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발사자=김훈 중위' 못 밝혔지만 결론은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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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발사자=김훈 중위' 못 밝혔지만 결론은 자살?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9.10.2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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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 불구 군의문사위 21일 '조사불능' 결정 내릴 듯... 유가족 반발
▲ 고 김훈 중위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 경비구역 내 241GP에서 사망한채 발견 된 고 김훈 중위. ⓒ 김척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군의문사위)가 대표적 군의문사 사건인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21일 '조사불능' 결정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군 의문사위 결정은 "김 중위가 총기 자살했다"는 군 당국의 발표에 힘을 싣어주는 것이지만, <오마이뉴스>는 문제의 총기 발사자를 김 중위로 예단할 수 없다는 내용의 국과수 보고서를 새롭게 입수했다.

김 중위의 유족들도 "당시 군 수사당국이 자살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 총기시험 결과를 은폐하고 공문서에 허위사실을 기록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등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1998년 2월 24일 김 중위 사망 직후 1차 수사를 담당했던 미군 범죄수사대는 현장에서 발견된 권총(M9 베레타)과 실탄, 탄피 등의 유류품을 미 육군성 범죄수사연구소로 보내 감식을 의뢰해 그 결과를 통보 받았다.

부검을 담당한 한국군 군의관은 "김훈 중위는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발사하였다"고 했지만 미군은 이 문서에 '사망자의 왼손바닥에서만 화약이 검출된 것으로 보아 스스로 쏘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특별한 주의 문구를 명시했다.

미군 "스스로 쏘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돼"

▲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감정서 1999년 2월 6일 작성된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서에는 1999년 1월 25일 특수전학교 실내사격장에서 실시된 '뇌관화약 잔사 확인 시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3명의 실험 참가자 모두 방아쇠를 당긴 오른손에서 뇌관화약 성분이 검출되었고(양성), 전투복 좌?우측 팔부위에서 무연화약 반응이 나타났다. ⓒ 김도균


김 중위의 왼손 바닥에서 발견된 화약은 '바륨'과 '안티몬' 등 뇌관화약 성분으로, 이것은 탄환의 추진제 역할을 하는 무연화약과는 다른 성분이다. 권총을 발사할 때 총구로는 탄환과 함께 미처 타지 못한 무연화약 입자 및 기타 연소 잔유물이 분출되고, 탄피 배출구로는 뇌관화약이 연소되고 남은 성분인 바륨과 안티몬, 납 등의 금속 성분이 배출된다. 이때 뇌관화약은 무연화약보다 양이 훨씬 적어 총기의 탄피 방출구, 즉 방아쇠를 격발한 손 주변에만 남게 된다.

이 때문에 권총 사망 사건의 경우 발사자(용의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권총을 발사한 사람의 손에 묻은 뇌관화약 성분인 바륨과 안티몬 등을 채취하여 분석하는 '뇌관화약 잔사 확인시험'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방법은 김 중위의 유류품을 감식한 미 육군성 범죄수사연구소 뿐 아니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아래 국과수)와 국방부 조사본부 등 전 세계적으로 범죄 감식기관이 권총 발사자를 식별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 국방부 특조단 수사결과 발표문 당시 특조단이 발표한 증거물품 감정결과에는 "김 중위의 야전잠바 좌?우측 어깨에서 화약성분이 검출되었으며, 이는 김 중위가 사격하였음을 의미"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 김도균


오른손잡이인 김 중위가 방아쇠를 당겼다면 오른손 손등에 뇌관화약 성분이 검출 되어야 하는데, 미 육군성 과학수사연구소는 그의 왼손바닥에서만 뇌관화약이 발견된 점에 유의해 '자살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사인을 자살로 단정하고 수사를 진행했던 1군단 헌병대(1차 수사), 육군 고등 검찰단(2차 수사), 국방부 특별 합동조사단(3차 수사, 아래 특조단)은 "김 중위의 왼손 바닥의 화약잔재로 보아 총구를 고정하기 위하여 왼손으로 총열을 잡고 발사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즉, 왼손으로 탄피 배출구가 있는 총열을 잡고 방아쇠를 당겼기 때문에 왼손에서 뇌관화약이 검출되었다는 것이다. 미 육군성 과학수사연구소가 작성한 '왼손의 뇌관화약성분을 근거로 자살로 단정해선 안 된다'는 주의사항을 거꾸로 '왼손에 뇌관화약성분이 있으니 김 중위가 왼손으로 총열을 잡고 발사하였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단정해 버린 셈이다.

노여수 박사 "자신에게 겨눠진 총 막는 과정에서 생긴 방어 흔적일 것"

하지만 당시 뉴욕 주정부 소속 법의학자로 30여 년 동안 1천구가 넘는 권총 사망자 시신을 부검하고 사인을 분석한 경험이 있는 노여수 박사는 김훈 중위의 왼손에서 발견된 뇌관화약성분은 '자신에게 겨눠진 총을 막는 과정에서 생긴 방어 흔적'(디펜스 제스춰)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근거로 노 박사는 "부검내용, 사건현장 비디오와 관련 서류 등 증거물을 검토한 후 자살을 뒷받침하는 법의학적 증거는 없다"며 '자살로 교묘히 위장된, 전문가에 의한 권총 타살'이라는 소견을 제시한 바 있다.

또 특조단은 김 중위의 오른손에서 화약잔재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로 '화약잔재는 38%밖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통계를 들어 설명했다. 방아쇠를 당긴 손에서 화약잔재가 남을 확률이 38%라는 통계는 권총의 종류와 장소, 기온, 대기 상태 등을 감안하지 않은 일반적 자료일 뿐이다.

특조단 수사결과 발표문에는 1998년 12월 18일 '김훈 중위가 숨진 241GP내 3번 지하진지에서 두꺼운 거즈뭉치를 모래주머니 사이에 끼워 넣고 권총으로 사격한 다음, 총기발사자의 피복과 양손을 솜으로 닦아 국과수에 감정 의뢰한 결과 피복 및 양손에서 화약잔재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김훈 중위의 유족들은 이 실험은 의도적으로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거즈 속에 총구를 끼워놓고 쏘았기 때문에(자살자의 전형적 특징인 밀착사, 하지만 김 중위의 두개골 부검 결과 총을 꼭 붙이고 쏘는 밀착사가 아닌 근접사의 특징이 나타났다) 화약이 검출되지 않았고, 실험 당시 사진에는 실험자가 와이셔츠를 입고 쏜 것으로 나타나 있지만 국과수에 감정의뢰된 것은 야전상의 2벌이라는 것이다.

당시 특조단이 작성한 '총기 시험 결과' 문서를 보면 "총성청취 및 화약 잔재 여부 확인"을 위해 3회에 걸쳐 실탄을 발사한 것으로 되어있지만, 첨부된 증거자료 중 '총성 실험 장면' 사진은 유족 주장대로 와이셔츠 차림의 남성이 거즈 속에 권총 총구를 넣고 총을 쏜 것으로 나타나 있다.

▲ 특조단이 주장하는 김훈 중위의 자살자세 특조단은 김 중위가 오른손으로 방아쇠를 당기고 왼손으로는 총몸을 꼭 잡았기 때문에 왼손에만 뇌관화약 성분이 묻었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 김도균


유족들은 다른 실험에는 발사할 때마다 발사 당시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는데, 유독 이 실험에만 화약잔재 시험에 대한 사진 없이 총성 실험 사진만 첨부되었다는 점을 들어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군의문사위는 유족들의 의문제기에 "당시 실험에 참가했던 2명의 수사관을 수소문했지만 1명은 이미 사망했고, 다른 한 명은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사실 확인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특조단은 김 중위가 사망한 벙커의 환경, 사격 자세와 동일한 조건에서 3번의 '뇌관화약 잔사 확인시험'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1998년 10월 2일(1명), 1999년 2월 6일(3명), 2000년 1월 28일(3명) 각각 국과수에서 감정한 내용에 따르면 3차례에 걸쳐 모두 7명이 M9 베레타 권총으로 사격을 하고 시료를 채취·검사한 결과 전원이 방아쇠를 당긴 손으로부터 바륨과 안티몬이 나왔고, 한명의 예외 없이 좌·우 팔 부위에서 무연화약이 검출되었다(김훈 중위의 좌·우 팔 부위에서는 무연화약 검출 안 됨).

1999년 4월 15일의 특조단 수사결과 발표 이전에만도 2회에 걸쳐 4명이 사격하여 100% 동일한 시험결과를 얻었는데도, 의도적으로 자살 결론을 유도하는 일반적 통계만을 제시한 것이다. 당시 군은 "법의학교과서에 따르면 예외도 있다"면서 이 시험결과를 묵살해 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 특조단은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부 물리분석과 이OO 등 3명이 재감정결과, 김 중위의 야전잠바 좌·우측 어깨에서 화약성분이 검출되었으며, 이는 김 중위가 사격하였음을 의미"(수사결과 보고서 31 페이지)한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1998년 10월 2일자 국과수 문서(문서번호 물리 61112-17899)에는 "본 감정건의 경우 변사자의 야전상의 좌‧우측 어깨 부위에서 무연화약 성분은 검출되나, 팔 부위에서 화약성분이 검출되지 않고, 변사자의 좌‧우측 손바닥 및 손등에서의 화약성분 검출 여부를 알 수 없으므로, 제시된 증거물의 시험결과만으로는 발사자가 변사자 자신인지에 대해서는 논단할 수 없음"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재 감정문서(문서번호 물리 61112-17899) 1998년 10월 2일자 국과수 문서는 "본 감정건의 경우 변사자의 야전상의 좌·우측 어깨 부위에서 무연화약 성분은 검출되나, (중략) 제시된 증거물의 시험결과만으로는 발사자가 변사자 자신인지에 대해서는 논단할 수 없음"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 김도균


즉 '김 중위의 야전상의 좌·우측 어깨 부위에서 발견된 무연화약의 존재로는 자살 여부를 알 수 없다'는 국과수의 판단을 인용하면서 특조단은 '야전잠바 좌·우측 어깨에서 화약성분이 검출되었으며, 이는 김 중위가 사격하였음을 의미'한다고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자살을 뒷받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허위 사실을 발표했다는 혐의를 받는 대목이다.

특조단의 수사결과 발표 이후 김훈 중위 유가족들은 '군 수사기관이 제대로 직무를 수행하지 않아 유가족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요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서 1심에서는 패소했지만 2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항소심 재판부 "군 수사기관, 진상규명 의지 있었는지 의문"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김훈이 사망하자마자 미군측과 부대원을 통하여 자살로 성급히 판단되었고, 이에 따라 당일 언론을 통해 김훈이 자살했다는 보도가 나왔으며, 부검을 담당한 군의관은 부검 직후 자살로 예단한 사체검안서를 작성하는 등 사건발생 초기부터 제대로 된 조사나 수사 없이 김훈이 자살한 것이라는 예단이 부대 내·외부에 지배적이었고, 그런 정황이 수사기관의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바, 과연 군 수사기관에 진상규명의 의지가 있기나 하였던 것인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06년 12월 13일 대법원도 "초동수사를 담당한 군 사법경찰관은 현장 조사와 보존을 소홀히 하고 주요 증거품을 확보하는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소대원들의 알리바이 조사도 상당기간이 지난 뒤 형식적으로 하는 등 잘못이 적지 않다"고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그러나 군 수사기관이 고의로 사건을 은폐 또는 조작했다거나 2차, 3차 수사도 잘못됐다는 유족측 상고이유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6년 5월24일 김 중위의 아버지 김척(65·예비역 육군 중장)씨는 아들의 사인을 정확히 밝혀달라며 군의문사위에 진정을 접수했고, 군의문사위는 같은 해 12월 "사건 발생 8년여 동안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김 중위 사건에 대한 조사 개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년 10개월의 조사에도 군의문사위가 조사불능 결정을 내리게 되면 김훈 중위의 사망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다시 유족들의 몫으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민사소송에서 김훈 중위 유족측의 변론을 맡았던 이덕우 변호사(법무법인 창조)는 "이번에 새롭게 밝혀진 사실도 유족들이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얻어진 것"이라며 "군의문사위가 조사불능으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조사했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변호사는 "군의문사위의 결정과 상관없이 재심 사유들을 수집하여 다시 법정에서 진실을 가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 12월로 활동기간이 종료되는 군의문사위는 21일 오전부터 상임위 마지막 회의를 열고 김훈 중위 사건을 비롯한 44건의 군의문사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심의할 예정이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
09.10.21 10:33 ㅣ최종 업데이트 09.10.21 10:53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42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