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인권] 한국 스포츠계, 일그러진 욕망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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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인권] 한국 스포츠계, 일그러진 욕망에서 벗어나라!
  • 지현(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회 활동가)
  • 승인 2009.10.23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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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매를 맞지 않고 운동한 날이 없다.” 몇 해 전 한 어린 국가대표 선수의 고백이다. 당시 이 고백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한편으로는 “정말 그럴까?”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고백은 “사실”이었고, 현재도 유효하다. 오늘 이 순간에도 지도자들은 ‘관행’이라는 어이없는 변명으로 선수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여 선수들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 그리고 ‘지도’를 명분으로 갖은 요구와 협박을 일삼고 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선수들은 폭력/성폭력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이처럼 한국 스포츠계는 “인권유린의 독보적인 장”이라 하여도 부족함이 없을 지경이다.

“맞을 만해서 맞는” 선수들

이런 선수들의 고백이 알려지게 되는 과정은 신기할 정도로 비슷하다. 일단 사건은 언제나 한동안 감춰져 있다가, 제보 혹은 언론에 의해 뒤늦게 발각된다. 가해자는 참으로 뻔뻔하다. “맞을 만해서” 맞는단다. “맞으면서 훈련해야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단다. 도대체 상식이라고는 통하질 않는다. 그 다음에는 관련 협회의 유감표명과 자정노력을 발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가해자에게는 솜방망이보다 더 가벼운 징계가 내려지고, 시간이 지나면 가해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현장으로 당당하게 복귀한다. 그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축소하고, 눈물겨운 동료애를 보여주는 ‘패거리주의’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암담한 현실에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이것이 한국 스포츠계에 만연한 폭력성의 공식이자 현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한숨짓게 만드는 것은 이토록 만연한 폭력/성폭력 문제가 도무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토록 비상식적이고 반인권적인 행위들이 버젓이 통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는 시스템의 문제이다. 한국 스포츠계는 1등이 아니면 취급을 해주지 않는다. 오로지 1등, 금메달만이 살 길이다. 이러한 일그러진 욕망은 결국 1등을 해야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고, 국가대표가 될 수 있고, 먹고 살 길이 열리는 그런 시스템을 낳았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운동만 한다. ‘혹독하게’ 훈련시킨다. 이를 위해 강압적인 훈련방법은 필수이며, 이것이 더욱 효율적으로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때려서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또래의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운동부 선수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세상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도 이들에게는 모조리 쓸모없는 것이다. 다른 세상을 알게 되면 운동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동선수는 운동만 잘하면 되지, 다른 공부는 필요가 없다고 한다. (여기서 공부는 국영수 중심의 그렇고 그런 공부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살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공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해도 ‘다’ 필요 없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훈련을 명분삼아, 함께 먹고 자고 운동할 수 있는 합숙을 당연시 여긴다. 합숙은 지도자가 선수의 사생활을 통제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좋은 성적과 훌륭한 선수를 만들어 내기 위해 강제된 것이 합숙인 만큼, 그 생활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상상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이처럼 한국 스포츠계는 선수들을 어릴 때부터 세상과 격리시키고, 이들이 누릴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너무도 당연시 한다.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얼마 전 대한체육회 박용성 회장은 한 언론사 칼럼에서 ‘학교체육법안’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이 법안은 “학생 선수 학습권 보장, 합숙 훈련 금지, 훈련시간 제한, 최저 학력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엘리트 체육과 학교 체육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이 모인 작은 성과가 이 법안으로 반영된 것이다. 한데 한국 스포츠계를 총괄한다는 대한체육회의 수장께서는 이 법안은 쓸데없는 “논란거리”라고 일축해버렸다. 그간 한국 스포츠계의 변화를 위해 노력했던 이들의 성의를 한 방에 날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로 논란거리를 만들고 있을 때 세계 스포츠는 저만치 앞서 간다”며 자꾸만 “선진국” 타령만 하신다. 궁금하다. 도대체 어느 선진국이 ‘때려가며’ 운동선수를 양성하고 있을까? 운동은 운동부 선수만 하는 학교 체육의 현실은 어느 선진국을 따라한 걸까? 한국 스포츠계 수장부터 이러한 사고에 갇혀, 스포츠 본연의 의미를 망각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양산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올바르게 고쳐나가는 데는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인권 감수성과 양립할 수 없는 스포츠계 위계질서

한국 스포츠계의 폭력/성폭력이 만연하는 비상식적이고 반인권적인 행태를 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인권적 감수성의 결여이다. 아니 결여보다 “무지”가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앞선 내용에서도 예상할 수 있듯이, 한국 스포츠계 시스템은 철저한 위계질서를 기본으로 한다. 소위 윗사람이 하라면 해야 한다. 그 무엇이든! 이러한 위계질서는 상대를 동등한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못된 버릇을 만들었다. 이런 관계 속에서 “인권”이라는 말은 있을 자리가 없다. 언급하기도 무색할 지경이다.

지난 9월 대한체육회는 스포츠계 폭력/성폭력을 근절하겠다며 야심차게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보호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다. 그간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안일하다 못해 방관만 하던 대한체육회가 앞장서서 “인권”을 말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놀라움도 잠시 뿐이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한국 스포츠계의 인권에 대한 무지함을 여실히 증명시켜 준 꼴밖에는 되지 않았다. 가이드라인은 선수의 인권을 보호하기 보다는, 오히려 가해자의 범죄행위를 정당화해주는 지침서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폭력/성폭력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적 이해조차 없는 상태여서 논리적 오류는 물론이거니와 상식적인 수준으로도 이해되지 않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회통념상 받아들일 정도” 등의 애매모호한 말로 지도자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고, “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오로지 선수들이 조심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는 사건에 대한 판단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고, 피해자에게 폭력행위의 책임을 전가하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폭력/성폭력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과 악영향을 알려주기 보다는, 사후 조치 중심으로 법적 처벌 규정만 강조하여 위협의 분위기로 일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관련한 절차들은 피해자에게 오히려 2차 가해를 입힐 수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이처럼 약자일 수밖에 없는 선수들의 입장을 조금도 반영하지 않았기에 이번 가이드라인은 결국 “가해자”를 위한 지침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인권보호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유의미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논리적 오류로 가득한 수많은 내용을 나열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스포츠계의 현실에 대한 냉정한 분석에서부터 출발해야 했다. 또한 이것이 “왜 스포츠 현장에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관련 주체들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여, 이를 계기로 실질적인 변화의 지점을 찾아가는 동기를 마련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 가이드라인은 한국 스포츠계의 인권에 대한 무지함만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을 뿐,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는 무의미함 그 자체였다.

1등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스포츠

이토록 만연하다 못해 경각심조차 없는 한국 스포츠계의 폭력/성폭력 문제가 근절되기 위해서는 가야할 길이 멀다. 앞서 언급했던 스포츠 현장에서 폭력/성폭력은 대부분 훈련과정과 합숙생활에서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성적지상주의(엘리트체육)라는 일그러진 욕망이 빚어낸 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인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한국 스포츠계의 시스템적 문제가 마치 “문제”가 아닌 것 마냥, 이미 수 십 년간 너무도 당연하게 구축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안에 일어나는 올바르지 못한 모든 행태들이 어이없게도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 시스템 속에서 가해자는 또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지만, 피해자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불행한 현실이 방조되고 있다. 이러한 인권에 대한 무지함은 고질적인 병폐를 더욱 악화시키며, 악순환을 부추기고 있다.

스포츠는 1등을 위함이 아니라, 다양한 신체적 활동을 통해 모든 이들이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영위하기 위함이다. 타인에게 신체적, 정신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음을 인지하여야 할 것이다. 폭력으로 권위와 권력을 남용하여 약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스포츠는 이미 스포츠가 아니다. 그렇기에 더 이상 시대에 역행하는 비상식적인 집단으로 남지 않기 위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성적이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인식과 조직의 안위를 위한 쓸데없는 동료애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 선수에 대한 지도자의 태도, 인권과 스포츠에 대한 인식의 변화 또한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바탕으로, 한국 스포츠계의 시스템 문제가 야기하는 폭력/성폭력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필요하다.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현실적인 구조상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선수들의 입장에 대한 고려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공유하는 과정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는 “인권은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기본적인 권리이자 보편적인 가치”라는 지극히도 상식적인 수준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지도자와 선수의 관계가 주인과 노예처럼 주종의 관계가 되는, 그런 몰상식함이 더 이상 통용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가해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재발방지를 위한 철저한 방안을 수립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문제 혹은 갈등을 해결하는 훈련의 과정이다. 왜냐하면 스포츠 현장에서 발생 한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 당사자 간의 개인적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관련 주체들이 함께 공유하고 해결하여야 할 공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록 시간이 걸릴지라도, 대단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는 지금 상황에서 더 이상 한국 스포츠계가 시대에 역행하는 비상식적인 집단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이며 “시대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만이 한국 스포츠계의 일그러진 욕망이 빚어낸 모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