니다. 그런 가운데 희노애락을 겪으면서 사는 것이 사람입니다. 만일 누가 법대로만 살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하늘의 천사일 것입니다. 그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렇게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 과연 예수는 그 많은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으며 그 죄인들을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희생으로 바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율법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 또한 법대로 살기를 요구하는 인간들입니다. 법을 어긴 사람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뜻대로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죽어야만 했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서울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이던 민주노총 집행부 간부들과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노동자들의 구체적 삶과 노동현실에 대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불가피한 파업, 수배, 구속의 악순환을 보며 적어도 국민의 정부가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많은 부분들이 오해와 감정적 대립으로 증폭되어 대화도 협상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보다 솔직하고 소박한 자세로 마주앉아 대화하고 토론한다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정부 당국과도 노동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가지고 논의하였습니다. 정부당국의 어려운 처지에 대해서도 많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보다 힘이 센 정부가 조금만 양보하고 성실한 자세로 대화에 임한다면 잘 풀릴 것으로 보였습니다. 몇 번에 걸친 만남의 결과 서로가 좋은 마음으로 지난날의 잘못에 대하여 문제 삼지 않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수의 형식으로 스스로 경찰청을 찾아갔습니다. 이제 이 정부와 민주노총 사이에 진지한 대화의 자리만 만들어지면 쌓이고 쌓인 복잡한 문제들이 하나하나 해결되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세상을 모르는 순진한 한 사제의 생각이었습니까?

당일치 여러 신문에서도 정부와 민주노총 간의 대화의 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해설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양자 간에 허심탄회하고 진지한 대화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수배해제나 구속노동자에 대한 석방, 그리고 노동문제 전반에 대한 성의있는 대화 노력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의 율법학자들이 법은 법대로 지켜져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법을 전공하였다고 하는 오늘의 쟈베르의 후예들이 많은 선의의 희생자들 모두가 법에 따라서 벌을 받아야 한다고, 그래서 어떠한 사면이나 석방은 전혀 고려할 수 없다고 하는 주장 때문입니다.

법무장관님 그리고 검찰총장님, 법이 있기 이전에 사람이 살았습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방편의 하나가 법이라는 것입니다. 법이 온 세상을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법보다 더 높은 가치는 서로 간의 용서이며 참된 사랑입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만들어 주십시오.

(김승훈 신부님께서 한겨레 신문에 기고하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