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예비역 3성장군의 11년 절규
"내 아들 김훈은 자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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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비역 3성장군의 11년 절규
"내 아들 김훈은 자살하지 않았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9.11.0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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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척 예비역 중장 "군의문사위 '조사 불능' 결정 너무 실망스러워"
▲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 241GP에서 사망한채 발견 된 고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씨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커피숍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사건 당시 발견 된 김 중위의 현장사진을 보이고 있다. ⓒ 유성호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선 잊혔지만,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밝히려는 아버지의 노력은 11년째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241GP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고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65) 예비역 중장. 36년을 군문에서 보내고 1군단장과 3군 부사령관을 끝으로 예편한 그는 아직도 죽음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세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30일, <오마이뉴스>는 최근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군의문사위)의 조사결과를 통보받은 김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군의문사위가 사실상 진상을 규명하기 어렵다는 '조사 불능'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통보를 받았나.

"아직 결정문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 주 조사를 담당했던 군의문사위 조사 1과장에게 '조사 불능' 결정이 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다. 군의문사위는 3년 가까이 이 사건을 조사해 놓고도 사법부와 국회의 판단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결과를 내놓았다. 나는 군의문사위가 이런 조사결과를 내놓을 것을 미리 예상하고 그동안 여러 차례 제대로 조사를 해달라는 요구를 내용증명으로 보냈다. 하지만 군의문사위는 한 번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조사하지 않았다."

▲ 고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씨가 미 육군성 범죄수사연구소에서 자살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감정서를 보내왔다며 진상규명을 위해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 군의문사위의 조사결과를 믿지 못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군에서는 3차에 걸쳐 김 중위가 자살했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수사를 진행했고, 3차수사를 담당했던 국방부 특별조사단은 거짓으로 문서까지 조작하여 김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몰아갔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사고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권총과 실탄, 탄피와 옷가지를 감식한 미 육군성 범죄수사연구소는 자살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감정서를 보내왔다. 아들의 옷을 재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도 '변사자의 야전상의 좌우측 어깨 부위에서 무연 화약성분은 검출되나 팔 부위에서는 검출되지 않고, 좌우 손바닥 및 손등에서는 화약성분 검출 여부를 알 수 없으므로 제시된 증거물의 시험 결과만으로는 발사자가 변사자 자신인지에 대해서 논단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두 전문 기관이 모두 '변사자가 스스로 쏘지 않았다' 혹은 '스스로 쏘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특조단은 자살결론을 내리기 위해 이 문서를 조작했다. 수사발표문에 '국과수 재감정 결과 김 중위의 야전 점퍼 좌우측 어깨에서 화약성분이 검출되었으며 이는 김 중위가 사격하였음을 의미한다'고 쓴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왜곡할 수 있는가? 이것은 범죄 행위다. 군의문사위에도 특조단의 수사가 이처럼 의혹이 많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하며 꼭 조사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한 번도 조사하지 않았다."

▲ 국과수 재감정보고서와 특조단 수사결과 발표문 1998년 10월 2일자 국과수(좌) 문서는 "본 감정건의 경우 변사자의 야전상의 좌·우측 어깨 부위에서 무연화약 성분은 검출되나, (중략) 제시된 증거물의 시험결과만으로는 발사자가 변사자 자신인지에 대해서는 논단할 수 없음"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우)같은 문서를 인용한 국방부 특조단 조사결과 발표는 "김 중위의 야전잠바 좌우측 어깨에서 화약성분이 검출되었으며, 이는 김 중위가 사격하였음을 의미"한다고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 김도균


- 유족 측의 의문사항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은 데 대한 군의문사위의 해명이 있었나.

"담당 조사팀장도 사견임을 전제로 자신도 조작으로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어떤 위법행위가 있었는지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담당 조사과장은 여러 가지 의견 중 한 부분일 뿐이라며 자신은 조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더라. 이게 말이 되나? 길을 막고 물어보면 100이면 100사람 다 조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다. 난 도대체 군의문사위가 어떤 근거로 명백한 조작사실을 조작이 아니라고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김씨는 목소리를 높여가며 군의문사위의 조사를 조목조목 성토했다. 그는 군의문사위가 사건의 핵심인 자·타살 여부를 판명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사도 게을리했다고 주장했다.

"권총 사망사건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이 누가 방아쇠를 당겼느냐의 문제다. 현장에서 권총과 유류품을 분석한 미군 감정기관은 '김훈 중위가 스스로 쏘았다고 보아선 안 된다'고 했다. 더군다나 국방부 특조단은 당시에 김훈 중위 사망 현장과 비슷한 상황을 재연해 놓고 세 번에 걸쳐 권총 발사 시험을 했다. 그 결과가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100% 김 중위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자살로 몰아가기 위해서 이런 시험결과가 나오면 안 되니까 이런 사실은 쏙 빼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런 부분도 특조단의 군사 작전식으로 자살몰이를 했다는 근거이니 반드시 조사해 달라고 했는데, 이 부분도 묵살 당했다."

김씨가 말한 시험은 사망현장과 비슷한 조건 아래서 같은 종류의 권총으로 방아쇠를 당겼을 때 발사자의 손과 피복 등에 어떤 화약 반응이 나타나는가를 조사하는 '뇌관화약 잔사 반응 시험'을 뜻한다.

즉 방아쇠를 당긴 손에는 총알의 뇌관화약 성분이 남게 되는데, 이를 근거로 실제 발사자를 알아내는 시험이다. 당시 미군 감정서는 오른손잡이인 김 중위가 방아쇠를 당겼다면 오른손 손등에서 뇌관화약 성분이 검출되어야 하는데, 그의 왼손바닥에서만 뇌관화약이 발견된 점에 유의해 '자살로 단정해선 안 된다'고 명시했다. 국방부 특조단이 실시한 3번의 실험에서 발사자 7명 전원은 방아쇠를 당긴 오른손에서 뇌관화약 성분이 검출된 바 있다. 김씨는 이런 시험 결과가 나왔는데도, 수사결과 발표에는 이런 부분이 쏙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3년 가까이 군의문사위의 조사를 지켜보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조사가 진행되어 가고 있다고 느꼈는데, 최근에는 조사가 군 당국의 편을 들어주려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김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결론 내렸던 당시 군 법무조직의 수장이 군의문사위의 상임위원으로 있다. 또 시신을 부검하기도 전에 덮어놓고 아무 근거도 없이 자살로 표기했다가 정정하는 등 부실 부검으로 말썽을 빚었던 당시 부검 군의관이 자문위원으로 있었다. 또 김 중위 사건 조사팀장은 국방부에서 파견된 현역 소령(법무관)이다. 사정이 이런데 제대로 조사를 할 수 있었겠는가?"

김씨의 주장에 대해 군의문사위는 "김훈 중위 사건과 연관된 군 출신들은 일체 조사과정에서 배제했기 때문에 조사의 공정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씨는 또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8월 군의문사위는 해외의 법의학 기관을 섭외해 김 중위 사건에 대한 법의학적 자문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곳이 군 수사 당시 자살 예단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부검 군의관과 관련 있는 곳이었다. 당시에도 이미 자살 결론을 내렸던 군의관에게 유리한 자문을 해주었던 곳이다. 미국에만 수천 개의 법의학 관련 연구소가 있는데, 왜 하필 그곳인가? 분명히 내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자 군의문사위에서는 유족 측과 군 수사당국의 주장을 배제한 제 3의 기관을 선정하겠다고 밝혔는데, 다시 이런 기관을 선정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기만행위다."

군의문사위 측은 이에 대해 "미국 내 법의학 기관 섭외문제는 유족 측의 동의하에 진행된 일이고, 특정 기관이 선정된 것은 미국 변호사의 추천에 따른 것으로 특정목적으로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의문사위에 대한 김훈 중위 유족들의 불신은 뿌리 깊었다.

▲ 고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씨가 군의문사위에서 사건의 자·타살 여부를 판명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사도 게을리 했다며 주장하고 있다. ⓒ 유성호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당시 진상조사 활동을 벌였던 국회 국방위원회 소위원회는 김 중위가 '격무와 스트레스로 자살했다'는 특조단의 조사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고, 사법부도 '군 수사기관이 제대로 직무를 수행하지 않아 유가족의 권리를 침해했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특히 대법원은 "초동수사를 담당한 군 사법경찰관은 현장 조사와 보존을 소홀히 하고 주요 증거품을 확보하는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소대원들의 알리바이 조사도 상당기간이 지난 뒤 형식적으로 하는 등 잘못이 적지 않다"고 판단했다.

"나는 36년, 훈이는 6년 동안 국가와 군을 위해 헌신했다. 하지만 유족들의 억울함을 규명해주어야 할 군은 과학적인 근거 없이 자살로 날조하고, 나와 내 가족들을 모욕해 왔다. 당시 군 수뇌부와 수사 책임자들은 내가 아들을 국립묘지에 보내기 위해 군의 명예를 떨어뜨린다고 비난하고 다녔다. 전우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군에서 묵묵히 업무를 수행하다 억울하게 숨진 장교의 명예도 무시한 비겁한 행위였다.

나는 김 중위 사건이 우리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식을 군에 보냈다가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었던 이 땅의 수많은 군의문사 가족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3성장군의 아들이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다른 가족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반드시 어떤 희생이라도 치러서라도 훈이 죽음의 진상을 밝혀내겠다. 그것이 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김훈 중위 유족들이 정식으로 조사결과를 통보받은 뒤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보인다. 군의문사위에 이의신청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올 12월로 활동기간이 종료되는 군의문사위가 실질적으로 사건을 재조사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2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마치고 뒤돌아 멀어져가는 김척씨의 뒷모습에서 무거운 진실의 무게가 느껴졌다. 이 시간에도 고 김훈 중위의 유골함은 경기도 고양시 벽제의 1군단 헌병대 창고에서 빛바랜 태극기에 덮여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
09.11.02 12:08 ㅣ최종 업데이트 09.11.02 12:0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5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