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과 인권] 우리에게는 용산을 지켜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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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과 인권] 우리에게는 용산을 지켜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 유성(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 승인 2009.03.3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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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 이후 - 해결된 것이 없음

용산 철거지구 4구역에서 경찰의 진압으로 여섯 명이 목숨을 잃은 지 두 달이 훌쩍 넘었습니다. 하지만 유족들은 아직 장례도 못 치르고 있습니다. 아직도 해결된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유야 어쨌든 사람이 여섯명이나 죽었으면 경찰 진압 과정의 앞뒤를 자세히 살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할 텐데, 경찰청장 내정자가 사퇴하고 그저 망루에 올랐던 이들을 처벌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려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대로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 속으로 흘려보내도 되는 건 아닐 겁니다.

사건의 배경 - 세입자들이 점거 농성을 하게 된 이유

용산에서 세입자들이 건물 점거 농성에까지 이르게 된 이유는 단순합니다. 용산 4구역 정비사업이 건설사와 땅 가진 이들의 뜻대로만 진행되면서, 정작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가던 이들의 삶과 의사는 철저히 무시당했기 때문입니다. 세입자라는 것이 죄도 아니고, 단지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일구어왔던 삶의 터전을 그대로 포기하고 내쫓김을 당해도 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임시로 거주/영업할 수 있는 가이주단지와, 현재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갈 만큼의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주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할 용산구청은 세입자들을 생떼 쓰는 사람 취급만 할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세입자라는 취약한 계층을 더욱 신경 쓰는 것이 올바른 일일 텐데요.

용역 폭력의 문제

철거 용역의 폭력 행위도 심각했습니다. 폭력 조직과 연계된 철거 용역 업체 직원들은 날마다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갖은 행패를 일삼았습니다. 건물 벽마다 해골이나 칼 같은 끔찍한 그림을 그려놓아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가게 앞에 쓰레기 더미를 쌓아놓거나, 비둘기 시체들을 늘어놓는 등의 행동을 했습니다. 장사하는 집에 들어와서 손님들에게 시비를 걸고, 단지 쳐다본다는 이유만으로 폭행당하기도 했습니다. 나이 70 먹은 주민도 며느리가 보는 앞에서 깡패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대낮에 버젓이 저질러지는데도, 경찰은 이를 방조했습니다. 신고를 해도 현장에 잘 와보지도 않고, 피해 주인이 가해 용역을 분명히 지목하는데도 모른 체하다 마지못해 형식적인 조사를 하는 정도였습니다. 사실 신고 후에 조사하는 것은 나중 문제고, 동네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순찰을 강화해서 철거 용역의 위협과 폭력 행동들을 차단하는 것이 상식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도 현실은 상식적이지 않았습니다. 참사 당일만 해도 세입자들이 농성하고 있는 건물의 바로 아래층에서 용역들이 불을 피워대는 데도, 건물 주변을 둘러싸고 뻔히 들여다보고 있던 경찰은 전혀 제지하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렇게 세입자들은 조합 측의 일방적인 사업 강행과 구청의 냉대, 용역들의 폭력에 견디다 못해 참사 전날인 1월 19일, 빈 건물 옥상에 올라가 망루를 지은 것입니다.

경찰 투입의 과정과 그 문제점

세입자들이 건물에서 농성을 시작한 것은 19일 새벽이고, 망루를 세운 것은 그날 오전입니다. 그런데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이 건물에 대해 경찰력 투입이 결정된 것은 19일 오전 9시 경입니다. 그리고 전격적으로 건물 내부로 경찰력이 투입된 것은 20일 새벽 5시 30분 경입니다. 세입자들이 점거에 들어가자마자 강제 진압이 결정된 것입니다. 이런 신속한 강제 진압 결정은 매우 이례적인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경찰권을 발동하는데 있어 ‘민사불개입 원칙’이 있습니다. 민사불개입은 경찰권은 사인 간의 민사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용산참사의 배경이 된 문제는 정비조합과 세입자들 간의 문제로 민사적 성격이 강하므로, 경찰권의 개입은 최대한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고, 개입하더라도 편파적인 경찰권 개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심각하게 벌어졌던 정비조합과 철거 용역 측의 불법 행위에는 개입하지 않다가, 세입자들이 건물 점거에 들어가자마자 3시간 만에 강제 진압을 결정하고 하루 만에 진압을 한 것은 누가 봐도 편파적인 공권력 행사일 것입니다.
또한 건물 점거가 현행법 상 불법이라 하더라도, 자진해서 내려오도록 설득을 하는 것이 최우선일 것입니다. 세입자들은 죽으러 올라간 것도, 누구를 다치게 하려고 올라간 것도 아닙니다. 단지 자신들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압살되는 것에 항의하여 올라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찰과 구청은 강제 진압에 앞서 책임있게 대화에 응하는 태도를 보였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다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경찰은 ‘빨리 해산하지 않으면 강제 진압하겠다’는 강압적인 태도만을 보였을 뿐입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세입자들이 도로를 향해 화염병을 던지는 등 일반 시민들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시급히 진압할 필요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언론에는 도로에 화염병이 떨어지는 사진 등을 보여주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인근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19일 오전 세입자들이 건물 옥상에 망루를 세우는 동안 이를 방해하기 위해 용역 100여명이 건물로 들어가고, 경찰과 용역이 옆 건물에서 물대포를 쏘아대면서 양 측에 공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망루가 완성된 19일 오후부터 밤까지 내내 평온하였고, 아이들도 그 주변으로 학교를 잘 다녔다는 것입니다. 20일 새벽, 경찰이 1600여명의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진압 작전을 시작하면서야 충돌이 격화된 것입니다.
즉, 경찰은 이미 진압 작전을 시작한 이후의 사진인 20일 새벽 상황을 가지고, 진압을 서둘러 시작한 이유라고 둘러대고 있는 것입니다.

진압 과정의 문제점

진압 과정의 문제점은 더욱 심각합니다. 경찰은 진압 시작하기 전부터 망루 내부에 인화물질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안전대비는 전무했습니다. 고공 농성에 필수적인 안전 매트리스는 설치되지 않았습니다. 경찰 스스로도 유류 화재에 대비하여 화학소방차가 필요하다고 진압 계획서에 명시했지만 현장에는 배치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경찰 지휘부는 작전의 강행만을 독려했습니다. 경찰의 무전 교신록에는 서둘러 진압하라는 지시만이 반복될 뿐, 농성하고 있는 세입자들이나 진압 경찰관의 안전을 고려하는 지시는 전무했습니다.
경찰 특공대가 컨테이너를 이용하여 건물 옥상에 투입되면서, 농성 세입자들은 망루 내부로 들어가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히 저항했습니다. 망루 내부에 세녹스 등 인화 물질이 많이 있는 상황에서, 경찰이 이렇게 무리한 진압을 펼쳐서는 안됩니다. 이런 경우 인화 물질을 다 소비하는 것을 기다려 진압하는 것이 경찰 내부 지침에도 명시되어 있는 원칙입니다.
실제로 경찰이 망루 내부에 진입한 상황에서, 화재가 발생했었습니다. 이는 곧 꺼졌지만, 이로 인해 화재의 위험성은 더 이상 “가능성”의 영역이 아니라 현실화된 것이고, 이로 인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찰은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무전 교신에 따르면 경찰 지휘부도 망루 내부에서 불이 난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경찰 지휘부는 일단 작전 중단을 지시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진압을 강행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컨테이너를 이용하여 망루를 밀어붙이는 위험천만한 상황까지도 나왔습니다. 결국 1차 화재가 발생한 뒤 약 10여분 후, 2차로 화재가 다시 발생하면서 이는 망루 전체로 번지는 참사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경찰은 2차 화재가 발생한 뒤에도 20여분을 허비하다가 뒤늦게 소방대가 화재를 진화하도록 허가합니다.
더욱 문제는 화재가 발생한 뒤 망루에서 탈출한 세입자들에 대한 구조 조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불이 난 망루에서 옥상으로 탈출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불길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옥상 베란다에 피신해 있었습니다. 경찰은 이들을 분명히 지켜보았고, 이들을 안전하게 구조할 수 있는 크레인과 컨테이너, 사다리, 안전 매트리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구조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옥상 난간에 매달려 있다가 바닥으로 떨어진 사람도 있고, 분명히 탈출하는 것이 목격되고 방송사 카메라에 잡힌 사람이 결국 망루 아래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사람도 있습니다. ‘진압’이 아니라 ‘구조’였다면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이렇듯 경찰 작전의 문제점이 분명한데도, 검찰은 경찰의 작전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리고, 철거민 조직인 전철연과 범국민대책위에 대한 탄압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전철연이 세입자들의 돈을 받아썼다는 ‘설’까지 언론에 흘리며 수사력을 집중했지만, 결국 검찰 스스로도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청와대는 때마침 터진 연쇄살인범의 사건을 활용하여 여론을 무마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 발각되기도 했습니다. 진압 결정 당시 위험하다는 이유로 반대했던 현장 지휘관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작전 강행을 지시했다는 경찰 내부 증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자진사퇴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유족들은 아무런 사과나 유감의 뜻도 듣지 못했고, 잘못된 경찰 작전에 처벌을 받은 사람도 없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당장 가진 힘으로 어떻게든 찍어 누르며 그냥 넘어가기를 시도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들의 힘이 당장 부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만큼은 굽혀서는 안 되겠지요. 이대로 잊어서도 안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