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무죄', <조선><동아> 예의없는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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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무죄', <조선><동아> 예의없는 보도
  • 김덕진
  • 승인 2007.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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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32년 만에 무죄 판결... "무분별한 재심 요구" 등 초점 흐리기
▲ 는 24일자 1면에 상단 통단 박스 기사로 사진과 도표, 설명 등을 곁들여 인혁당 재심 결과를 상세히 보도했다
24일 국내 주요 일간지들이 편집한 '인혁당 사건' 관련 기사 제목들이다. 언뜻 제목만 보면 별 차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신문을 놓고 편집된 상태를 비교, 검토하면 상당한 비중의 차이를 볼 수 있다. 또 지면에서는 어느 정도 '면피'를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인혁당 관련 기사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국제법학자협회가 '인혁당' 사건으로 8명의 사형수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한 이 사건에 대해 각 일간지는 어떻게 보도했는지 살펴보자.

18시간 만의 사형 '인혁당 재건위' 32년만에 무죄(<한겨레> 1면 통단 머리기사)
'사법살인'32년 만에 진실 밝히다-'인혁당' 사형 8명 재심서 무죄판결(<경향신문> 1면 중앙 사진과 4단 기사)
'인혁당 사건' 32년만에 무죄(<조선일보> 1면 하단 2단 기사)
인혁당 사건 8명 32년만에 무죄(<중앙일보> 1면 하단 1단 기사)
인혁당 사형집행 8명 32년만에 무죄 선고(<동아일보> 1면 중앙 2단 기사)

#1. 편집은... 같은 사건, 다른 시선

우선 <한겨레>는 1면 통단으로 사진과 도표, 설명 등을 곁들여 상세히 보도했다. 이어 관련기사로 2면에 '사법살인' 원혼들 명예회복 큰 걸음(머리기사), 3면을 털어 "'간첩가족' 숨죽인 세월... 쌀을 모래씹듯 살아"로 유족들 이야기를 전했다.

또한 까다로운 재심청구 요건을 특례법을 만들어 완화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정치면에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무반응에 대해서도 취재해 다뤘다.

<경향신문>은 1면 중앙에 사진을 비중있게 배치하고 4단 기사를 썼다. 또 사회면 1개 면을 털어 관련 사진들과 함께 사건일지를 담았다. '과거 오류 인정...바로 세운 사법정의' 등의 기사로 사건의 의미와 전망, 사건 관련자들과 유족들의 표정도 스케치했다.

<중앙일보> 1면에서는 인혁당 사건을 다룬 기사를 찾으려면 한참 들여다 봐야한다. 1면 좌측 하단에 원고지 약 1.5매 분량의 '인혁당 사형 8명 32년만에 무죄' 1단 기사를 쓰고, 사회면(11면) 머리기사로 "'인혁당 사건' 사형 8명 재심서 무죄... 쌀알을 모래알처럼 씹으며 산 32년"을 다뤘다.

또 3단짜리 사진과 2단 기사로 재심 선고현장을 다뤘으며, 간략한 사진일지를 포함했다. <중앙일보>도 <조선일보>처럼 법원의 입장을 들어 "반국가단체의 증거가 없고 검찰이 제시한 조서 등의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1면 하단에 2단짜리 기사로 간략히 압축하고, 종합면(A6면)에 '원통한 죽음... 유족들 눈물' 제하의 박스기사로 현장스케치를 담았으며 법원이 '잘못된 판결'임을 인정했고, '사법살인' 진실을 밝혀냈다고 썼다. 키워드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1면 중앙에 2단 기사로 '인혁당 사형집행 8명 32년만에 무죄선고'를 스트레이트 기사로 썼다. 사회면(A12면) 박스기사를 통해서는 '너무 빨리 간 그들... 너무 늦은 명예회복'을 제하로 공판현장을 보도했으며, 사진과 주요 사건일지를 다뤘다.

#2. 사설은... <조선>, 과거사 파헤치기로 법적 안정성 위협?

사설에서도 많은 차이가 엿보인다.

<한겨레>는 사설 "'인혁당 무죄' 판결, 갈 길은 아직 멀다"를 통해 "군사독재시절 자행된 수많은 인권유린과 고문·조작사건의 진실규명은 여전히 더디고 까다롭다"며 "재심요건 완화, 국가범죄의 시효 배제, 재심 특별재판부 설치 등과 같은 더 많은 디딤돌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경향신문>도 사설에서 "고문·조작사건의 재심을 확대하고, 사형제를 없애는 것이 억울하게 죽은 8명의 혼을 달래고 유족들에게 보상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인혁당 사건과)유사한 내란음모, 간첩조작 사건들에 대한 재심과 관련 소송이 잇따를 게 분명하다"며 "이들 사건에 대해서도 권력의 요구가 아닌 정의의 요구에 부응하는 사법부의 올바른 판단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조선일보> 사설은 이번 재심 판결에 대해 평가를 하면서도 "정권의 과거사 파헤치기 바람에 올라탄 또 다른 재심요구들이 무분별하게 잇따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판결 뒤집기가 남발되면 법적 안정성이 위협받게 마련"이라고 우려했다. 재심 결정권을 지닌 법원의 옥석을 가려내는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동아일보> 사설도 "재판은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돼야 한다"면서 "당시 국가폭력을 추인하는 고무도장 판결을 내린 법관들은 모두 사법부를 떠났지만 오늘을 사는 법관들은 과거의 사법부와는 역방향에서 '정치에 물들지 않았는지' 자문해 볼 일"이라고 훈계했다.

인혁당 사건을 가장 눈에 띄는 편집으로 비중 있게 다룬 언론은 <한겨레>다. 3개면에 걸쳐 법원 판결의 파장과 의미는 물론이고 재심 대상 주요 사건에 대한 현황까지 꼼꼼하게 파악해 기록했다.

이에 앞서 인터넷 언론과 포털들도 23일 오전 판결 직후 이 사건을 주요뉴스로 배치해 다뤘으며 라디오·TV 등의 방송매체들도 비중있게 보도했다.

#3. 반응은... 그들의 자유민주주의 가치는 무엇인가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조선><동아>는 이번 사건의 파장과 의미에 대해 <한겨레>보다 적게 보도하면서 사설을 통해 '무분별한 재심요구' '정치에 물들지 않았는지' 등을 거론하며 깎아내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최근 여러 과거사위원회를 통해 과거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이 이뤄지면서 재심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데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며 "법원의 판결도 증거 없는 추측이라고 우기는 수구의 언동을 보면서 제발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속회하는 마음으로 그 입을 다물라고 말하고 싶다"고 비판했다.

시사평론가 백병규씨는 "<조선><중앙><동아>다운 편집"이라며 "해당 언론사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자유민주주의라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압살했던 사법살인에 대해서도 의미를 두고 보도하는 게 마땅한데도 이번 보도로 스스로 말해왔던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무엇인지 의심케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또한 그는 "거짓사건을 만들어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과거의 아픈 잘못된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저버린 게 아닌가 싶다"며 "해당 언론사가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가 뭔지 분명치 않고 그렇기 때문에 똑같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언론이)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오마이뉴스 장윤선(sunnijang)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