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접견제한 위법’ 결정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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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접견제한 위법’ 결정 안팎
  • 황정유
  • 승인 1991.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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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핑계 가혹행위 근절 도움
변호인 만날 권리 보장 큰 뜻/공안당국 왜곡수사 관행 쐐기

서동권 안기부장이 법원이 변호인접견 불허 취소결정에 불복해 낸 재항고를 28일 대법원이 기각한 것은 피의자나 피고인의 변호인 접견권은 법령에 기초하지 않은 어떤 이유로도 제한돼서는 안된다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원칙을 대법원 판례로서 다시 한번 못박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다른 수사기관과 달리 안기부만 유독 피의자를 잡아놓고서도 영장에 기재된 구금장소가 서울 중부경찰서라는 이유로,또는 수사상 필요 등을 내세워 변호인 접견을 수시로 제한해온 관행에 비춰볼 때 이번 결정은 안기부의 접견제한 명분이 어떤식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변호인 접견권의 보장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결정문에서 “피의자와 변호인의 접견교통권은 신체구속을 당한 피고인이나 피의자의 인권보장과 방어준비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권리”라며 “법령에 의한 제한이 없는 한 수사기관의 처분은 물론 법원의 결정으로도 이를 제한할 수 없는 것”임을 명백히 했다.

접견교통권은 고문이나 가혹행위 등 피의자의 인권유린행위를 막는 헌법에 보장된 제도적 장치이다.

변호인 접견권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것은 89년 7월 공안정국이 절정에 달해 유례없이 많은 공안사범이 양산돼 구속과 함께 가혹행위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비롯됐다.

물론 그 이전에도 변호인 접견권은 공안사범의 경우 수시로 제한돼 왔고 특히 안기부의 수사권이 ‘건드릴 수 없는 성역’으로 군림하면서 안기부가 수사중인 피의자에 대한 접견제한은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89년 7월 당시 성남민주노동자회 사건으로 안기부의 수사를 받던 이 단체 의장 연성만씨에 대한 변호인접견이 불허되자 주명수 변호사가 준항고를 내 법원으로부터 접견불허 취소결정을 받아낸 것을 시작으로 안기부에서 수사받던 당시 민미련 건준위 공동의장 홍성담씨,검찰에 송치돼 수사를 받던 서경원의원 등에 대한 법원의 접견불허 취소명령이 잇따라 내려졌다.

반면 공안사범의 변호인접견은 수사상 필요에 따라 일시 제한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공안당국의 대응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안기부의 경우 연성만씨의 변호사가 법원의 결정문을 가지고 접견을 신청했으나 또다시 이를 불허,재야법조계와 인권단체로부터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는가 하면 민미련 회원 차일환씨에 대해서는 안기부 수사도중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변호인 접견에서 폭로했다는 이유로 보복폭행이 가해졌다는 주장까지 나오기도 했다.

또 검찰은 서경원 전 의원에 대한 접견허가여부는 서울구치소장의 책임이라며 서울지검장을 상대로 낸 준항고가 받아들여진데 불복,대법원에 재항고를 냈다가 “검찰이 서 전의원을 계속 붙잡아놓고 접견을 불허한 사실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기각당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연성만·홍성담·서경원씨 등 접견불허가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재판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했으며 홍씨는 수사과정에서 구타당해 상처가 증거로 보존돼 결국 대법원에서 간첩 혐의 부분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변호인접견 제한이 피의자에 대한 가혹행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사람들은 모두 변호인접견을 전후해서는 가혹행위를 일시 유보하는가 하면 상처가 났을 경우 나을 때까지 접견을 불허하는 방법으로 가혹행위의 흔적을 은폐해 왔다고 주장했다.

안기부는 공안정국이 지난 뒤에도 여러차례 접견제한을 해왔으며 변호인이 법원의 준항고 인용결정문을 가져오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허용해오다 마침내 지난 19일 박노해씨의 접견과 관련,처음으로 법원의 결정에 정식으로 항의해 재항고를 낸 것이다.

그러나 변호인 접견권에 대한 제한행위나 법원의 접견불허 취소결정을 따르지 않는 경우에 대한 분명한 처벌조항 등이 없어 안기부의 접견 제한행위가 근절될지는 불투명하나 적어도 준사법기관으로서의 명분 등을 고려할 때 이번 결정으로 안기부의 접견제한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임범기자>

한겨레 199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