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해안 아이들의 꿈
상태바
[칼럼] 서해안 아이들의 꿈
  • 엄윤상 (인권위원, 변호사)
  • 승인 2008.10.24 11: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해안을 초토화한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지도 어느덧 10개월이 넘었습니다. 지금까지 접수된 피해가 7만 건을 넘어서고 있고, 피해자들이 선임한 피해조사업체의 조사율은 50%를 넘어서고 있으나, 거의 모든 피해자들이 한 푼의 보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는 잠정 집계에 불과하므로 앞으로도 피해건수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 동안 약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와 지역 주민들의 노력으로 이제 겉으로의 평온은 찾은 듯이 보입니다. 서해안 주민들은 기름 값 고공행진에도 불구하고 생계를 위하여 손해를 감수하며 바다로 나가고 있고, 모진 삶을 이어가기 위하여 긴 세월 삶의 터전이었던 바다를 떠나는 분도 다수 계십니다.

피해주민들의 처절한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늘 그렇듯이 우리는 이 사건을 서서히 잊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미국발 금융위기 상황에 놓여있고(물론 현 정부는 10년 전 IMF구제금융 때와 마찬가지로 위기상황이 아니라고 합니다) 서해안 피해주민 못지않게 많은 도시민들의 삶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서해안 피해주민들의 고통을 다시 한 번 새겨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고통을 배가시키는 미안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해안 주민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그 곳 어린이들의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여서 지금 그 피해를 어느 정도 회복시켜주지 않으면 그 어린이들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 때문입니다.

매일같이 암담한 서해 지역의 미래에 대한 어른들의 한숨을 지켜보는 아이들! 지역사회의 무거운 분위기, 암담함에 다시 희망을 만들어 가야할 아이들은 부모, 조부모들의 허탈한 심신, 거친 말들을 보고 들으면서 상처와 스트레스조차도 표현하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바다’라는 단어만 들어도 얼굴빛이 바뀌고, 삼성중공업에 대하여 심한 욕설을 하는 등 심각한 스트레스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환경교육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피해지역 아이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다른 지역 아이들에 비해서 8배 정도 높다고 합니다. 이러한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10개월이 흘렀어도 전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보상의 지체와 보상여부에 대한 유언비어의 난무, 정부의 방치 등으로 인하여 지역 주민들의 정부와 국제기금에 대한 불신과 심지어 그들 사이에서의 불신도 커지고 있고, 그 영향은 전염병처럼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지금 서해안 지역에서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를 듣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간혹 만나는 아이들에게 지금의 꿈을 물으면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웃음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소박한 답을 합니다. 그러나 큰 재앙에 우리 아이들의 부모, 조부모는 웃을 틈이 없습니다. 당장 하루하루의 생계를 걱정하는 마당에 누군들 웃음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보상문제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언젠가는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장이 문제입니다. 매출과 소득이 50% 이상 줄어든 가구가 태반입니다. 서해안 아이들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의 작은 정치적, 경제적 관심이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