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인권] 아프간 재파병을 둘러싼 정부의 거짓말과 어리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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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인권] 아프간 재파병을 둘러싼 정부의 거짓말과 어리석음
  • 지은(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
  • 승인 2009.11.25 0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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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한국군 한 명이 ‘테러’로 사망하고, 급기야 선교활동을 하러 간 한국인들이 대량 피랍되는 사건이 터졌다. 당시 정부는 탈레반과의 협상을 통해 차일피일 미루던 한국군 철군을 비롯해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모든 한국인들도 서둘러 철수시켰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2년이 채 안 된 지금, 정부는 아프간 재파병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당시 피랍된 한국인들의 석방 조건으로 파병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 없다며, 현재 추진하는 아프간 재파병 계획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말을 꼬아서 억지를 부리는 것도 민망하지만, 사실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눈 가리고 아웅식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더욱 더 어처구니없다. 정부는 이미 그 사건이 있기 전인 2006년 국정감사에서 ‘아프간에서의 임무는 끝났다’며 국민과 철군을 약속했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어기고 아프간에서 1년 주둔 연장을 추진한 것이었다. 따라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한국군 철군은 정부가 그 누구와도 아닌, 국민과의 약속이자 합의였던 것으로 뒤늦게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아프간 재파병이 민간 재건활동?

정부는 이번 아프간 재파병을 PRT(지역재건팀)와 이를 보호하는 경계병력으로 구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래서 이들이 예전의 동의․다산 부대와는 전혀 다른 순수한 민간 재건활동을 맡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또한 정부의 뻔뻔한 거짓말이다. PRT는 다국적 다기능 민사작전팀으로 이들의 기본 역할은 중앙정부의 영향력 확대, 각종 재건 작업 및 치안 유지를 맡는다. 그러나 미 의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PRT들은 교전이 심하게 벌어지는 지역에서 전투부대와 결합해 적을 상대하는 활동을 수행하는 역할이 많다고 한다. 지금과 같이 현지 치안 상황이 굉장히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PRT이든, 미 전투병이나 ISAF(나토군 소속의 국제안보지원군)이든 크게 구별하기도 힘들다는 말이다.

특히 PRT에 대한 국제 NGO들의 비판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대부분의 국제 인도적 지원 단체들은 PRT의 활동이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PRT와 같은 군과 연계한 인도적 지원 활동을 반대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대표적 구호활동을 펼치는 옥스팜은 다국적군 아래 있는 PRT가 아프가니스탄 국가 발전과 재건을 위한 기술과 자원을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용하고 있어, 오히려 아프가니스탄 정부 스스로 자립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시기를 더 늦추고 있다며 비판해 왔다. 무엇보다 탈레반이 80%이상 장악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PRT 활동자체가 가능하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명히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다. 실제로 올해 2월 아프가니스탄 북부 Balkh 지역의 부족장은 스웨덴 PRT가 6년 동안 이 지역의 평화와 재건에 기여한 바가 없다며, 스웨덴 PRT 철수를 요구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OECD 국가로서, 혹은 국제사회 ‘노블리스 오블리제’로서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미군 및 다국적군을 외세의 일부로서 치부하면서 이들에 대한 반발 감정이 매우 높다. 미군에 의한 아프가니스탄의 평화 진전은 찾아볼 수 없는데, 오히려 이들의 무차별적 공습으로 무고한 민간인 사상자 수만 증가해 현지인들의 분노만 더 커져가는 것이다. 그 어떤 새로운 공병부대든 대민사업을 펼치는 PRT(지방재견팀)이든 간에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는 미국의 점령 정책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비춰지는 것은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요청도 없는데 결정한 파병

한편 미국은 부시 정부 때부터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한국의 추가 지원을 직간접적으로 계속 요청해 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과 같은 재파병에 대해서는 절대 공식적으로 요청한 적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미국의 요청도 없는 아프가니스탄 재파병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왜 하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미국의 상황이 그렇다. 미 오바마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추가 증파 계획을 보류해 오다가 최근 아프간 미 대사로부터 추가 증파 반대 서한까지 받게 되자, 급기야 추가 증파 그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뿐만 아니라 주요 파병국들의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나토 회의에서 대부분의 국가들은 미국의 추가 파병 제시안에 회의적으로 반응했다. 최우방국인 영국조차 이제는 ‘철군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권 교체가 이뤄진 일본 또한 해상 자위대의 철군 계획을 발표했다. 대부분의 아프간 파병국들이 아프간 군사적 개입 축소나 철군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국제사회 추세에 역행하는 행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 카르자이 대통령의 취임 축하를 위해 아프간 특사를 파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미 아프간 선거관리위원회는 카르자이 측이 부정선거를 저질렀다고 공식 인정한 바 있다. 부정선거뿐만 아니라 카르자이 대통령이 그동안 광범위하게 부정부패를 해 왔기에 국내외 여론은 매우 좋지 않다. 탈레반을 축출하고 카르자이 정권을 내세운 미국마저 카르자이 정부를 최대 골칫거리로 여기고 있을 정도이다. 이렇게 아프간의 불안정을 심화시키고, 부정과 부패의 온상이 되어가는 카르자이 정부를 축하하고 지지하기 위해 정부가 특사를 파견했다는 것은 국민으로서는 견딜 수 없이 수치스러운 일이다. 심지어 한국 정부가 카르자이 정부를 지지한다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어주게 되면, 한국군을 비롯한 자국민은 더욱 더 탈레반을 비롯한 아프간 내 반군으로부터 공격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국회 청문회를 열자

이처럼 정부는 아프간 재파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거짓말의 연속은 물론 어리석은 실책까지 계속 저지르고 있다. 이런 것들이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 온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행동인 것인가? 또한 이것이 정부가 출범 초부터 주요 국정 과제로 내세워 온 ‘기여외교’의 실체란 말인가?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대테러전이 벌어진 지 8년이 지나면서, 군사적 개입으로는 아프간에 평화를 만들 수 없음을 똑똑히 보고 있다. 또한 정부의 무분별한 파병외교는 결국 아프간의 평화에 아무런 기여도 못하면서 자국민의 안전마저 지킬 수 없다는 뼈아픈 교훈까지 얻어야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정부가 하나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철군한 지 불과 2년도 안되어, 국민에게 그 어떤 합의조차 구하지 않고, 세계 어디에도 없는 ‘재파병 국가’를 함부로 자처한단 말인가. 이쯤 되면 국회 역시 재파병을 놓고 정당성을 따지며 여야 입씨름을 할 것이 아니라 우선 납득되지 않는 정부의 재파병 결정 경위부터 낱낱이 질의하는 청문회를 열자고 주장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국민 역시 또 다시 맹목적 동맹론이나 근거 없는 국익론을 내세우며 아프간 재파병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부의 거짓말에 속아서도 쉽게 눈감아줘서도 안 될 것이다.