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길위의 신부, 미사를 집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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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길위의 신부, 미사를 집전하다
  • 김덕진
  • 승인 2007.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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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신부 서품 40주년 기념식 대추리에서 열려
▲ 민중의 소리
하얀 사제복을 벗자 속에서 늙은 촌부들이 흔히 입는 짙은 색깔의 체크무늬 남방과 솜을 단단히 누벼 넣었을 나일론 체육복 바지가 나왔다.
얇고 밝아선 안된다. 그는 안온한 성전 안이 아니라 거칠고 매서운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이니까.

26일 오후 6시 대추리 농협창고 안. 예술가들의 여러 작품들로 치장된 벽 아래에서 천주교 신도와 종교를 가리지 않고 미사를 집전하는 한 신부를 좋아하는 15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 대추리 성탄 예배를 올렸다.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주의 기도를 다함께 정성들여 바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한 명의 신부와 150여 명의 신도들이 호흡을 나눠가며 기도문을 왼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식순은 40년간 그가 집전했을 미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저희들이 이 곳을 찾을 때마다 마음이 착잡하고 어떻게 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는 막막함을 느낍니다. 지난 5월 대추리 분교가 무너졌을 때 저희들 마음도 이미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꿈을 잊지 않고 매일매일 이 곳에 꿈을 키우는 미사를 봉헌해 왔습니다. 오늘 새 생명이 피어나길 바라는 이 성탄미사를 전국의 사제들과 뜻을 모아 거행하는데, 겹경사가 있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의 서품 40주년을 맞은 것입니다"

대추 분교가 무너지던 5월 4일, 문정현 신부와 함께 지붕에 올랐던 서울교구 전종훈 신부가 주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문 신부의 서품 40주년을 축복했다. 마찬가지로 함께 지붕 위에 섰던 청주 교구의 김인국, 안동 교구의 김영식 신부 등은 물론 문정현 신부의 동생 문규현 신부도 빠지지 않았다.

문정현 신부는 이 날 미사가 “대추리에 찾아온 분, 오지 못했어도 빚을 진 마음을 가진 분들을 일깨우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론을 맡은 김인국 신부는 “길 위의 신부는 시적인 표현이고, 그 내용은 노숙자에요. 신부 40년 노숙자 40년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계속 그리 하실 것이라 믿습니다”며 문 신부의 삶을 치하했다.

후배 사제들과 교우들은 문정현 신부의 40주년을 각별히 여겼으나 문 신부는 30년 전의 사건에 더 마음이 갔다.

"8명의 죄 없는 사람들이 처형된 인혁당 사건이 31년 만에 재심을 받는데 검찰이 구형을 안했습니다. 검사도 무죄를 인정한다는 뜻이지요. 대추리도 좋은 소식이 올 것입니다. 대추리도 기필코 한미간의 동등한 나라라는 것을 선포하는 그날이 올 것입니다"

미사가 끝난 후. 그는 다시 대추리 주민으로 돌아왔다.

"오랫만에 신부 표가 났네?!"라며 싱글벙글 웃는다.

이어서 열린 문정현 신부 40주년 기념식.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이날도 이름 없고 얼굴 낯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문정현 신부가 단상 앞으로 걸어 갈때, "꺄~ 오빠~!"하는 호들갑과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 기피 인물 또는 비우호적 인물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라는 제목에 이어, 그가 서있는 거리를 촬영한 사진들이 슬라이드로 지나간다(노순택 작 영상물).

사진 속 문정현 신부는 인혁당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곳, 매향리 주민들이 사격장 폐쇄를 요구하는 거리, 두 여중생을 살해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거리, 한미SOFA 개정을 요구하는 거리, 평택미군기지확장 저지를 요구하는 거리에 차례차례 섰다.

1990년 폭로된 보안사의 디스켓에 담긴 그의 신상은 이렇다.

"개인 번호 169 문정현. 전북지역의 대표적 문제 인물. 외고집에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으로 별명은 '깡패 신부'. 3, 4공화국 당시 반정부 활동으로 수감"

공안 정국의 '깡패 신부'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박순희 대표에게는 '존경하는 민중의 아버지'이며 '서민의 벗'이다.

박 대표는 "독재정권 시절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던 한 크리스찬에게 문 신부는 착취당하고 고통 받는 이들이 직접 만나고 위로 받는 살아 있는 '예수'였다"며 "더욱 오래 뵙고 모실 수 있도록 건강을 과신하지 말고 조심해가며 오래오래 살아달라"고 당부했다.

"인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복역 중 문정현 신부 때문에 8년 8개월 만에 살아 돌아왔다"는 전창일씨는 "인혁당 관련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문 신부의 서품 40주년을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대추리 투쟁의 위대한 승리를 축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2년을 동고동락한 대추리 주민들에게 문 신부는 어떤 사람일까.

대추리에 상주하고 있는 들소리 방송국(이 방송국은 민주언론시민연합으로 부터 올해의 민주언론시민상을 받았다)이 영상으로 수집한 주민들의 덕담 속에는 "고마우신 분", "좋은 양반", "술 마시기에 좋은 친구", "희망을 주는 사람", "장난꾸러기", "산타 할아버지" 등등의 이름들이 튀어 나온다.

대추리 주민들을 비롯하여 문정현 신부의 친구들은 문 신부와 함께 무대에서 '노을'과 '고향의 봄'을 불렀다. 그리고 또 어디서 배웠는지, 문정현 신부는 아코디언을 주무르며 흥겹게 반주를 맞췄다.

누군가 또 말했다. "문정현 신부는 평화다"라고.

민중의 소리 서정환 전문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