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인권] 생명권, 끝나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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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인권] 생명권, 끝나지 않은 이야기
  • 권미란(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 승인 2009.08.2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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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에서 일하고 있다. 6월에 어렵게 오셀타미비르(상품명 타미플루) 2통(2인분)을 구해 놨다. 그 후로 처방전을 들고 온 분들이 여럿 계셨다. 대부분 연세가 드신 분들이었는데 해외여행을 가기에 앞서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처방을 받았던 것이다. 그 때마다 약장에서 타미플루를 꺼냈다가 다시 넣어두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이유는 약값 때문이었다. 1명이 복용해야할 타미플루 10알의 가격은 3만원이 좀 넘는다. 신종플루에 감염이 된 것으로 확인이 되면 보험적용이 되지만 비축을 위해서는 보험적용이 안된다. 그래서 타미플루 처방을 받아온 분들은 3만원이 넘는 약값이 부담이 되어 그냥 돌아갔다. 3만원이 좀 넘는 약값이 누구에게는 별것 아닌 것일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이 분들이 타미플루를 처방받았던 이유는 자신들이 신종플루에 감염될 가능성이 어떠할지 전혀 알 수가 없고 타미플루가 전 세계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뉴스를 통해 다 알기 때문인데 약값 때문에 멈칫한 것이다.

타미플루 비상

타미플루는 초국적제약회사 로슈(Roche)사가 독점판매하고 있다. 특허제도로 인해 다른 회사는 타미플루와 같은 약을 생산, 판매할 수 없다. 2005년에 조류독감 때문에 타미플루의 생산량이 문제가 되었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조류독감 대책으로 최소한 전체인구의 20%에 해당하는 만큼 항바이러스제를 확보하도록 권고해왔다. 그러나 2005년 당시 로슈사의 생산시설로는 최대한 가동해도 전 세계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약제를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강제실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세계 곳곳의 노동, 사회단체에서 제기되었다.

특허의약품에 대한 강제실시는 특허권자의 사익과 공공의 이익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특허제도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조치로 특허권자만 독점 생산할 수 있는 약을 제3자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이다. 즉 특허남용으로 사람이 죽어갈 때 그 폐해를 막기 위해 있는 제도이다. 로슈사에 로열티를 주는 대신 우리에게도 똑같은 약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특허권에 대한 양보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슈사가 독점판매권을 가진 이상 전 세계인구의 20%에 필요한 타미플루를 빠른 시간 내에 생산하고 이를 부담 가능한 가격으로 공급받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신종 플루로 사망한 사례가 며칠째 보도되고,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코앞에 있으니 제때에 치료받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기술 발전 방해하는 특허권

타미플루의 경우 생산량이 필요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니 로슈가 무상공급을 일시적으로라도 할리 만무하며, 국내 제약회사들이 타미플루와 같은 약을 생산할 능력이 있다는 것은 이미 2005년에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타미플루는 강제실시를 하여 충분한 양을 생산하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에이즈치료제 푸제온에 대한 강제실시 청구가 기각된 사례에 비추어보면 우려가 크다. 푸제온은 2004년 11월에 우리나라에 보험등재 되었지만 로슈사가 약값이 마음에 안든다며 4년이 넘도록 공급하지 않았다. 로슈는 모언론에 “의약품 공급에 관한 문제는 해당 국가 국민이 해당 의약품을 구매할 능력이 되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연간 2200만원으로 푸제온을 구매할 능력이 없는 환자들은 푸제온을 사용할 자격이 없다는 말이냐고, 우리가 왜 1년에 2200만 원을 내야만 하는지 우리를 납득시켜보라고 했다. 로슈 사장은 "모른다"고 대답하고는 2200만원 미만으로는 절대 공급 못 한다는 말을 던지고는 나가버렸다. 왜 2200만원인지는 따지지도 묻지도 않아도 되는 것, 구매력이 없는 환자는 푸제온을 이용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정당화시켜주는 것이 특허권이었다.

또한 특허는 푸제온을 싸게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을 방해한다. 그동안 로슈가 푸제온의 ‘생산과정이 복잡하여 고비용이 소요되며, 연간생산량이 한정되어 있어’ 푸제온의 약값을 비싸게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 왔다. 전 세계 4000만명이 넘는 HIV감염인들 중 일부 감염인들이 지금 당장 혹은 미래에 푸제온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로슈는 생산과정이 복잡하여 연간생산량이 한정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2004년에 코바이오텍(주)은 과학기술부의 21세기 프론티어 미생물유전체활용기술개발사업의 일환으로 푸제온을 간편하게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로슈는 푸제온을 106공정의 화학합성법으로 만들고 있으나 코바이오텍은 생산공정을 10여번으로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여 푸제온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코바이오텍은 로슈에 이 기술을 판매하려고 했으나 로슈가 거절하였다. 그러나 푸제온 생산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로슈가 갖고 있어서 코바이오텍이 독자적으로 이 기술을 이용할 수 없다. 세금으로 지원되어 개발된 이 기술은 활용되지 못하고 사장되었다. 로슈의 독점판매권에 의존해서는 앞으로도 푸제온을 사용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에 작년 12월에 강제실시를 청구하게 되었다.

푸제온 강제실시 기각이 남긴 교훈

그러나 특허청은 올해 6월 19일에 푸제온 강제실시를 기각했다. “푸제온은 일부 에이즈환자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서 환자의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므로 푸제온의 공급을 위한 조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다”면서도 말이다. 푸제온 강제실시가 기각된 표면적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푸제온이 무상공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제실시가 청구되고 2달이 지날 무렵 로슈 본사는 한국에서 ‘동정적 접근 프로그램(compassionate access programme)’을 시작한다고 통보했다. 푸제온을 무상으로 주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청구인들 즉 시민사회단체는 푸제온과 같은 약을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무상공급은 로슈가 스스로 밝혔듯이 ‘임시적 조치’에 불과하며 로슈의 이익을 위해 언제 끊길지 모르는 그야말로 ‘로슈마음대로 프로그램’이다. 중단하면 그만이다. 중단하겠다는 위협으로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은 다른 사례에서도 충분히 보아왔다. 강제실시를 청구한 시민사회단체가 당장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위탁생산과 수입을 고려하고 있었다. 공공제약회사가 아닌 사기업들이 강제실시가 확정된 것도 아닌데 푸제온과 같은 약을 생산하겠다고 약속할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푸제온이 치료에 반드시 필요한 약이고 따라서 공급되어야한다는 점은 복지부도 특허청도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화되지 못했던 이유는 특허제도와 약가제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 때문이므로 푸제온이 에이즈환자만의 문제로 한정될 수 없다. 그래서 푸제온 강제실시가 남긴 교훈은 더욱 소중하다. 첫째는 공적인 재원에 의해 공공목적을 위해 운영되는 제약기업을 설립하여, 치료제를 연구, 개발, 생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강제실시가 허락되더라도 초국적제약회사와 여러 의약품으로 이해관계에 얽혀있고, 특허소송 등에 매일까 두려워하는 사기업 제약회사들은 긴급한 시기에도 강제실시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강제실시를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특허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필수의약품의 공급을 거부하는 경우 제약회사에 패널티를 가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의 마련이다.

이윤보다 생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선방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있다. 타미플루든 이보다 더한 사회적 여론과 필요가 제기된 약이라 할지라도 강제실시가 허락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허청은 ‘비싼 약값’ 때문에 약의 공급이 중단되거나 환자들이 사먹을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 특허권을 제한할 경우 발명실시의 보호라는 특허권의 본질적 내용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판단의 의미는 특허권과 생명권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특허권이 우선하며, 특허로 보장된 독점권 때문에 비싼 약값은 제약회사의 ‘재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강제실시를 하면 통상압력을 받게 되고 국내제약사가 수출하는데 지장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 푸제온 강제실시가 기각된 실질적인 이유다. ‘이윤보다 생명이다’라는 구호가 추상적이면서도 가장 구체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