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본부, 개인 블로그 삭제 요청 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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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본부, 개인 블로그 삭제 요청 물의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9.09.0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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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블로거 폭로... "군 비판·욕설글 삭제" 쪽지 받아
▲ 육군사이버순찰대 소속 병사가 다음의 한 블로거에게 보낸 쪽지. 군 비판 글 등을 삭제해 달라는 요구가 담겨 있다. ⓒ 블로거 '파리꼬뮌'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예하부대로 사이버방호사령부가 창설되고 있는 가운데, 육군사이버순찰대가 개인블로그까지 검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예상된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파리꼬뮌'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 블로거는 지난 8월 25일 육군사이버순찰대가 자신이 쓴 군 비판 글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4일 주장했다.

이 블로거는 "사실 이 사실을 덮어두려고 했다"며 "하지만 기무사가 사이버사령부를 창설한다는 기사를 보고 이것을 덮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이 패킷감청을 하고, 경찰이 인터넷 댓글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데 이어 군대까지 인터넷사찰을 하고 있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사이버방호사령부 창설에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군 비판글 다수 발견... 삭제해 달라"

이 블로거에 따르면, 지난 8월 25일 오전 7시 55분 자신이 블로그에 한통의 쪽지가 도착했다. 쪽지에 담긴 내용은 이랬다.

"안녕하십니까. 육군사이버순찰대 ××사단 상병 ○○○입니다. 귀하의 블로그에서 군 비판, 욕설하는 글이 다수 발견되었고, 그 글은 군 기강을 문란, 해이를 야기시킬 수 있으므로 삭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그는 "우선 사이버경찰청이나 사이버수사대라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사이버순찰대라는 이름은 처음 접했고, 쪽지를 보낸 사람이 자신을 현역 군인으로 소개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며 "더욱이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던 필자의 경우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이렇게 장난처럼 쪽지를 보내는 행태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쪽지를 받은 뒤 이 블로거는 국방부에 문의를 했지만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국 육군본부에 문의한 결과 자신에게 보내진 쪽지가 '장난'이 아닌 '사실'이었음을 확인했다.

그는 "담당 하사관은 국방부장관 지시로 군대에 대한 비하 등의 내용을 담은 글을 추적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며 "군대가 자신들의 임무를 망각하고,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부분 다녀오는 군대고, 술 한잔 마시는 자리라면 욕하는 게 군대인데, 그것을 블로그에 올렸다고 그 글을 추적한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고 어이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육본에 문의할 당시 담당 하사관은 "삭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강제사항은 아니라 상관없다"고 답변했다고 이 블로거는 전했다.

그는 "개인 친분이 있는 몇몇 특정정당에서 일하는 분들에게도 자문을 구했고, 정치사회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님들에게도 자문을 구했다"며 "일각에서는 몸조심하라며 글을 삭제하는 게 좋다는 충고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법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강제사항은 아니라고 해서 그쪽 생각은 접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무리 강제사항이 아닌, 작성자에게 개별연락을 해서 자진 삭제토록 하는 권유사항이라도 어떤 글이 어떻게 잘못되었다는 말 없이, 블로그 문을 닫아야 하는 것처럼 쪽지를 보낸 모습에 아직까지 국민과 함께 하는 군대가 아닌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하는 군대의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블로거는 최근 기무사가 사이버방호사령부를 창설한다는 보도를 접한 뒤 육군사이버순찰대의 검열 사실을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경찰과 검찰을 동원해서 이미 몇 번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동을 취했다"며 "이제는 군대를 동원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특정정당이나 단체에 속해 있지 않고,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라고 소개한 뒤 "제 블로그의 글을 읽는 것은 좋지만 불펌은 금지한다"고 공지했다.

이 블로거는 육본의 블로그 사찰을 4일 오후 3시께 단문형 블로그 서비스인 트위터를 통해 처음 알렸다. 그는 "육군에서도 블로그를 사찰하고 검열하고 있다, 제가 육본에서 제 블로그 글을 삭제하라는 쪽지를 받았다"는 글을 올렸다.

이러한 내용을 가장 먼저 알게 된 이지안 진보신당 부대변인은 "우리는 검경은 물론 군대까지 동원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국민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이명박 정부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이명박 정부가 아무리 독재정부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군사'독재는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라고 논평했다.

야당, 사이버사령부 창설에 비판 "도둑질 들키니 강도질하겠다?"

▲ '파리꼬뮌'이란 이름의 블로거는 4일 오후 3시께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육군의 블로그 사찰 사실을 알렸다. ⓒ 트위터


기무사가 진보정당 간부와 그림책 작가 등 민간인을 불법사찰한 데 이어 사이버방호사령부 창설을 시도하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기무사 예하부대로 창설될 사이버방호사령부는 기무사의 정보전대응센터 80여 명, 사이버 보안인력 100여 명, 육·해·공군 내 보안인력 240여 명 등 총 500명 규모로 구성될 예정이다. 조직은 사이버테러 탐지와 대응을 맡는 '정보보호단'과 사이버방어훈련을 하는 '기술훈련단'으로 구성된다. 사령관은 소장으로 하고 대령 6명에게 주요보직을 맡길 계획으로 알려졌다.

사이버방호사령부는 사이버테러 방어(평시)와 해킹 공격(전시)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국정원과 검찰, 경찰 등이 인터넷 여론 동향을 파악하는 등 사실상 '인터넷사찰'을 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사이버방호사령부의 민간인 사찰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이버 테러 대응이라는 명분이라면 합참 정보본부 예하에 사이버방호사령부를 설치하는 게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기무사에 설치하는 데에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

사이버방호사령부를 기무사 예하부대로 창설한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은 일제히 비판 논평을 내놓았다.

김현 민주당 부대변인은 "기무사마저 국내 방첩기능을 넘어서 사이버 보안을 확대하겠다고 나서고 있다"며 "500여 명의 몸집을 불리겠다는 것도 문제거니와 민간인에 대한 사이버 사찰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부대변인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권력기관의 충성경쟁에 대한민국이 거꾸로 가고 있다"며 "이들이 국민을 감시하고 탄압해 통제하던 독재정권 방식으로 대한민국을 끌고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성균 민주노동당 부대변인도 "기무사의 사이버사령부가 창설된다면 국정원의 패킷감청과 경찰의 인터넷 비밀사찰에 이르는 이명박 정권의 '사찰 3종세트'가 완성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백 부대변인은 "사이버사령부 창설이 국가 차원의 사이버 테러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군사보안, 방첩, 사찰 등을 기본업무로 하는 기무사가 온라인을 포함한 전방위적인 사찰을 시도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인터넷 사찰은 국가권력이 민간인에 저지르는 사이버 테러"라고 지적했다.

이지안 진보신당 부대변인도 "민간인 사찰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없을망정 아예 해당부대를 만들어 몸집까지 부풀려서 드러내놓고 사찰하겠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이 부대변인은 "더욱이 군내 방첩기능을 넘어 관련 업무를 기무사로 넘기는 군사보안규정 개정도 요구했다니 민간인 사이버 사찰을 일상적으로 벌이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며 "도둑질을 들키니 복면 벗고 강도질하겠다는 태도"라고 꼬집었다.



<오마이뉴스> 구영식
09.09.04 18:27 ㅣ최종 업데이트 09.09.04 19:25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10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