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인권] 발달장애인의 인간답게 살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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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인권] 발달장애인의 인간답게 살 권리?
  • 김기룡(전국장애인부모연대 사무처장)
  • 승인 2008.09.25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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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애인 문제는 주로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문제들을 중심으로 회자되어 왔다. 그리하여 장애인권 운동 역시 이동권 확보, 편의시설 보장, 교육의 기회 확대, 장애인 의무고용제 확대 등 물리적 환경에 대한 접근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운동의 역사였다. 이와 같은 운동으로 관련 법률이 제정되고, 예산이 확충되는 등, 장애인의 사회적 권리가 한층 향상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여전히 물리적 환경에 접근하지 못하여, 각종 사회적 권리로부터 배제,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이로 인해 장애인계는 때로는 한 목소리로 때로는 다른 목소리로 장애인의 인권 현실을 대변하며, 사회적 권리의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과정에서 발달장애인의 사회적 권리 보장에 대해서는 관심 밖의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다. 특히 한국에서는 시설에 생활하는 많은 장애인이 발달장애인인데, 발달장애인의 특성상 자기 표현과 자기 결정에서 상당한 제약을 갖고 있으므로, 시설에서 생활하면서 겪은 부당한 대우, 인권 유린 등에 관한 사항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해 왔다. 특히 발달장애인 중 성인의 경우, 가정 또는 시설 이외에는 더 이상 선택할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에, 가정에서 생활하기 힘들게 되면, 대부분 시설을 택할 수밖에 없다. 시설을 선택하게 되면, 더 이상 자유로운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행동은 시설의 권위 앞에서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시설을 소유한 사람들의 횡포에 의해 인권이 착취되어야 했고, 온갖 비리를 자행하는데도 이를 견제하거나 중지시키지 못한다. 한국의 생활시설은 사실상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을 우선하여 설계된 것이 아닌 시설을 소유한 사람의 입장에서 설계되고 운영되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 시설에 거주하면서 자신의 권리가 제약되면서까지 살 수 밖에 없는 발달장애인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역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그래서 평소 “시설 밖으로 지역 사회로”를 외치며 탈시설 운동을 주도해 온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과,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최근에 조직한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외국의 사례를 확인해 보기로 하고, 지난 8월 미국의 시카고로 연수를 떠났다. 마침 IFDD(국제발달장애인협회)의 대표로 계시는 한 선생님의 주선으로, 미국의 발달장애인의 지역 사회 기반 서비스 지원 체계, 시설의 문제 등에 대해 관련 기관을 방문하고, 소중한 경험담을 듣고, 활용 가능성이 높은 자료도 얻게 되었다. 우리 연수단이 방문한 곳은 2주일에 걸쳐 총 13개 기관 또는 단체였는데, 이들 기관은 주로 발달장애인을 위해 시설이 아닌 지역 사회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중재하는 기관,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 등이었고, 한편,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옹호하고 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러 기관을 아주 짧은 시간에 걸쳐 방문하였기에, 미국의 복잡한 발달장애인 지원 체계를 모두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우리 연수단은 대체로 미국의 장애인 복지 체계가 신체장애인이 아닌 발달장애인을 위해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과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 지원체계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상당히 느끼는 바가 많이 있었다.

▲ 연수 마지막 날(8월 22일) 연수단의 숙소(Marriot Residene Inn, Bloomingdale) 앞에서, 미국 일리노이주 정부 관계자들(DHS-복지부, 발달장애인국 소속)과 면담 후 함께 찍은 사진


특히 미국은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장전법(1963년에 제정된 정신지체시설 및 지역사회정신건강센터건축법이 1975년에 발달장애지원 및 권리장전법으로 개정)과 각 주에서 제정한 별도의 법률에 근거하여, 발달장애인의 서비스 지원 및 권리 옹호에 관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 방문단이 방문한 일리노이주 역시, 이와 같은 법적 근거에 의거하여 지역 사회 기반의 서비스 지원 체계가 마련되어 있었다. 일리노이 주는 약 5만여명의 발달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는데, 9개의 대형시설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머지는 지역사회 거주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특히 대형시설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지역 사회로 전환될 수 있도록 주정부에서는 발달장애인국 내에 전환서비스부를 설치하여, 대형시설에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지역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촉진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한 지역사회로 나간 장애인이 혼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연간 55,000달러를 지원하고, 주 내의 18개의 서비스 중계기관의 도움을 통해 400여개의 직접 서비스 제공기관과 연결하여 직업훈련, 여가, 교육, 치료서비스 등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제공받도록 하고 있었다. 또한 시설 생활 과정에서 인권 침해나 유린 등의 행위가 발생했을 때는 EFE(Equip for Equality : 25명의 장애인 인권 전문 변호사가 상근하며, 장애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법적인 서비스, 정책 개발 연구 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와 같은 권리옹호기구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EFE에서는 사고가 발생한 시설에 대한 조사권을 행사하여, 사건을 중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주 정부 산하의 발달장애인위원회(Council for Developmental Disabilities)와 민간의 권리 옹호 기구(ARC(Advocacy for Change)와 같은 장애인부모회)에 의해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주 정부에서는 발달장애인국(Administration on Developmental Disabilities)을 설치하여 발달장애인을 위한 행정 서비스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있고, 각 대학을 활용하여 발달장애인의 서비스 지원 환경 개선을 위한 연구 개발을 장려하고 있었다.

미국의 발달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 체계들을 살펴본 우리 연수단은 한국의 현실과 비교해 상당 부분 격차를 느꼈고, 미국의 사례를 근거로 한국에서 시설 중심의 장애인 정책을 뛰어 넘어, 지역 사회에 기반한 다양한 복지 지원 체계 마련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하였다. 물론 미국에서 보고 느낀 내용들이 온전히 훌륭한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예산이 부족하여 모든 장애인들에게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 발달장애인의 공격성 행동이 때로는 범죄행위로 취급되기도 하여 감옥으로 보내지고 있다는 얘기, 여전히 대형시설이 흔들리지 않고 위용을 자랑하며, 시설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얘기 등은 아직도 발달장애인을 위해 미국이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설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던 우리나라의 발달장애인 정책과 비교해 볼 때, 미국은 이미 수십여 년 전부터 탈시설을 향해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는 느낌은 우리 연수단 모두 공감하였다. 이제 우리도 시설 중심의 정책을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한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발달장애인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시설에 의해 자기 표현의 권리와 자기결정권이 제약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받으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이를 지원하기 위한 법적 체계, 서비스 전달 체계, 행정 지원 체계, 재원의 확보 문제 등,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시설 중심, 신체장애인 중심의 장애인 복지 지원 체계를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