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와 인권] HIV/AIDS감염인의 노동권, 준비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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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와 인권] HIV/AIDS감염인의 노동권, 준비 땅!
  • 권미란(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 승인 2009.05.27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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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에 관한 국제노동기준 마련

5월 14일에 ‘HIV/AIDS감염인의 노동권 확보와 ILO(국제노동기구) 대응을 위한 워크숍’이 열렸다. ILO에서 올해와 내년 총회를 거쳐 에이즈와 관련한 국제노동기준을 채택할 예정이어서 마련된 워크숍이다. HIV/AIDS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은 1980년대 중반에 본격화되었다. ILO는 1988년에 WHO(세계보건기구)와 함께 에이즈와 노동 현장에 관한 합동 자문에 응함으로써 국제 사회의 노력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2000년 11월에 ILO의 HIV/AIDS 프로그램이 공식 출범하였고, 2001년 6월에 ‘HIV/AIDS와 노동에 관한 실천 강령(Code of practice)’이 채택되었다. ILO의 실천 강령은 HIV/AIDS가 노동현장의 문제임을 분명히 하고, 에이즈검사를 구직자를 고르는데 사용해서는 안되며, 노동현장의 일상적 접촉으로는 감염되지 않기 때문에 HIV감염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되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강화하는 것이 HIV 감염의 확산을 막기 때문에 성평등을 지향하고, 감염인의 건강과 능력에 맞는 노동환경을 만들 것 등 10가지 핵심원칙을 제시하였다. 이 실천 강령은 회원국에게 어떠한 의무도 묻지 않는 자율적인 것이기도 하거니와 한국의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어서 있는지도 몰랐다. 지금도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병원에서 내쳐지고, 가족, 친구들에게 감염사실을 숨겨야하고, 사회가 만든 낙인과 편견 속에서 자책감을 벗기 위한 노력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그래서 솔직히 노동권에 대해서는 ‘좀 더 있다가’라고 마음을 먹기도 했고, ‘가능할까’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민주노총에서 ILO가 에이즈와 관련한 국제노동기준을 만들어 ‘권고안’을 채택할 예정이니 이를 계기삼아 같이 준비해보자고 제안했다. ‘느리게라도 가는 것’과 ‘가만히 있는 것’은 완전 다른 거니까 이 계기를 우리와 상관있게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ILO의 ‘권고안’은 기존의 실천강령을 더욱 구체화하고, 회원국들에게 실질적인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형식이 되도록 하는데 의미가 있다.

채용금지와 해고로 이어지는 에이즈검사

감염인의 노동권을 박탈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각종 검사에서 HIV양성여부를 드러나게 하여 고용상의 차별을 가하는 것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이하 에이즈예방법)에서는 이주민, 성매매여성, 군인 등에게 에이즈 강제검사, 집단검사를 허용하고 있고, 실제로는 ①징병검사, 입영검사(군대) ②채용신체검사, 병적증명서(채용시) ③직장검진(채용후) ④성병강제검진 ⑤비자신청 등의 과정을 통해 ‘자발적 동의가 없는 상태로’ HIV양성여부가 밝혀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 에이즈예방법은 에이즈검사와 취업제한을 직접 연관시키고 있는데, 감염인은 유흥업소 등의 성병검진업소에 취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에이즈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전염병예방법과 산업안전보건법상에서 ‘공중과의 접촉이 빈번하여 전염병의 전파가 우려된다고 시장·군수·구청장이 인정하는 직업‘, ‘전염의 우려가 있는 질병에 걸린 자, 노동부장관이 정하는 질병에 걸린자’에 대해서는 근로를 금지하도록 하는 규정의 포괄적이고 모호함 때문에 임의, 확대될 여지가 많다. 이 모호한 규정은 자격이나 직종별로 규정된 각종 법들에 반영되어 ‘전염병환자’, ‘전염의 우려가 있는 질병에 걸린 자’ 등은 면허를 받을 수 없거나 취업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염병 환자는 조리사 또는 영양사의 면허를 받을 수 없다.(식품위생법 제38조), ‘전염성 질환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지거나 의심되는 보육시설종사자는 즉시 휴직시키거나 면직시키는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영유야보육법 시행규칙 제33조)’, ‘유효적절한 치료를 받지 아니한 법정전염병으로서 전염성이 없어지지 아니한 자는 공무원으로 채용할 수 없다(공무원채용신체검사규정 제5조)’과 같은 식이다. 따라서 어떤 업종에서 전염병환자의 취업을 제한하는지 관련법을 일일이 찾아보아야 하고, 그 경우에 에이즈검사가 포함되기도 하는지 확인해보아야 한다. 또 징병검사와 입영검사시 에이즈검사에서 양성으로 판정되면 병역면제 되거나 전역조치 되는데,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는 사업주가 채용시 병적증명서 제출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질병으로 인한 병역면제는 취업, 직장생활로까지 연결이 된다. 공직자를 제외하고는 병역면제사유에 질병명이 기재되지는 않지만, 취업사이트나 인터넷상에는 군 면제 사유에 해당하는 질병을 묻지나 않을지, ‘언젠가는 들켜서’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을지 우려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에이즈검사 결과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할 수 없도록 에이즈예방법에 규정하였으나 이를 어길시 사업주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을 뿐이다. 설령 차별구제를 신청한다하더라도 사업주가 노동자의 감염사실을 인지한 후 HIV감염이 아닌 다른 직무상의 이유를 들어 고용차별행위를 가한 경우, 노동자가 자신의 감염사실을 공개하면서 이를 근거로 국가인권위원회나 노동부에 차별시정절차를 밟는다는 것은 사회적 사망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입국금지, 강제출국으로 이어지는 에이즈검사

이주민에게 에이즈검사를 하는 이유는 더욱 선명하다.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쫓아내기 위해서다. 비자 발급시 에이즈검사 결과를 요구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2009년 4월 3일에 회화지도비자(E2)를 신청하는 이주민에게 에이즈검사결과를 제출하도록 법적 규정을 마련하였는데 그 자체로 차별일 뿐만 아니라 다른 비자의 경우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 현재 법적으로 예술흥행비자, 내항선원비자, 산업연수비자, 회화지도비자 신청시에 에이즈검사결과를 제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비전문취업비자, E9)에게도 법적 근거 없이 에이즈검사를 하고 있다. 감염사실이 확인되면 비자발급이 되지 않아 입국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입국한 후에 에이즈감염사실이 확인된 이주민은 비자의 종류와 상관없이 강제 출국되어 치료권, 노동권 등 모든 것을 박탈당한다.

에이즈검사의 원칙

UNAIDS/WHO는 HIV 검사에 대해 ‘3Cs' 원칙(Confidential, Counselling, Consent) 즉, 비밀이 보장되어야 하고, 상담이 수반되어야 하며, 수검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준수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공중보건상의 이유로 개개인에게 강제검진을 시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발적 검사가 HIV전염을 막는데 훨씬 효과적임을 강조한다. 1994년 세계보건기구(WHO)의 동아시아 지역 사무소(SEARO)가 발간한 “HIV 검사 정책과 지침(HIV Testing Policy & Guidelines)”에서도 모두에게 HIV 검사를 시켜서 모든 감염인을 확인해야 하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취약 그룹에게라도 검사를 다 시켜야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사람들의 우려에 대해 마약 사용자, 임신한 여성, 성 노동자 등에게 강제 검사는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뿐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강제검진과 집단검진은 검사를 받는 사람이 검사의 필요성을 충분히 숙지하는 것을 가로막고 정서적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며 그 자체로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감염인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타인에게 감염되지 않도록 노력할 때 실질적인 예방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무조건 검사를 많이 하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상담 및 치료서비스와 연계되지 않은 채 검사"만"을 강요하는 것은 잠재적 감염인에게 절망만을 안겨주는 것이고, 또한 강제적 검진은 당사자의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는 감염인에 대한 색출과 격리의 의도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채용신체검사나 직장검진, 비자신청시의 검진처럼 에이즈 감염 확인 즉시 피해를 당하기도 하고, 그 기록이 평생 국방부와 질병관리본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남는 것 자체가 심리적 압박을 갖게 하고 정책의 변화에 따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3C원칙'이 지켜지는 에이즈검사를 하는 것은 감염인의 노동권을 확보하기위한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